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 책인 줄 알았다.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분명히 미국인에 가까운데, 지명도 미국으로 보이는데도 내용은 한치의 차이도 없이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을까? 위안이 되기는커녕 씁쓸했다. 본디 힘이 있는 자는 힘이 없는 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교실에서 맨 앞에 있는 아이가 보이는 세상과 가장 뒤에서 앞을 바라보는 아이의 세상은 다르다. 교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뒤에 앉은 아이의 발언은 맨 앞 아이에게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산다. 



가부장적이라고 표현하기 전에 부계사회로 사회가 이어지면서 성별의 중요성에 차이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모계사회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현대의 도시인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모계사회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다. 생물학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생활인으로서의 모습부터 말해보자는 거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남자도 여자도 불평등한 삶을 배제하자는 인본주의에 가깝다. 그런데 맞벌이인 부부가 아이가 아프면 누가 휴가를 내는가? 휴가를 내기 쉬운 사람이라고 말하면 차라리 낫겠지만 대부분은 엄마가 우선한다. 최근에는 늘어나는 양상이 개미만큼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변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도 멀어 보인다. 



한국의 가부장적인 상황에서 유독 심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에 보면 거기나 여기나 여자로 태어나서 겪는 부당함은 겪지 않고서는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도 너희 남편은 잘 도와주잖아.라는 말에 담겨 있는 답답함이라니. 휴우. 어디서부터가 문제일까?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가? 기득권층이 자발적으로 내려놓을 리는 없지 않은가. 



성이 다른 것이 능력의 차이를 발생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활 양식에서 보이는 부분부터 말해보자는 거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책을 읽었는데 책만큼 답답해진다. 내게도 마주한 문제여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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