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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
전선영 지음 / 꿈의지도 / 2019년 6월
평점 :
미국에서 석박사 유학을 한 저자의 이야기다. 다녀온 경험이 있다면 아마도 더할 나위 없이 공감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펀딩을 받고 공부를 했기에 더욱 아끼고 살뜰히 살아야 했고 사람이 피폐해지기도 함을 담담하게 또는 유쾌하게 썼다.
누군가는 부러워만 할 수도 있다. 유학이라니 게다가 미국? 돈이 많아서 집에서 보내는 부르주아적인 느낌을 받았다면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을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석사생 펀딩은 흔치 않다. 특별한 전공이라면 모를까. 특히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비자 발급에도 치사하기 짝이 없는 미국이기에 여유 있는 생활 따위는 패밀리 펀딩 (가족 장학금이라 부르며 부모님 돈이라는 뜻)이 충분한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석사를 지나 박사나 포닥쯤되면 삶이 약간은 나아지지만 논문 제조기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뚝딱 써내는 선배 박사들을 보면 쉽게 그냥 쓰는 것처럼 보이기에 공부가 쉬운 줄 알았다. 논문 하나 쓰는 것도 수정하는 것도 살을 깎아내는 기분인데 저리 수월하게 쓰다니 보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러웠다. 잠도 안 자나, 밥도 안 먹나 그런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그 속에는 쌓이고 쌓여서 켜켜이 담긴 시간이 있었음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타국 생활의 서러움도 슬픔도 아쉬움도 내일 해야 하는 과제를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있었고, 학기가 끝이 났다. 바깥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하루를 겨우 채워 나가는 시간이었다.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의 저자는 프로듀서가 되기를 지망했었고 준비하다가 유학으로 길이 바뀌었다.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이 보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 아닌가 싶은 구석도 있다. (GRE 점수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상당히 소모된다. 토플도 그렇고. 대학원 지원의 필수 서류이기에 이것이 준비되어 있었다면 유학이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무엇이든 허투루 쓰지 않은 저자의 과거가 유학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준 것이라 생각한다.
학위 과정을 마치고 나면 논문 투고처럼 지루하고 피를 말리는 시간이 기다린다. 바로 직장 구하기다. 하고 또 하고 또 해도 그 시간은 참 아프다. 가끔 잡 헌팅계의 슈퍼스타들이 있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저자도 아니었다. 그 시간을 담담히도 적는다. 그리고 유머도 있다. 너무 정신이 없어 기록조차 남기지 못했다는 시절을 생각하니 비슷한 마음으로 아팠던 시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세계 다른 나라, 어디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수업에 과제에 논문에 매여 사는 공부 하는 이들의 삶. 박사학위는 앞으로도 평생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주는 거라는 저자의 말을 다른 선배 박사들에게도 들었다면 모두 비슷한 마음이라는 의미일 거다. 공부는 그런 것이었다. 분야를 떠나 계속해야 하는.
그래서 저자의 캘리포니아행이 마치 나의 일인 양 반가웠다. 저자의 옆지기와도 끊임없는 도전 끝에 얻어낸 현재의 모습이 내 친구의 성공처럼 다가왔다. 매일을 견뎌내고 버텨낸 훈장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책은 성공기가 아니다. 겨울은 흰색뿐이었다는 그 시간의 뒷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