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저자) 한스미디어(출판)

아무리 아등바등해봤자 신의 섭리처럼 나는 하류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욱 두려운 건 아마도 이 법칙이 사회에 나가서도 이어지리라는 사실.

p11

한 달 후면 지구와 소혹성이 충돌하여 지구가 멸망한다고? 그럼 그 한 달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까? 인류가 끝난다. 한 달 후면... 짧다면 그 짧은 나날들을 어떻게 보낼까? 도입 부분부터 날카롭다. 무엇이 에나 유키를 이토록 어린 17세의 고등학생 나이에 불구덩이로 밀어 넣고 있단 말인가? 벌써부터 두려움에 앞서 있어야 할 그녀 후지모리가 염려스러웠다. 그런 에나를 더 힘들게 만든 건 아무런 죄의식 없는 반 아이 이노우에와 그의 패거리들이다.


에나에게 자신이 할 일을 미룬 채 각종 심부름을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어딘가 모르게 불량해 보이는 이노우에와 패거리들... 에나 유키는 그들 사이에서 무사히 학교생활을 마칠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왠지 지옥과 천당을 오가고 있는듯한 유키를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했다. 학교폭력의 실태에 관한 소설인가라는 착각이 불러일으켜질 만큼 말이다.

에나 유키의 일상은 지구 종말이라는 평범하지 못한 한 달이 오히려 더 편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소설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뚱뚱하고 자신이 쓸모없다 여겨지는 에나 유키. 그가 짝사랑했던 어여쁜 미소녀 후지모리와의 약속! 나중에 도쿄에 같이 가자던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늘 마음속에 담아두며 지내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모든 남자들이 우러러보았던 미소녀 후지모리를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되고 그녀와 도쿄에 가기로 약속했던 옛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에나 유키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그녀를 지키기 위한 에나의 고군분투가 시작되지만 반에서 그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이놈의에 패거리 집단에 그는 온갖 심부름을 하며 괴롭힘을 당하는데... 과연 그의 짝사랑 후지모리를 그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에나는 운송회사 다니시며 늘 자신을 응원해 주시는 어머니께 당당히 좋아하는 여자를 따라 도쿄를 따라가려는 계획을 얘기하고, 어머니는 한 달 후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속보를 듣고 아들이 걱정되었지만 쿨하게 아들을 보내준다. 엄마와 아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도 강했던 모습이었다. 자신을 낳아준 진짜 부모님을 찾기 위해 LOCO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간다하고 도쿄를 가야만 했던 후지모리의 용기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전제 속에 펼쳐졌다. 후지모리의 부모님을 찾는 여정에 에나가 함께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심은 그렇지 않아서 웃음을 잃어버린 것이리라. 머리와 마음. 우리는 그 두 개의 바퀴를 나란히 굴리기엔 아직 서툴러서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때때로 이상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만다.

p100

한 달 후 지구 멸망이라는 것에 유나가 할 수 있는 일, 후지모리가 할 수 있는 일 등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뜻을 이루고자 계획대로 움직인다. 과연 그들의 계획은 뜻대로 이루어질까? 눈앞에서 사랑하는 여자가 강간당하는 모습을 본 에나는 그녀를 지키고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만다. 과연 그들에게 어떤 고난과 역경이 펼쳐지게 될까? 이제 겨우 17살이다. 한편으론 이노우에가 하는 짓이 너무 형편없어서 벌이나 받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갑작스러운 전개에 나조차도 놀라웠다.


멸망 속 샹그릴라는 그렇게 종말과 죽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째 총 4편의 단편이 이루어진 소설이다. 멸망 이전 그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시간들... 인생이 실패라 생각되었던 그들이 비로소 나 자신을 사랑했던 내 가치의 존재를 멸망 이전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평범했더라면 이루지 못했을 꿈들이 멸망 이전 이루어지는 다소 모순적이면서도 극적인 그들의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빛이 떠올랐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 떠오르는 태양의 빛처럼 말이다. 포기하고 싶던 소설 속 그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