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를 많은 독자들이 접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유명한 고전소설이기도 했고, 뮤지컬이나 영화로도 상영화되었다는 점에서이다. 하지만 153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19세기 러시아 농업의 현실과, 철학, 종교 사회적인 문제를 곳곳에 다룬 소설임과 동시에 저자 레프 톨스토이는 1870년대 러시아 사교계의 위선적인 면모를 비판했다고 한다. 아마도 안나 카레니나는 그런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 속에 탄생한 작품이었기에 그 안에서 레프 톨스토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반영했으리라 생각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비롯되어지는 것일까? 가정이 망가져도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지는 것도 말이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오블론스키 집안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자신의 탓임을 알면서도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서른넷의 스테판 아르카디치 오블론스키공작...모든 비밀이 담긴 편지를 알게 된 아내 돌리. 그럼에도 용서는커녕 미소를 머금고 있는 공작. 바람피운 그를 보고 있자니 참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모든 게 바보 같은 표정 때문이라고 하는 공작. 아내를 좀 더 확실히 속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남자. 지금 누구 탓을 하고 있는 거지? 행복한 가정을 한순간 무너뜨린 자신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단 말인가? 아니지 아니겠지... 혼잣말을 되뇐다. 이거 첫 장부터 심상치 않다. 부부 사이에 또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신뢰가 처참히 깨져버린 상황 속에서 이제 이들 부부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너무 궁금했다.
고통은 어느새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이런 운명마저 받아들여야 하는 그녀 자신이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9년간의 결혼생활이 자신의 실수로 망가지는 것은 싫었던 것일까? 그는 아내 돌리에게 용서를 구한다. 사랑이 뭐길래... 바람피운 남편을 당장 떠나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한다. 다섯 아이들을 두고 더군다나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에게 화해하고자 온 저 친절함조차도 그녀는 역겨울 따름이다. 자신이 이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었음에도 행복해 보이는 남편 스테판을 보며 그녀는 또 한 번 좌절한다. 용서를 구걸하는 스테판 정말 내 눈에도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나 같으면 저런 남편과 살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편 그의 동갑 소꿉친구 레빈이 그를 찾아왔는데... 서로 친하다면서도 속으로는 경멸하는 듯한 모습들에서 또다시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이 비친다. 스테판의 여동생 키티와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키티의 오빠와 친구 사이인 레빈이 조금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혼자만의 사랑, 자신은 안될 것이라는 생각들이 레빈이 더 이상 키티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 안정적인 직장도 사회적 지위도 없던 서른두 살의 레빈은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내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남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중시하고 자신이 특별해야만 사랑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단 말인가? 사랑의 가치가 그런 곳에서부터 오다니! 스스로 못난 존재로 여겼던 그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키티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올라온 레빈! 그의 결심이 이루어질까? 사랑은 레빈처럼~~~어느새 레빈을 응원하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편 스테판의 여동생 안나는 오빠 집에 방문하기 위해 모스크바 역에 하차하고 그곳에서 군인인 브론키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둘의 만남이 앞으로 안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인연일까... 악연일까.. 안나는 이미 유부녀인데 말이다. 총 3권 중 이제 1권을 읽었지만 안나보다는 아직 주변 인물들에 대한 비중이 더 커 보였다. 하지만 안나 주변 인물들 또한 톨스토이가 비판했던 것 처럼 사교계의 위선을 낱낱히 보여주고 있었기에 흥미로움이 가득 차 읽는 내내 지루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안나와 브론키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빨리 2권을 찾게 될 뿐이다. 어쩌면 안나는 이미 남편에게 들켜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승마경기에서 브론키의 부상에 경악하는 모습은 사람들로부터 멸시 받기에 충분했다. 불륜관계를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을 그녀는 어기고 말았던 것이다. 레빈와 키티,안나와 브론키 이 네 명의 각기 다른 사랑방식이 어쩌면 그 시대 상류사회 러시아를 대변하는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안나가 남편 카레닌을 떠나 불륜 관계 속에서 과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