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 - 1세대 페미니스트 안이희옥 연작소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역사가 된 일상의 기록
안이희옥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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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안이희옥(저자) 열린 책들(출판)

조실부모하고 계모 밑에서 자란 아이라고 얕보면 안된다. 늘 올바르게 살아내야 해. 그래야 내가 산다.

p15

노년에 접어든 독신 여성의 삶과 기억을 펼쳐낸 안이희옥님의 연작소설 안젤라를 만났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을, 아버지의 세월을 화자는 다시 되뇌어 보면서 글은 시작된다. 안갯속을 헤매는 그녀의 말들이 그녀의 지금 모습을 비추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 시대의 가장 힘없고 나약했을 존재들에 대하여 작은 위로의 말조차도 때론 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8.15시대 갈등과 긴장 사회, 6.25 잔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 5.16프락치와 짭새 그리고 감시사회였던 그 시대에 안젤라가 있었다. 그녀는 평생 씻을 수 없는 기억들 사이로 생을 살아야 했지만 버틸 수 있었을까? 그녀의 정신 깊은 곳에서는 그날에 받은 온갖 고문과 정신적 장기적인 고통 속에 정신과 치료가 항상 뒤따라야만 했다. 유신시절 많은 청년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남겼던 그 시대를 살았던 안젤라.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소녀였던 안젤라도 세월과 시대에 시달리며 우울한 여인으로 변해왔다.

p54

여성 학생 최초로 단상에 올라갔었던 소설을 쓰는 주인공 안젤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극배우 판도라와 같이 술을 한잔 기울이고 있을 때 세 살 아래 동아리 후배 연화로부터 전화가 오고 안젤라는 연화와의 추억을 되새긴다. 감시가 살벌했던 유신시절 공포정치시대를 걸쳐왔던 그들... 유독 선배들과 어른들을 잘 따랐던 연화, 시인이 되어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던 연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안젤라는 병으로부터 고독하게 지냈을 연화를 떠올린다.

삶이 인생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또다시 안젤라를 통해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대학 후배 연화의 암 투병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가난했던 그 시절 악착같이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해 감사일을 하며 지금의 남편 정교수를 만났다.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악착같이 살던 그녀의 투병 생활에 안젤라는 선배로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연화를 병문안 간 안젤라와 연화는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네 인생이. 특히 연화의 인생이 충분히 익어 갈 시간을 허락하소서.설익은 채 안타까이 지지 않게 하소서

p62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 무당인 엄마와 재개발 구역 용역으로 일하시는 아빠 밑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시간강사를 하며 교수인 남편을 만났고 연화는 아들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던 그들에게 찾아온 연화의 담도암은 모든 걸 무너뜨린다. 안젤라는 대학시절 누구보다 당찼던 연화와의 추억을 또다시 되새긴다. 유신 체제 속 일제식 교육을 해야만 했던 안젤라. 교사로서 그녀는 그런 것들이 불만스럽다.

연화와는 달리 안젤라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부정적이다. 오히려 교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책 읽을 시간이 없고 글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녀는 작가를 꿈꾸고 있었고 연화는 안정된 가정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둘은 극명하게 서로 다른 삶을 추구하며 살았었다. 그런 연화에게 안타까운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살았을 연화가 불쌍했다. 자신을 만나 고생만 하다 간 것 같은 것이라 생각만 드는 연화 남편 정교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소문들을 믿어서라도 떠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서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정작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실적 허구에 깊은 혼동이 오기 시재했다. 그러기엔 그들의 삶이 너무 안타깝기 그지없었고 그러기엔 그들의 삶이 너무나도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7편의 소설은 다 다를 것 같지만 어찌 보면 한시대를 겪어온 하나의 이야기이다.

여성이 자율적으로 살려면 경제력이 필요하듯이, 남성 위주 사회에서 뜻을 펴려면 재정부터 자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p209

전쟁 속 이야기, 유신적 권속 이야기, 남성 권력 속 여성 이야기, 민주화 운동권 이야기 등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과거와 현실 미래를 넘나들며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호소가 우리들 마음속에 닿기를 바라며 한없이 고통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노년의 여성들, 현대의 여성들 그리고 앞으로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젊은 여성들에게 현실감 있는 깊은 조언과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안젤라 그리고 소설 속 안젤라 곁을 지켜주었던 수많은 주인공들로 난 오늘도 그들의 삶 앞에 작은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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