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봤어 - 땅에서 하늘로, 인류의 내일을 향한 여정
김유재 지음 / 행복에너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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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거운 결정은 가장 차가운 평온 속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심장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것은 대개 몸이 아니라 마음이고, 기술이 아니라 방향이며, 속도가 아니고 책임이다. 그래서 한 기업의 역사를 돌아볼 때도 우리는 숫자보다 먼저 그 안에서 무엇이 계속 뛰어왔는지를 보아야 한다"(367페이지)

 

내가 현대와 정주영회장이라는 이름을 느끼게 된 것은  1998년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가던 그 비현실적인 장면과 군대를 제대하고 1992년 노(老)기업인의 몸으로 대선판에 뛰어들던 낯선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사진 한 장을 들고 다니며 아직 짓지도 않은 조선소의 배를 수주해 왔다는 유명한 일화, 모두가 미쳤다고 손사래 칠 때 “이봐, 해봤어?” 한마디로 밀어붙였다는 그 특유의 화법은, 이제는 신화처럼 굳어져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웬만한 30대 이후의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다. 저자는 이 신화를 멀찍이서 우러러 보는 대신, 가까이 다가가 그 사람의 체온과 고집을 되살려 놓는다. 또한, 정주영회장이 일구어 놓은 현대그룹 중에서 특히 현대자동차를 이끌어 왔던 정몽구회장, 지금 현재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의선회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쉰을 넘긴 눈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결이 새삼 만져진다. 그의 도전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없는 나라에서 없는 산업을 맨손으로 세우는 일 앞에서, “해봤어?”라는 물음은 객기가 아니라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내 부모 세대가 묵묵히 견뎌낸 그 시대의 공기가 문장 사이에서 올라온다. 동시에 조금 부끄러운 자문도 든다. 나는 내 인생에서 “해봤어?”라는 질문 앞에 얼마나 자주 “안 될 것 같다”는 대답으로 물러섰던가. 이 책이 처음부터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2대 정몽구 회장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면 결이 사뭇 달라진다. 창업자가 ‘없던 길을 낸’ 사람이라면, 그의 아들은 ‘낸 길을 반듯하게 다진’ 사람이었다. 외환위기의 한복판에서 흔들리던 기아를 품에 안았고, 품질과 현장을 앞세워 조롱받던 국산차를 세계 5위권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화려한 웅변보다 공장 바닥을 직접 밟는 뚝심의 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50대 직장인이 된 나는 오히려 이 대목에 더 깊이 공감했다. 세상을 단번에 뒤엎는 일보다, 맡은 것을 흠 없이 굴러가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지난하고 외로운지를,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기 때문이다. 창업의 도전이 눈부시다면, 계승의 도전은 눈에 잘 띄지 않아 더 서럽다.

 

그리고 3대 정의선 회장이다. 2020년 그룹의 키를 잡은 이후, 회사가 내놓는 화두는 할아버지 시대와는 전혀 다른 언어로 쓰여 있다. 전기차와 수소, 독립 브랜드로 자리 잡은 제네시스, 로봇 기업을 사들이고, 자동차를 소프트웨어로 다시 정의하며, 하늘을 나는 이동수단과 고성능 레이싱까지 넘본다. 강판을 두드려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가 이제 로봇과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진짜 미덕은 정주영을 박제된 위인으로 모셔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그 낡고도 단단한 물음을, 읽는 사람의 손에 슬쩍 되돌려 준다. 현대그룹 3대의 선택과 결정을 되짚어 읽는 일은, 결국 내 남은 시간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었다. 그 물음을 오래 곱씹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봐, 해봤어?'의 정신으로 남은 삶을 도전해 보자.

 

**출판사 이벤트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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