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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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 윌리엄 트레버 / 한겨레출판


단편소설을 오래간만에 읽었다. 주어지기도 했지만 고를수도 있었던 이 책은 표지에서 아껴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물컵을 든 여자가 창밖을 몰래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다. ‘몰래’라는 생각을 한 이유는 창문 아래에 있는 테이블을 발로 밟고 있는 동작과 언제라도 여닫이 창문을 닫을 수 있게 잡고 있는 컵 없는 남은 한 손 덕분이다. 이 여인의 치마폭에 쓰인 ‘밀회’라는 제목과 너무나 어울려 무슨 비밀스러운 장면을 보고 있나 싶어 함께 내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코랄색 글자의 제목이라니 책의 첫인상은 호기심 넘치는 예쁨으로 다가왔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차라 우선 뒤 표지에 쓰인 추천서와 홍보 문구를 통해 어떤 내용일지 가늠을 하며 읽어보았다. 작품마다 비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은 독자에게 비밀이 아니라 작품 속 세상에게 비밀이다. 주인공과 독자는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 -독자가 처음부터 비밀을 알게된다는 것-  인물은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이 처한 비밀을 둘러싼 사건과 세상에 대한 대응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태까지 읽은 대부분의 비밀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물론 장편이 많아서 그랬을 것 같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밝혀지도록 되어 있어 비밀을 쫓아가며 열쇠를 푸는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거나 밝혀진 비밀에 같이 깜짝 놀라는 식이었는데 처음에는 낯설었다. 훅 들어오는 공개-공유인가?-에 말이다. 이렇게 써도 되구나 싶은 소설작법을 하나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밀은 독자에게 비밀이 아니다. 아직 몰라도 될 것 같은 곳에서 툭하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그리고 공유한 비밀을 어떻게 지켜나가는지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함께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삶을 이어나가도록 하는 비밀의 존재 이유가 드러나는 것이랄까? 대부분의 작품을 통해 전체적으로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사랑을 낭비하지 않았다.’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작품을 모두 소화한 후 내게 남은 문장은 이것 단 하나이다. 모든 주인공이 자신의 사랑과 관계있는 사람 또는 사건에 자신의 사랑을 낭비하지 않고 넘치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몇몇 작품은 흔히 알고 있는 소재로서 사랑을 다루기도 했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만은 독특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 속 사랑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형식이라 낯설었다. 그래도 작품이 마무리 되어 갈 때가 되면 낭비하지 않은 그들의 사랑에 대해 되새겨보며 이해보다는 인정해보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마지막에 건진 저 문장을 통해 되새겨보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걸렸는데 그만큼 여운이 긴 작품들이었다. 


사랑을 시작하거나 유지하거나 마칠 때에 원하든 원치않든 생겨나게 된 비밀에 솔직하며 격정과 환희가 아닌 잔잔함과 다정함으로 마음을 채우는 책, 그게 이 책에 대한 나의 총평이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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