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데미안은 나에게도 그러했다. 작가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나면 속 자신을 끄집어내기에 이르른다. 데미안은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를 향하는, 한 존재의 치열한 성장의 기록이며 진정한 자아의 삶에 대한 추구의 과정이 성찰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하여 헤르만 헤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며 누구나 나름으로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서로 다른 세계 속 이야기를 시작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가 보는 첫 번째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고 그 세계는 협소해서 사실 그 안에는 내 부모님밖에 없었다. 그 세계는 내가 유년 시절 겪었던 세계이기도 했고 다시 떠올랐던 나만의 세계이기도 했다. 부모라는 이름의 세계는 사랑과 엄격함,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규율이기도 했지만 그 세계에 속하는 것은 온화한 광채, 맑음과 깨끗함이었다고 말하는 싱클레어. 그에게 부모님의 세계는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반면 또 하나의 세계가 이미 싱클레어의 집 한가운데서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냄새도 하는 말도 약속하고 요구하는 것도 모두 달랐다. 그 두 번째 세계 속에는 하녀들과 직공들이 있고 유령 이야기와 스캔들이 있었다고 하니 그의 두 번째 세계는 또 어떤 의미였을까?
두 세계를 가르는 균열들을 바라보며 싱클레어는 이제 낡게 느껴지는 많은 규범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며 새로이 점검하기에 이르는데...거기서 얻는 많은 생각들과 인식들이 그를 유년의 맑고 밝은 한 세계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이 과정은 괴롭지만, 진정한 자기 자신을 향하는 길에서는 결국 투쟁하여 벗어나야 할 세계이기에 그 투쟁의 길을 걸어가려는 주인공 싱클레어를 통해 나 역시도 서서히 나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다. 과연 싱크 레어는 두 개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자신이 원하는 데로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될까?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며 이 세계에서 난 나만의 자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뜨린 데미안. 여전히 자기 자신의 길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를 향하던 그의 열망은, 결국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와 결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싱클레어 역시 꿈속에 나타나는 자신의 열망에 갈등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길을 향하는 구도와 무의식 속의 열망이 결합하며, 하나의 온전한 이미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현실로 된 인물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싱클레어는 그녀를 연모하며, 또한 스스로의 길에 몰두하는 이들의 진정한 삶을 경험하게 될까요?에 마부 인과는 또 자신이 늘 말하던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될까요? 데미안을 바라보며 어느덧 자신이 데미안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싱클레어... 누구나 자신이 꿈꿔온 삶이 있듯 어쩌면 모두의 마음속에 데미안이 숨 쉬고 살고 있진 않을까?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 데미안을 통해 한 발짝 더 나아가길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