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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씽킹 - 데이터, 공감, 전략을 함께 쓰는 AI 시대의 사고법
정병익 지음 / 에피케 / 2026년 6월
평점 :
답을 찾는 힘과 질문을 세우는 힘 사이에서
정병익 저자의 『하이브리드 씽킹』은 로지컬 씽킹과 디자인 씽킹에 대해 “경쟁하는 두 진영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 해결이 통과해야 하는 두 개의 관문이라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두 사고의 닮은 점은 생각보다 근본적이다. 둘 다 천재의 영감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기술이라 선언하고, 둘 다"이럴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운 뒤 깨뜨려 보는 방식으로 전진하며, 둘 다 머릿속 생각을 밖으로 꺼내 타인과 공유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일을 중시하고, 궁극적으로는 설득을 향한다. 논리는 근거로 설득하고 디자인은 경험으로 설득할 뿐이다. 그럼에도 차이는 분명한데, 그 차이는 방법이 아니라 문제의 상태에서 온다. 로지컬 씽킹은 문제가 이미 정의된 세계에서 강하다. 문제를 쪼개고 원인을 분류하고 근거를 쌓아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방향은 아래로, 좁게. 디자인 씽킹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합의되지 않은 세계에서 힘을 낸다. 관찰과 공감에서 출발해 풀어야 할 진짜 질문을 다시 세운다. 방향은 옆으로, 넓게. 논리는 논증으로 검증하고 디자인은 실험으로 검증하며, 논리에서 오류는 제거할 결함이지만 디자인에서 실패한 프로토타입은 다음 라운드의 가장 값싼 정보다.
로지컬 씽킹과 디자인 씽킹을 잇는 것이 디스커버(Discover)–디벨롭먼트(Development)–딜리버(Deliver)의 3단계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구조를 읽으며 두 사고의 관계가 비로소 시간 축 위에 놓이는 것을 느꼈다. 디스커버는 발산의 국면이다. 고객과 현장을 관찰하고 공감하며 문제의 진짜 얼굴을 찾아내는 단계로, 디자인 씽킹의 문법이 주도한다. 여기서 서두르면 잘못된 질문에 완벽하게 답하는 정교한 문서가 나온다. 그 다음 단계로, 디벨롭먼트는 수렴의 국면이다. 발견된 문제를 구조화하고, 대안을 논리로 검증하고 다듬어 해법의 꼴을 갖추는 단계로, 로지컬 씽킹이 무게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딜리버는 로지컬 씽킹과 디자인 씽킹을 혼합한 해법을 실행 가능한 형태로 세상에 내놓고 반응을 받아 다시 다듬는 국면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단계가 일직선의 릴레이가 아니라 나선이라는 점이다. 딜리버에서 얻은 배움은 다시 디스커버의 재료가 된다. 발견 없는 개발은 헛돌고, 개발 없는 발견은 공상이며, 전달 없는 개발은 서랍 속 보고서로 남는다.
저자가 정리한 여덟 가지 문제해결 패턴은 이 3단계를 실무의 언어로 번역해 준다. 세부 명칭보다 나에게 와닿은 것은 그 밑에 깔린 통찰이었다. 현실의 문제는 하나의 얼굴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인이 명확해 분석으로 풀리는 문제, 이해관계가 얽혀 조율로 풀리는 문제, 고객의 숨은 욕구를 발굴해야 풀리는 문제, 아예 판을 새로 짜야 풀리는 문제가 각각 다른 사고의 배합비를 요구한다. 유능함이란 하나의 만능 도구를 쥐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문제가 여덟 패턴 중 어디에 가까운지 먼저 진단하고 로직과 디자인의 배합을 조절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저자의 요지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함정을 피하라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뼈아픈 경고다.
그렇다면 성과를 내는 조직은 어떻게 일하는가. 책이 그리는 조직의 초상은 의외로 소박하다. 그런 조직은 두 사고를 부서로 분리하지 않는다. 기획팀은 논리, 디자인팀은 공감이라는 분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두 문법을 오가고 회의 테이블에서 발산과 수렴의 국면을 의식적으로 구분한다. 아이디어를 내는 시간에 타당성을 따지지 않고, 결정하는 시간에 새 아이디어로 판을 흔들지 않는다. 실패한 시도를 문책의 근거가 아니라 학습의 데이터로 취급하고, 그래서 작게 빨리 실험한다. 무엇보다"이게 정말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맞나"라는 질문이 직급과 무관하게 허용된다. 성과는 뛰어난 개인의 두뇌가 아니라 두 사고가 순환할 수 있는 안전한 절차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AI 시대에 더 절실해진다. 생성형AI는 자료를 정리하고 근거를 정렬해 보고서 꼴을 갖추는, 디벨롭먼트 단계의 하방을 평준화해 버렸다. 그러나, AI는 답을 줄 뿐 질문을 주지 못한다. 디스커버의 공감과 딜리버의 책임은 여전히 맥락 속에 서 있는 인간의 몫이고, AI가 짜온 그럴듯한 구조가 실제 법령 체계와 어긋나는지 가려내는 검증의 논리 또한 인간의 몫이다. 논리는 더 저렴해졌지만 더 중요해졌고, 공감은 더 대체 불가능해졌다.
내 일에 얹어 보면 이렇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체계에서 목표·방침·위험성평가 절차를 갖추는 것은 디벨롭먼트, 순수한 논리의 영역이다. 그러나 작업자가 왜 안전대 고리를 걸지 않는지—걸 곳이 없어서인지, 공기 압박 때문인지, 지적이 두려워서인지—를 알아내는 일은 디스커버이며, 감사가 아니라 관찰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한 개 현장, 한 개 공정에서 두 주간 돌려보는 시범 운영이 딜리버다. ESG 체계도 개인정보 보호 체계도 같다. 형식적 컴플라이언스는 논리가 만들고 실효성은 디자인이 만들며, 그 실효성을 다시 증빙으로 되돌려 감사에 견디게 하는 것은 또다시 논리다.
결국 이 책이 남긴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태도였다. 논리는 이미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다루는 힘이고, 디자인은 아직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힘이다. 기획과 실행을 함께 지는 사람은 둘 중 하나를 고를 자격이 없다. 문제를 진단해 패턴을 읽고, 발견하고, 다듬고, 내놓는 순환을 조직의 습관으로 만드는 것. AI가 답을 대신 써 주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일이 질문을 세우는 일이라면, 이 얇은 책은 꽤 무거운 숙제를 남기는 셈이다.
#하이브리드씽킹#자기계발#경제경영#사고의개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