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크리스티앙 보뱅 (저자) 1984북스(출판)
작은 파티 드레스, 그리움의 정원에서, 환희의 정원, 가벼운 마음을 읽고 너무 짙은 여운에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품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읽어보려 합니다. 그 이전 작품이 사랑에 대한 찬가에 대해 작가가 썼더라면 이번 흰옷을 입은 여인은 크리스티앙 보뱅이 19세기를 살았던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게 바치는 애정과 경의요 한 편의 시적 전기물이라고 합니다. 삶을 가장 삶답게 살기 위한 해답이 어쩌면 이 안에 다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이 그려낸 에밀리의 모습! 그녀는 천재적이면서 그녀가 타인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순수함과 염려스러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에밀리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려내는 시, 즉 그녀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였을까요? 백지 위로 몸을 숙이고 어머니의 멜랑꼴리를 모든 길 잃은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바꾸어 가는 작업이라고 말한 에밀이. 그런 에밀리를 성녀라고 이해한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 속에는 에밀리가 담겨있습니다.
에밀리의 임종을 시작으로 마지막까지도 죽음이라는 매개체로 끝을 내며 온전히 크리스티앙 보뱅의 시간 속 무의식 흐름 속에서 전개되었고 다소 어렵게 느껴질 법한 시간 속 여행은 인간의 내면과 그 안에 담긴 심리적 요소가 하나의 기억으로 자리 잡습니다. 보뱅이 곧 에일리였고 그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듯싶었습니다.
에밀리의 일상이 펼쳐질 때엔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가 현실의 삶 속에서 얼마나 에밀리 자신의 삶과 충동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 안에 난 또 다른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부모와 자식 간의 연민까지도 생각하게 만든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과 부딪히면서도 끝내 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후에 에밀리는 그를 찾으며 아버지 꿈을 꾸고 시를 쓰는 그녀의 모습에 과연 인간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었네요.
아이와 어른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던 그 깊이에 다시금 가까워져가는 뜻 모를 이유들... 각자의 몸속에 흐르는 영혼의 의식에 다가가기 위해 인간은 하프 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임종을 마주한 에밀리의 모습에서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표현이 너무나 가슴을 적셔오기도 했으니까요. 에밀리의 글, 그것은 곧 그녀의 삶이 아니었을까요? 점점 더 많은 공백이 생겨나고 줄임표가 늘어가는 그 과정들이 마치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과 참 많이도 닮아있는 듯합니다. 그 과정들은 어쩌면 온전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시간들은 아니었을까요?
흰옷을 입은 여인은 에밀리 디킨슨에게 바치는 크리스티앙 보뱅의 전기문학이지만 다른 전기문 학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의 글들을 통해서 에밀리의 삶 속으로 잠시 여행을 다년 온 기분이랄까요? 두 영혼의 만남에 잠시 초대된 난 이제 마지막 문을 닫으려 합니다. 서로의 세계 속에 크리스티앙 보뱅의 언어로 다시 만나게 된 에밀리의 세계는 나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해 주었고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 그 의미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시간들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던 흰옷을 입은 여인을 통해 보뱅의 세계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