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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1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것입니다>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운명은 참으로 묘했다.
내려가는 길 끝에 다다른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빈손으로 세상 속에 멍하니 서 있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가 어떤 책이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세상의 진리와 참된 자아를 찾아나서는 여행'이라고 말할 것이다.
싯다르타의 내용은 그야말로 자아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싯다르타가 고향을 떠나서 수행자(사마나)가 되었다가, 부처(고타마)를 따라나서 가르침을 맞다가, 도시로 들어가서 속세와 욕정(사랑)을 탐하다가, 다시 이를 모두 버리고 뱃사공이 되면서 자연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싯다르타의 내면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로 싯다르타가 무엇을 깨달으려고 하는지 독자는 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책 중간중간에 싯다르타가 계속해서 "참된 자아" "자신의 내면"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싯다르타는 참된 자아를 찾아나서는 수행자로 어떻게보면 신비로와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 헤르만 헤세는, 그를 아주 인간적으로 표현하였다. 부처에게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고(자신이 찾고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친구와 부처를 떠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나는 스승과 가르침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자 했던 것일까?"
그리고 바로 깨닫는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바로 자아였어.."
이렇게 우리는 가끔 우리의 목표를 잃어버린다. 싯다르타는 분명히 수행자가 되기 이전에 참된 자신을 찾아나서리라, 그러기 위해서 수행자가 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 사실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배우려고 하였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부처에게 직접 아무리 훌륭하고 결점이 없는 가르침이라도, 스스로 해탈을 찾아가야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무엇을 배우고자 자문하는 모습, 이러한 모습은 신비로워 보이면서도 사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 후 싯다르타는 소위 '속세의 맛'을 보게 되는데 이 역시 싯다르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끊임없이 싯다르타가 세상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치 그가 우리 범인들과는 다르다는 듯 표현한다. 하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싯다르타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보여준다. 싯다르타는 아름다운 여인, 카말라에게 사랑을 배운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사랑을 배우지 못한다. 그 둘은 서로의 내면은 닮았다고 하지만 아이처럼 서로를 사랑하지는 못한다. 싯다르타는 도시의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경멸한다. 그리고 부를 쌓아가면서 그가 경멸하던 세상 속에 점점 자리잡으면서 자신을 조금씩 잃어간다. 그러면서도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 속에 남아있는 과제, 고뇌를 놓지 않는다. 카말라의 눈을 통해 그가 고향을 떠났을 때 안고 나온 숙제는 그의 속에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슬픔과 함께, 그가 애써 묻었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슬픔을 그에게 알려준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203/pimg_7832711314591312.png)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싯다르타는 결국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속세에서 싯다르타의 모순된 모습은 현실의 우리를 아주 닮았다. 자신을 찾고, 자아를 이루고자하는 우리-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현실에 발을 떼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냈다. 책의 끝, 뱃사공 싯다르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친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어쩌면 이것은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싯다르타는 아마,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것은 사실 우리 모두도, 조금의 노력만 요한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 속에 들어가고, 모든 세상 일에 답을 가지고 있고, 두려움없이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인생을 살수는 없을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 자신과 소통하고자 하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싯다르타의 경지는 아니어도, 지금보다 더 우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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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싯다르타를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10대 때 데미안을 읽고 헤르만 헤세에 반한 후 그의 책들을 찾아 읽었기 때문에 예전에 이미 읽은 책이다. 그 당시 나에게 싯다르타는 종교적이고, 신비롭고, 나와는 세상이 다른 한 사람을 신격화한 책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거의 30년이 지나서 읽어본 싯다르타는 위에 쓴 것처럼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는 수행자가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와 '진정한 나 자신의 힘'을 믿고 있는 사람으로서 싯다르타는 조금 더 친근한 인물로 느껴졌다. 작가 역시, 우리 속에 있는 싯다르타를 찾기를 바라며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보며 책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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