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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라진 뒤에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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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라진 뒤에 / 조수경 / 한겨레출판


‘이게 가능한 일이야?’ 


3부로 나뉜 이 책의 1부까지 읽고난 뒤 책장을 덮었다. 한숨을 한 번 길게 쉬고 어떠한 마음으로 나머지를 읽어나가야할 지 고민이 들었다. 솔직히 처음부분은 읽고 감상하기 보다 읽어내는 것이 더 맞았다. 읽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될까 너무 궁금해서 안 읽을 수는 없었다. 가독성이 넘치며 평이한 단어들로 조합된 이 책에 모든 문장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쉽게 읽어낼 수 없었다. 몇 번을 멈춰 생각하고 마음을 잡고 읽어야했던 그런 작품이었다.


법이 바뀌는 속도는 느리지만 법이 필요한 상황은 눈 깜짝할 새보다 더 빨리 그리고 많이 생기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당장 내 주변에 일어난 일은 없었기에 보도되는 육하원칙에 의한 사건 개요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뉴스를 보는 그 찰나에 마음이 불편함을 느낀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챙기고 충분히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을 이 작품을 통해 했다. 바로 ‘아동학대’에 대해서다. 


직장 교육을 통해 의심이 되면 신고해야하는 의무를 가진 내가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동들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알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했다. 믿을 수 없는 사건 전개에 내몰리는 아이들을 보며 어른으로서의 책임에 대해 막중하게 느꼈다. 작품 제목인 ‘그들이 사라진 뒤에’ 나타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그러나 이미 사라졌다면 찾아내는 어른으로서의 실천도 잊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내몰리고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작가의 손과 마음을 통해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는 이것보다 더 할 수 있다고?’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을 하며 그래도 이 설정은 너무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면서 소설의 끝까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상황 자체가 힘들면 그 상황을 견뎌야하는 아이의 두려움과 불안감은 우리 어른들이 감히 상상을 할 수도 없을 정도일텐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서 책을 다 읽고도 며칠을 그 여운에 살았다. 


‘내가 할 일은?’


내 눈이 보아야할 것은 아름답고 예쁜 것만이 아니라 의미있는 것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한다는 것으로 생각이 커졌다. 의미있는 것을 보려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저 아이 안되어보이네’, ‘행색이 왜 저럴까?’ 의문으로만 행했던 그 눈을 더 확장시켜 아이의 삶과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기르고 싶어졌다. 거짓없는 순수한 존재의 아이들은 배운대로 아는대로 표현하고 말하고 있었을텐데 어른들의 편견과 무관심으로 외면당했던 그 삶에 감히 나의 눈길을 더하고 싶어졌다. 그래야 아이가 삶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난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어른들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머리가 아는 것을 넘어 마음도 알아채는 단계가 된 것 같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여태까지 신고 의무자로서 그래야한다는 당위성을 뛰어넘게 된 나의 마음에 칭찬하며 이름의 무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선배들이 가끔 그러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세상 많이 좋아진 거라고, 그런데 그게요, 어른들이 한 일이 아니에요. 죽은 아이들이 한 일이야. 아이 하나가 죽어야 그나마, 아주 조금씩 세상이 변해가는 거예요.”


아이가 죽지 않아도 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내 손에서도 있음에 감사했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들이사라진뒤에 #하니포터 #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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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햄햄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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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햄햄 / 씨네21북스


책이 도착하고 식탁 위에 올려둔 그 날, 저녁을 차리는 동안 나보다 더 먼저 이 책을 즐겨버린 친구가 생겼다. 8살 나의 딸이다. ‘앗! 이거 초등학생이 읽어도 되는 내용일까?’ 즐기기도 전에 검증(?)부터 해야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큭큭거리는 것이 수상하다. 표지에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 생활’이라고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검증을 바로 해야했지만 아이는 3일 연속 이 책을 쥐고 킬킬거리면서 책을 놓지 않고 있었다. 책 도착 3일차 밤에 자는 아이를 확인한 후 보게 되었다. 어린이가 봐도 되는 내용일지 아주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판다와 시바의 우정이라고 봐도 좋을만했다. 적어도 초딩 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읽다 보니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아이의 웃음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야밤에 판다와 시바의 우정을 겸한 사랑이 담긴 결혼 생활을 보고 있자니 ‘아이가 없는 신혼 생활을 했다면 우리도 이렇게 살았겠구나’ 싶었다. 오래 만난 사람과의 썸과 연애 그리고 결혼 생활이라는 점에서 서로를 대하는 편한 모습이 나와 닮았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를 몸으로 느껴가는 과정또한 ‘음… 나도 그랬었지.’ 하는 장면들로 가득했다. 서로를 데려가면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과정을 나도 그림 실력이 있어 그려낼 수 있다면 이와 비슷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 부부를 매일 바라보는 이 아이가 봐서 걱정될 부분은 없겠구나 싶었다. 


“판다와 시바가 아빠와 엄마같아. 그런데 시바가 판다에게 부르르 화를 내는데 그건 다른 것 같아”


하고 두 번 정독하고 서평을 내놓은 우리 딸을 보며 ‘좋은 모습만 봤군! 우리 잘 했는걸?’ 하면서 겉으로도 속으로도 흐뭇해했다. ‘엄마도 시바처럼 화낼 때 많아. 아빠가 다 참아줘서 그렇지. 이건 몰라도 돼!’  


내가 왜 이 사람을 데려왔나 그리고 이 사람은 왜 나를 데려갔나 싶은 순간이 종종 든다. 나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살다보면 비슷해지는 부분도 보이고 완전 다르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원래는 똑같았구나 싶은 순간도 찾아온다. 어려움을 같이 겪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전우애도 느껴보았고, 애틋함으로 그리워했던 날도 있었던 나의 결혼 생활을 생각하며 이제 겨우 8년차인데 앞으로는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를 생각할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던데, 서로 ‘데려가’는 마음으로 살면 좀 더 품어주고 이해하고 노력하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아직은 ‘안했으면 후회’ 입장이다. 데려왔으면 책임지는 마음으로 잘 살아가야지. 판다와 시바 부부와 함께 말이다. 본의아니게 딸에게 극사실주의 결혼 생활을 보여주었는데 극사실주의 속에 사랑과 우정이 듬뿍 담겨있기에 훗날 ‘아빠같은 판다같은’ 사람 찾게 되면 네 결혼 생활을 힘껏 응원하겠다는 말도 해줄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좋은 짝꿍 만나기 교육도 할 수 있었다. 




#널누가데려가나했더니나였다 #하니포터 #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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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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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 윌리엄 트레버 / 한겨레출판


단편소설을 오래간만에 읽었다. 주어지기도 했지만 고를수도 있었던 이 책은 표지에서 아껴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물컵을 든 여자가 창밖을 몰래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다. ‘몰래’라는 생각을 한 이유는 창문 아래에 있는 테이블을 발로 밟고 있는 동작과 언제라도 여닫이 창문을 닫을 수 있게 잡고 있는 컵 없는 남은 한 손 덕분이다. 이 여인의 치마폭에 쓰인 ‘밀회’라는 제목과 너무나 어울려 무슨 비밀스러운 장면을 보고 있나 싶어 함께 내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코랄색 글자의 제목이라니 책의 첫인상은 호기심 넘치는 예쁨으로 다가왔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차라 우선 뒤 표지에 쓰인 추천서와 홍보 문구를 통해 어떤 내용일지 가늠을 하며 읽어보았다. 작품마다 비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은 독자에게 비밀이 아니라 작품 속 세상에게 비밀이다. 주인공과 독자는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 -독자가 처음부터 비밀을 알게된다는 것-  인물은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이 처한 비밀을 둘러싼 사건과 세상에 대한 대응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태까지 읽은 대부분의 비밀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물론 장편이 많아서 그랬을 것 같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밝혀지도록 되어 있어 비밀을 쫓아가며 열쇠를 푸는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거나 밝혀진 비밀에 같이 깜짝 놀라는 식이었는데 처음에는 낯설었다. 훅 들어오는 공개-공유인가?-에 말이다. 이렇게 써도 되구나 싶은 소설작법을 하나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밀은 독자에게 비밀이 아니다. 아직 몰라도 될 것 같은 곳에서 툭하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그리고 공유한 비밀을 어떻게 지켜나가는지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함께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삶을 이어나가도록 하는 비밀의 존재 이유가 드러나는 것이랄까? 대부분의 작품을 통해 전체적으로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사랑을 낭비하지 않았다.’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작품을 모두 소화한 후 내게 남은 문장은 이것 단 하나이다. 모든 주인공이 자신의 사랑과 관계있는 사람 또는 사건에 자신의 사랑을 낭비하지 않고 넘치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몇몇 작품은 흔히 알고 있는 소재로서 사랑을 다루기도 했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만은 독특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 속 사랑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이라 낯설었다. 그래도 작품이 마무리 되어 갈 때가 되면 낭비하지 않은 그들의 사랑에 대해 되새겨보며 이해보다는 인정해보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마지막에 건진 저 문장을 통해 되새겨보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걸렸는데 그만큼 여운이 긴 작품들이었다. 


사랑을 시작하거나 유지하거나 마칠 때에 원하든 원치않든 생겨나게 된 비밀에 솔직하며 격정과 환희가 아닌 잔잔함과 다정함으로 마음을 채우는 책, 그게 이 책에 대한 나의 총평이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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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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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가처럼 하루하루 일기를 써나가는 것도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날 하루를 돌아보며 나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보고 단어와 내 삶을 연결하는 식 말이다. 이 책의 작가는 단어에 꽂혀서(?) 그 단어와 관련있는 경험을 늘어놓으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고,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보며 삶과 연결하기도 하며 단어생활자로서의 삶을 기록해 놓았다. 호흡이 짧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며 그 단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 -혹은 생각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함께할 수 있어서 누구나 사용하는 단어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게 한 책이다.


책에 있는 구절이나 길 가다가 문득 생각이 나거나 혹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매번은 아니지만 어떤 단어가 머리에 콕 박히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이상하게 한 단어가 이상하게 생겨서 이게 원래 이렇게 쓰는 것이 맞나 너무 낯설어 사전을 찾아보고 나서야 오늘 내가 이 단어가 이상하게 보이는 날이구나 싶을 때도 있다. 이 책의 목차에 있는 단어들은 생활자로서의 사용 빈도수로 보면 낯선 단어들이 많았다. 읽으면서 뜻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지만 사전을 옆에 끼고 정확한 뜻을 찾아보며 이런 단어도 있구나. 이렇게 삶으로 끌어들어와 사용해도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되어 내 단어 생활의 ‘규모’가 넓어지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여물어갈수록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되도록 말을 아끼고 같은 말이라도 다른 표현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뜻이 같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놀라운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휘도’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적어 놓은 곳이 특히 좋았다. 어느쪽을 주체로 둘 것인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의미의 특별함을 배우고 싶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생각을 하고 싶다. 내 삶의 주체는 분명 ‘나’ 이되, 나를 둘러싼 다양한 삶의 동반자들을 챙기는 방식말이다.


단어는 우리말에서 최소 의미 자립 단위로 정의한다. 혼자서 우뚝 서 있는 단어는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다. 이 홀로 섦을 기반으로 문장도 만들어지고 의미 단위로서의 문단 그리고 글로 이어진다. 글을 잘 쓰려면 그에 맞는 단어부터 잘 선별해야하고 그러려면 내가 아는 단어가 많아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듣고 배워야한다는 것으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 작가의 단어의 집처럼 나만의 단어의 집을 만들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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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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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서평


집에서 30분 거리에 도립 미술관이 개관했다. 지방이라 미술관은 수도권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만 있는, 그러니까 내 삶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러나 내 아이는 미술적 소양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개관하자마자 손잡고 갔던 그날이 생각난다. 어디에 감동을 받아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아이는 들어가자마자 나가자는 말을 했으며, 내가 그날 미술관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엄청 큰 작품은 진짜 크구나. 이거 딱 하나였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그날 이후 미술이라는 것에 가까워져야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텔레비전 속 미술관에는 또각또각 멋진 하이힐에 한껏 치장을 한 부잣집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작품 앞에서 감상평을 나누던데 혹은 감동하여 눈물도 흘리던데 나도 한 번 그래보고 싶다는 허영과 그림을 통해 감동을 받는다는 경험을 겪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알아야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던 때에 때마침 들어온 하니포터 서평이라니 덥석 잡아야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작품에 담긴 이야기나 작가의 이야기를 곁들여 설명해주는 양정무 교수의 설명을 재미나게 들었던 생각이 났다. 이후 온라인 서점에서 발간하자마자 메인에 한동안 있었던 책 ‘벌거벗은 미술관’의 첫 인상은 솔직히 부담이었다. 촤르르 넘겨보니 어려운 용어도 보이고 양도 많아보여서 서평은 어떻게 써야하나 싶기도 했다. 내돈내산이었다면 사놓고 한동안 큰 마음을 먹었겠지만 2주 안에 읽고 마음을 정리해야한다니 어떻게든 읽어내겠구나 싶었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너무 즐거워졌다. 작품 속 인물에 담긴 뒷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롭다니! ‘멋진 조각상이군’ 하며 끝낼 것이 아니라는 것이 눈과 손을 이끌었다.  작품에 담긴 서양의 -백인들의- 우월주의에 대해 벗겨보며 ‘원래는 없다’를 알려주니 덥석 배웠다. 무엇인가 기준을 삼게 되면 그 기준에 대해 경외감과 다른 것을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이 생기게 되나 보다. 사실 나는 그런 기준이 있었다는 것도 몰라서 ‘아 그렇군.’ 하며 오히려 편견없이 받아들여져서 나의 무지함이 도움이 되었다. 한국 화가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을 보러 제주에 갔던 날 초등학생 딸 아이는 이런 곳에도 그림을 그려도 되구나 싶어하며 차에서 나눠먹었던 껌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그렇지 꼭 종이에만 그리는 것은 아니지라고 맞장구쳤던 대화가 생각나게 했다.


웃음과 문화, 시대, 인물의 상황 그리고 정치까지 얽혀 돌아가는 모습을 웃음의 유무를 통해 풀어내다니…. 왜 유명하다는 미술관에 전시한 인물화에서는 미소가 잘 보이지 않는지 그래서 역으로 모나리자가 왜 지금 사람들에게 명작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웃음 뒤에 숨겨진 상황 설명을 통해 ‘아 그렇구나 진짜 그렇구나’ 하며 그림을 봤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작품속 인물의 왜 웃는지 왜 웃지 않는지 생각이 날 것 같다. 책에서는 서양 작품 속 웃음을 다루었으나, 오주석의 ‘한국의 미특강’에서 본 것을 떠올리자면 우리나라의 초상화 속 표정을 떠올리니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함께 거론되어서 비교가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배움의 아쉬움이 약간 있었다.  


서양의 전쟁 역사와 맞물려있는 박물관 역사가 소개된 3부에서는 막연하게 알고 있던 미술품의 약탈의 약탈 과정과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서구의 애쓴 흔적들에 대해 바라보며 일제강점기의 많이 빼앗겼던 우리 문화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빼앗고 되돌려주지 않는 이유로 문화의 다양성과 보관의 용이성을 드는 서구 열강의 핑계 위에 유지되고 있는 박물관의 현주소가 특히 흥미로웠다. 영국과 프랑스의 박물관의 건축 양식을 비교하는 부분도 좋았고 맨 뒤에 우리나라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나마 씌어 있어 좋았다. 


코로나19라는 펜데믹을 겪으며 미술이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예측하며 마치는 이 책을 통해 병아리 단계인 내가 너무 고급정보부터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요행을 얻은 기분을 느꼈다. 더 알아보고 싶은 부분도 생겼고 알게 되어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지혜의 별이 반짝거림을 느낀다. 빛의 범위를 좀 더 넓게 그리고 밝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야겠다. 오늘은 600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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