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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
정대진 지음 / 책마루 / 2009년 10월
평점 :
99년 신촌근처의 S대학 경제학과에 합격했다. 학원이 뭔지도 잘 모르는 서울로 보기도 좀 힘든 서울 변두리 지역 학교서 그럭저럭 수능 4등한 결과였다. 학원이 뭔지 잘 몰라도 한 1년 더 공부하면 더 좋은(?) 학교라고 여겨지는 학교에 갈거라 생각해, 도전했다 실패해 더 안좋은(?)학교엘 하릴없이 나이만 먹고 가게됐다.
허락받고 해온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아 괘념치 않았다. 새로 가게 된 학교에서 하고자 하던 경제학을 진지하게 수학했다. 어학연수는 고사 하고 영어학원 가본 적도 없지만, 영어원서를 어려움 없이 읽고 외화를 보면서 바로 따라할 수 있을만큼 즐겁게 하고싶은 공부를 했다.
전공은 관련 저널과 신문, 서적을 탐독하며 즐겁게 공부했더니 H경제신문사가 시험에서 3000명 가까운 인원 중 10등을 했다. 물론 공부한자 안하고 기본 실력으로 본 시험이었고, 내가 취업을 위해 억지로 한 상대공부였다면 난 즐겁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이해력이나 성적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장교복무 경험과 군복무 중 학원없이 혼자서 대학시절 영어처럼 웅얼거린 중국어 까지 더하면 힘들어도 일자리 하나쯤은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내가 즐겁게 한 공부와 노력이, 즐겁지 않은 공부를 엄청난 투자와 산업화된 학원시스템을 등에 업은 친구들의 노력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올해 깨달았다. 내가 공부한자 안하고 순수히 영어에 대한 즐거움에 바탕한 평소 실력으로 치른 950점은 점수만을 따기 위한 학원집중강의 수강생과 구분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수많은 기업에 원서를 지원했으나, 내가 괘념치 않았던 것들을 한국은 괘념했다. 나에게 면접을 볼 기회를 준 회사는 가장 학력차별이 덜한 S그룹과 역시 학력차별이 덜한 외국계 P&G 뿐이었다. 나는 결국 어렵사리 S그룹에 입사했지만, 이 사회는 내가 괘념치 않는 것을 얼마나 괘념하는지 절절이 알게 됐다.
괘념치 않고 즐겁게 하자, 즐겁게 자신을 닦다 보면 세상이 알아줄 것이란 당연한 명제 조차 쉽지 않다는 걸 절감한 내겐 사실, 저자와 같은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까지 관심을 뻗을 여유가 없음을 고백한다.
그런 일이 자신의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 말이다. 나도 사실 어쩌면 그런 아이들 중 하나 였는지도 모른채 살아온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엄습한다. 한번도 가능성에 스스로를 가둔 적 없이 살아온 내게도 문득 밀려온다(물론 평생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 즐겁게 전진해 볼 것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같이 꾸는 꿈도 꿈이 되지 않는다. 저자가 경험한 것처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아이 교육만을 생각하는 한국부모들의 기호에 이 책은 외면받을지도 모르고, 교육적령기의 아이를 둔 부모가 아니면 자기 한몸 한가족 가누기도 힘든 세상에 이런 주제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 책을 많이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컨데, 저자가 만약 돈을 벌고자 했다면, 자신이 사교육 일선에서 경험했던 성공사례를 모아 누구누구들의 성적 역전기 내지는 누구 엄마의 어느 대학 입성기를 쓰는 게 낳았을 것이다. 누가 이런 불편한 진실, 답도 없는 진실에 귀기울일 것인가. 저자도 밝힌 것처럼, 이 책에는 답이 는데.
하지만 적어도 문제를 들추어내긴 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추어진 문제는 한번쯤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생각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