시진핑의 선택 - 전 세계를 뒤흔들 시진핑호 중국에 대비하라!
양중메이 지음, 홍광훈 옮김, 강준영 해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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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의 18대 대선이 끝난 후, 인터넷에는 "동북아에 '푸틴-시진핑-김정은-박근혜-아베'의 극우 조합이 완성되었다"는 우스개소리가 퍼졌다. 특히 러시아를 제외한 네 국가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정치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정치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도 덧붙여졌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사 강화 소식으로, 아베 일본 총리는 극우 발언 소식으로 들어는 보았지만, 시진핑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앞으로 짧게는 5년간, 그리고 길게는 21세기의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저자가 책에서 지적하는 중국의 현실은 너무나도 마음아프다. 저우언라이가 장쩌민 대신에 자오쯔양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면 중국은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의 달콤한 열매는 누리지 못했지만, 지금과 같이 사회가 분열되고 가난한 자들은 더욱 고통받는 이 시대의 상황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전한다. 씁쓸한 웃음이 배어나왔다. 이 상황은 비단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으로 인해 온 국민이 예전에 비해 훨씬 부요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고,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당당하게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발전에 치중하느라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상처를 보듬는 일에는 소홀했으며, 부유한 사람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정치권과 결탁한 집권 귀족 자산 계급의 호화로운 이야기는 뿌리깊게 정치권과 결탁했고, 이제는 결탁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와 입법, 사법을 모두 '움직이는' 우리나라의 재벌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의  중국은 지난 30년간 압축적으로 성장했지만, 그에 따른 고통도 압축적으로 나타났다"는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한 글자만 바꿔도 그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다. "이런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온힘을 다해 현상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민주화를 두려워한다. 일단 민주화가 되면 천하대란이 일어날 것처럼 거짓 선전을 하고 있다. 10억명이 넘는 중국 국민은 모두 이 소수 집단의 인질인 셈이다." 적의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기득권이 '피지배층을 보호'하기 위한 논리는 어디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이런 생각들을 먼저 한 후 시진핑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를 조금 더 비판적으로 보려는 마음이 컸다. 이 책 한 권으로 시진핑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나타난 시진핑은 생각보다 정치적으로 많이 준비된 사람이었다. 개국 공신 아버지가 정치적 싸움에 휘말리는 바람에 고위층 자제의 생활부터 농민 지도자의 생활까지 다양한 계층을 체험했고, 칭화 대학이라는 명문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네트워크 배경도 탄탄해졌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내조하는 여군 가수와 결혼하여 큰 도움을 얻기도 했다. 시진핑은 자신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간에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기도 전에 다양한 경험들로 자리에 오를 그날을 준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시진핑이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책을 많이 읽는 것과 더불어 공부하는 자세를 강조했다고 한다. '꿈을 크게 갖고, 외로움을 이겨내면서,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시진핑의 말이 공부를 업으로 하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나에게는 매우 와닿았다.

이 책을 중국 작가가 썼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중국의 고사나 고전을 들어 설명한다는 것이다. 시진핑도 논어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마오쩌둥이 인재를 들어 쓸 때의 전략, 시진핑의 정치 철학 등을 설명할 때 논어를 비롯해 삼국지, 초한지 등을 들어 설명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이 책은 시진핑을 (몇몇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대체로 긍정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다. 단, 중국인들에게는 말이다. 사실 이는 일본도,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위할 것이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시진핑은 중국인들에게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자 북한의 정치적 후원자인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시진핑은 아직 더 분석하고 지켜보아야 할 사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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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읽혔다 - 상대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기술
앨런 피즈.바바라 피즈 지음, 황혜숙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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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토론이 이슈다.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서 저마다 논평과 분석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패러디를 통해 재미있는 게시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 역시도 대선 토론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지만, 사람들이 대선 토론의 정책 내용보다는 말솜씨와 표정 등에 주목한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사람들은 정말, 후보들이 구사하는 언어의 기술에 더욱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일까? 그리고 하나 더, 이 책은 여기에 덧붙여 언어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몸짓과 표정을 모두 포함한 것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몸짓, 손, 미소와 웃음, 팔, 손짓, 영역, 다리, 흉내내기, 방향, 자리, 그리고 담배나 화장, 안경까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가 외면으로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분석한 결과와,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팁을 제시한다. 이 책을 접하면서 남녀의 차이에 대한 유머가 하나 생각났다. 남자는 동성 친구를 만나면 서로의 눈을 보면서 '안녕' 한 마디로 인사가 끝나지만, 여자는 동성 친구를 만나면 서로의 눈을 보고 '안녕'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서로의 머리 모양, 화장, 옷, 신발, 가방,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 등을 순식간에 눈으로 점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시야가 넓기 때문에 (대화하는 상대에 대해) 더 많은 시각적인 정보들을 짧은 시간에 받아들일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떠한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는데, 사실 나는 이러한 몸짓이나 손짓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이렇게 책을 읽고 깨닫게 되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몸짓으로 표현하듯이, 바라보는 사람도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몸짓 언어를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첫인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들이 새롭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것들을 잘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웃는 모습이 상대방에게 비웃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지, 혹은 앞에 나가서 무언가를 발표하고 강연하는 발표자에게 나도 모르게 '당신의 강의는 지루하다'는 몸짓 언어로 실례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더불어 알고도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특정 문화권에서 통하는 몸짓 언어에 대한 문제다. 책은 미국의 몸짓 언어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미국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인 편이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몸짓 언어로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한 아는 언니는 끝에, '그런데, 가끔은 그냥 사람을 편하게 만나고 싶은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사람의 몸짓과 표정을 분석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럴 때는 정말 '아는 게 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간파당하는 것보다는 간파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몰라서 마음 편하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귀여운 거짓말을 알면서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아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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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4 - 전국시대 화폐전쟁 4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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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미국 중심의 경제 해설을 거부하고 중국이 새로이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어 놓은 책이라는 친구의 추천 때문이었다. 사실 이 책을 접하자마자, 책의 두께에 기가 확 죽었다. 게다가 보통 어려운 내용을 접하기 전에 알기 쉽게 풀어주는 일반적인 책들과 달리 이 책의 서문은 경제공부를 열심히 안한 나를 다그치듯 머릿속에 가물가물한 경제 용어들이 잔뜩해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어오다가, 4권째가 나오고서야 이 책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기를 죽이는 서문과는 달리, 책의 본 내용은 세계사를 금융 중심으로 풀어가며 생각보다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었다. 왜 오늘날의 세계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지를 유럽과 미국, 아시아, 정확히는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일들을 에피소드처럼 풀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8년 이후 세계를 안개처럼 감싸고 있는 경제 위기는 각 지역마다 다른 양상으로 해석해 볼 수가 있겠다. 다만 필자가 "미국의 문제는 경제에, 유럽의 문제는 정치에, 아시아의 문제는 역사에 있다"고 책의 첫 머리에서 싱겁게 단언해버린 것 이상으로, 책의 내용들은 결국 미국의 경제 문제, 유럽의 정치 문제, 아시아의 역사 문제가 금융이라는 큰 틀 안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경영학과를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융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잘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금융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미국이 영국의 금융 패권 지위를 뺏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하고 반대로 영국이 미국에 반격을 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한편으로는 국제 통화로 우뚝 선 일본이 엔고 현상으로 늪에 빠져 있는 모습과 대조되기도 했다.

조금은 엉뚱하게도,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금융 패권 경쟁의 이야기를 인물과 상황에 대입하여 읽으니 한 편의 미드를 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장 모네가 유럽 통합을 위해 최상위 클럽을 활성화시키는 등의 활약을 펼치는 모습에서는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금융 경쟁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웃음도 나왔다. 자연히 국가를 의인화하여 보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세계의 경찰, 혹은 세계의 금융 중심으로 신화화되었던 미국이라는 존재가 이 책에서는 실용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존재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존재는 세계의 지혜와 잠재력을 가지고 누워 있는 용과 같이 비유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중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용하기보다는 유럽인들이 미국을 '엉클 샘'이나 '샤일록'과 같이 부른다는 식으로 자신을 숨겼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이 시대를 조금 더 이해하고 때로는 작가아 논리적으로 토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경제를 조금 더 공부한 다음에 더욱 흥미롭게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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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션 2.0 - 어느 소심한 구글 직원이 이끈 혁명이야기
와엘 고님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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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표지와 제목 '레볼루션 2.0'만 보고는,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한' 또 하나의 그저그런 웹 2.0 활용에 대한 제안서 정도라는 생각에 맥이 쭉 빠졌다. 아,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책을 한 두 장 넘겨, 작가의 말을 지나고, 목차를 지나면서 평온하고 조용한 주위와 달리 내 마음에 치던 소용돌이같은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만나야 했으나, 내가 굳이 찾아나서지 않았던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접했다는 느낌이 쌔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우리는 '나 하나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 말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뭐,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다. 기존 미디어의 세상에서 개인이 권력에 속박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웹 2.0 세상에서 우리는 참여와 공유라는 새로운 특징을 만나게 된다. 권력이 필요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자다. 와엘 고님이 해낸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컨텐츠를 만드는 일.

"우리는 모두 손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잊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짓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바라고 이런 짓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이 범죄자들과 싸워야 합니다.(p.219)"

이 책이 결과를 알 수 없는 논픽션이었다면, 나는 이 책을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 때 뉴스에서 본 대로, 트위터에서 본 대로, 이집트의 독재 정권은 물러나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며, 이 혁명의 물결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바람이 되어 불어칠 것이라는 결말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나는 이 지리한 싸움을 견디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이 부끄러웠다. 내가 꼽는 이집트에서 혁명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가상 세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뭔들 못하겠는가. 그러나 와엘 고님과 이집트의 청년들은 이를 넘어서서 실제로 광장에 모이고 실제로 혁명의 주체가 되었다. 인터넷은 이들을 연결하는 수단이었을 뿐, 이들의 행동 무대는 '내가 누구인지 드러낼 수 있는' 현실의 광장이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와엘 고님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인 '구글'에 다니는 '구글러'였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결국 잡혀서 11일동안 눈을 가리고 감금되는 고초를 겪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 그가 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프록시 서버'라는 자신의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전례없는 대규모의 시위가 열릴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참여형 플랫폼의 등장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읽는 내내 생각했다. 과연 기술은 가치중립적인가? 사실은 아직 이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기술'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해야할 지에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1에 1을 더하면 2가 된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을 우리가 기술이라고 일컫지는 않는다. 참여형 플랫폼을 만드는 방법은 우리가 기술이라고 일컫는다. 개방형 플랫폼을 만드는 것과 폐쇄형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다른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러한 혁명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이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처럼 고작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이나 올리든 혁명가(!)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끌어내리든 똑같은 기능을 똑같은 권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술이 가치 중립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 전문가인 와엘 고님이 30년 동안 독재를 통해 이집트를 마음대로 주물렀던 무바라크 대통령과 똑같은 권한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미디어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징이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독재자를 무조건적으로 칭송하고 두둔하는 관영 미디어에 결핍된 가치를 개방형 플랫폼인 페이스북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이 이야기가 단순히 이집트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견문을 넓히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께 부탁해 신문을 구독했었다. 그리고 몇달 째, 언론인이 되고 싶던 나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대통령에 비판적인 한 보수 언론이 실은 기사 제목과 사설 내용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정권 말기에 들어서면서 보수 언론들의 공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었던 듯 하다. 당시에는 정치에 무관심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혹은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그래 이 모든 게 대통령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에 쉽사리 나를 맡겨버렸던 것 같다. 여느 날과 같이 대통령에 비판적인 어조의 신문을 읽다가 관심이 있는 주제라 꼼꼼히 읽다보니, 눈을 잡는 기사 제목은 분명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써 있는데, 기사 내용은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내용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충격적이었다. 한국의 대표 언론 중 하나라고 하는 이 신문사에서 인터넷 찌라시에서나 하는 '낚시성 기사'를 인터넷도 아니고 지면 기사에 싣다니. 그 이후로 그 신문을 끊었고, 신문에 대한 나의 신뢰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단순히 비판적인 시선과 어조로 사실을 해석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일부 사실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하는 방송사가 버젓이 생겨났고, 이 방송사는 이에 대항하는 직원들을 해고하거나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배치시키기까지 했다. 관영 아닌 관영이 되어 버린 기존 미디어를 믿느니 나는 아직은 불완전하고 틀린 정보도 많지만 차라리 정보를 삭제하지는 않는 뉴미디어를 믿겠다. 아무나 자기 생각나는 대로 말하다 보니 헛소리도 많고 거짓말도 많지만 적어도 누군가 진실만을 말하는 것으로 신뢰받지는 않는, 그런 것을 서로 기대하지도 않는, 뉴미디어의 힘을 믿겠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류와 연대를 통해 '정의의 세상'을 만들어가겠다.

물론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이집트의 혁명이 진행중인 것처럼. 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용기는 우리 마음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보다 넓은 인터넷 세계의 연대를 통해 현실에서 행동으로 발현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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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 밑줄 긋는 여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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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류의 책을 좋아하지지 않게 된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나 하나 살아가기도 빠듯하고 주변 사는 이야기 들어줄 시간도 잘 안 나는데, 나는 이렇게나 행복하고 아는 것도 많고 경험하는 것도 남다르고 감성적이며 생각도 깊다는 걸 맘껏 자랑하는 그런 글을 돈을 내고 사서 보느니 그냥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한창 꾸몄을 시절의 내 싸이를 보며 아 그땐 참 잘나갔군~ 하는 게 속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대세라는 '힐링 에세이,'는 정말이지 사양이다.

물론 어릴 때는 무조건 내 마음을 고쳐주고 낫게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얼마전 한 연고 CF가 그렇게 공감될 수가 없었다. 넘어지면 일어날 생각은 하지않고 자리에 주저앉아 엄마~를 외치며 울어제끼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분명 언젠가의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아프지, 아프지마, 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보다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말한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그런 책이 좋아진다. 사실 표지의 '토닥토닥 에세이'라는 글을 보았을 때는, 툭툭 털고 일어나지는 못할망정 대책없이 주저앉아서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책은 아닐까 걱정했다.

작가는 자신이 읽은 서른 세 권의 소설을 자신의 입으로 다시 한 번 전한다. 그 중 하나, 장정일이 감기도 몸의 일부니 쉬어가는 계기로 만들라고 했다는 것처럼, 고달프고 지치는 마음도 내 마음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메딕이 마린에게 손을 뻗어 징~ 하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나만 이런 것은 아니구나, 그냥 이렇게 살아가다보면 또 괜찮아 지는구나. 하고 끄덕이면서 내 상태를 이해하고 나아지고... 그런 과정이 '힐링'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약이었다. 다친 데를 '치료'하는 책이 아니라, 말랑한 음악으로 레몬차 한 잔을 마실 때 드는 '치유'되는 기분을 주는, 그런 책이다.

고등학교 때 '고등 독서평설'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다들 아시다시피, 구매하는 것과 읽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뿌듯했던 시절이 있었다. 독서를 꽤나 많이 하는 소녀가 된 그런 기분이랄까. 그 책이 주는 진짜 효용이 '기분을 업시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깊은 내용을 알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더욱 깊은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런 여유도 갖지 못했던 기간이었기에 '서울대 추천도서 100'권은 나에게 어렵기만 했고, 그 책들을 쉽게 쉽게 풀어주는 잡지가 독서평설이었다. 독서평설만 꾸준히 읽으면 진짜 내용은 몰라도 어디 가서 그 책 들어본 티는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로 그 책을 읽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런 티'를 내는 것이 엄청 부끄러워졌다. 그 생각이 이 책의 소개를 보면서 제일 먼저 들었다. 본의아니게 '스포' 당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늘어가는 게 차라리 걱정이라면 걱정이랄까.

요즘 부쩍,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책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내게 앎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서야 깨닫게 된 것도 다양한 책들을 이야기를 통해 접하게 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책들을 찾아가 읽게 되는 과정 속에서였다. 페이스북을 오래 하는 사람이 페북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듯이, 다양한 책을 차근 차근 읽는 사람들은 대화의 주제에 자신이 읽은 내용들을 자연스레 녹여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왠지 그런 식으로 자칭 '만년문청'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다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읽었던 책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한숨을 내어 쉬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반응하듯 책을 읽는 동안 (나 혼자만의 느낌이지만) 작가와 호흡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이렇게 한 편의 서평으로 남기는 것으로 충분할까 싶기도 했다. 챕터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어 나도 그런 거 있는데, 나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데, 하면서 작가의 말을 막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고, 그리고 이렇게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밤을 새서 수다를 떨어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상상도 곁들이면서.

어쩌면 작가도 그런 생각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닐까, 감히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나도 가끔, 너무 말이 하고 싶다.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나 연예계 비화, 립서비스가 반인 의례적인 말들, "우리가 남이가, ~를 위하여!" 같은 말들 말고, 진짜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좀 시원하게 쏟아내고 싶다. 말이 옮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없이 화끈하게 남의 욕도 하고, 창피해서 못했던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얘기들도 하고, 권력관계에 의해서 하나도 안 웃긴 이야기에 깔깔걸며 웃어주는 대신, 허물없이 편하게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목이 쉴 때까지 떠들고 싶다. 이른 출근시간과 내일 해야 될 일들을 걱정하지 않고 밤새도록, 정말 밤이 새도록 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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