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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 밑줄 긋는 여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2년 11월
평점 :
에세이 류의 책을 좋아하지지 않게 된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나 하나 살아가기도 빠듯하고 주변 사는 이야기 들어줄 시간도 잘 안 나는데, 나는 이렇게나 행복하고 아는 것도 많고 경험하는 것도 남다르고 감성적이며 생각도 깊다는 걸 맘껏 자랑하는 그런 글을 돈을 내고 사서 보느니 그냥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한창 꾸몄을 시절의 내 싸이를 보며 아 그땐 참 잘나갔군~ 하는 게 속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대세라는 '힐링 에세이,'는 정말이지 사양이다.
물론 어릴 때는 무조건 내 마음을 고쳐주고 낫게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얼마전 한 연고 CF가 그렇게 공감될 수가 없었다. 넘어지면 일어날 생각은 하지않고 자리에 주저앉아 엄마~를 외치며 울어제끼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분명 언젠가의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아프지, 아프지마, 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보다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말한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그런 책이 좋아진다. 사실 표지의 '토닥토닥 에세이'라는 글을 보았을 때는, 툭툭 털고 일어나지는 못할망정 대책없이 주저앉아서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책은 아닐까 걱정했다.
작가는 자신이 읽은 서른 세 권의 소설을 자신의 입으로 다시 한 번 전한다. 그 중 하나, 장정일이 감기도 몸의 일부니 쉬어가는 계기로 만들라고 했다는 것처럼, 고달프고 지치는 마음도 내 마음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메딕이 마린에게 손을 뻗어 징~ 하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나만 이런 것은 아니구나, 그냥 이렇게 살아가다보면 또 괜찮아 지는구나. 하고 끄덕이면서 내 상태를 이해하고 나아지고... 그런 과정이 '힐링'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약이었다. 다친 데를 '치료'하는 책이 아니라, 말랑한 음악으로 레몬차 한 잔을 마실 때 드는 '치유'되는 기분을 주는, 그런 책이다.
고등학교 때 '고등 독서평설'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다들 아시다시피, 구매하는 것과 읽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뿌듯했던 시절이 있었다. 독서를 꽤나 많이 하는 소녀가 된 그런 기분이랄까. 그 책이 주는 진짜 효용이 '기분을 업시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깊은 내용을 알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더욱 깊은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런 여유도 갖지 못했던 기간이었기에 '서울대 추천도서 100'권은 나에게 어렵기만 했고, 그 책들을 쉽게 쉽게 풀어주는 잡지가 독서평설이었다. 독서평설만 꾸준히 읽으면 진짜 내용은 몰라도 어디 가서 그 책 들어본 티는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로 그 책을 읽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런 티'를 내는 것이 엄청 부끄러워졌다. 그 생각이 이 책의 소개를 보면서 제일 먼저 들었다. 본의아니게 '스포' 당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늘어가는 게 차라리 걱정이라면 걱정이랄까.
요즘 부쩍,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책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내게 앎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서야 깨닫게 된 것도 다양한 책들을 이야기를 통해 접하게 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책들을 찾아가 읽게 되는 과정 속에서였다. 페이스북을 오래 하는 사람이 페북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듯이, 다양한 책을 차근 차근 읽는 사람들은 대화의 주제에 자신이 읽은 내용들을 자연스레 녹여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왠지 그런 식으로 자칭 '만년문청'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다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읽었던 책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한숨을 내어 쉬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반응하듯 책을 읽는 동안 (나 혼자만의 느낌이지만) 작가와 호흡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이렇게 한 편의 서평으로 남기는 것으로 충분할까 싶기도 했다. 챕터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어 나도 그런 거 있는데, 나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데, 하면서 작가의 말을 막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고, 그리고 이렇게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밤을 새서 수다를 떨어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상상도 곁들이면서.
어쩌면 작가도 그런 생각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닐까, 감히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나도 가끔, 너무 말이 하고 싶다.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나 연예계 비화, 립서비스가 반인 의례적인 말들, "우리가 남이가, ~를 위하여!" 같은 말들 말고, 진짜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좀 시원하게 쏟아내고 싶다. 말이 옮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없이 화끈하게 남의 욕도 하고, 창피해서 못했던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얘기들도 하고, 권력관계에 의해서 하나도 안 웃긴 이야기에 깔깔걸며 웃어주는 대신, 허물없이 편하게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목이 쉴 때까지 떠들고 싶다. 이른 출근시간과 내일 해야 될 일들을 걱정하지 않고 밤새도록, 정말 밤이 새도록 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