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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애비게일 터커 지음, 이다희 옮김 / 마티 / 2018년 1월
평점 :
표지 디자인이 과감하다. 문틈으로 앞발을 내밀고 날카로운 한쪽 송곳니를 드러낸 채 크고 둥근 눈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뭔가 하려 애쓰는 고양이 사진 말고는 심지어 제목조차 없는 앞표지. 독자는 뒤표지를 보고서야 비로소 이 책의 제목과 내용을 알게 된다. 표지를 보고 책에 흥미를 느낀 독자가 꽤 있을 법하다. 표지 디자인 문법에 대한 신선한 '도발'이 호평을 받아, 한 신문사에서 선정한 표지 디자인이 잘된 올해(2018)의 책 다섯 권 중 한 권으로 뽑히기도 했다.
표지만 보고 말랑한 책이리라고 지레짐작한 독자는 조금 당혹스러울 터이다. 요즘 서점에서 인기인, 고양이에 관한 가벼운 에세이가 아니라 번듯한 학술서(더 정확하게는 nonfiction)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와 연구 결과를 섭렵하면서 고양이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인간과 공생하게 되었는지, 더 냉정히 말하자면 어떻게 인간을 집사로 부리게 되었는지, 그 성공 요인을 과거와 현재를 통해 탐색하고 있는데 결론은 좀 허망하다. 실용성과 합리를 중시한다는 인간의 자부심이 무색하게도, 고양이는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심지어 쥐도 잘 안 잡거나 못 잡는다.) "인간은 인간이 언제나 목표 지향적이고 모든 것을 의도대로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허튼소리이고, "고양이가 성취한 성공의 중심에는 인간의 변덕과 애착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가 인간의 거실을 차지하게 된 것은 얼굴이 인간 아기를 닮아 귀엽고 함께 있으면 왠지 행복감을 준다는 상당히 비합리적인 이유에서다.
본문만 300쪽이 훌쩍 넘는 이 책은 결국 '쓸모없음의 쓸모(無用之用)'를 애써 찾는 거의 쓸모없는 노력으로 일관하는 셈인데, 학술서의 외투를 걸친 이 허무한 탐색기가 그래도 감칠맛 나게 읽히는 것은 유머 감각 풍부한 고양이 집사 저자의 문체 덕분이고, 그 문체를 잘 살린 역시 고양이 집사인 번역자의 노고 덕분이다. 독자의 허탈감이 지나쳐 혹시 리콜 요청이라도 빗발칠까 우려했던지, 저자는 생태계 교란자인 외부 침입자요 고도 육식동물인 비실용적 고양이와 성공적으로 공생 관계를 구축한 인간의 힘--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광범한 능력--을 예찬하면서 지구상의 여러 생명체를 잘 보살피는 쪽으로 슬기롭게 그 힘을 써 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이는 동물에 대한 탐구가 인간 자신에 대한 재인식으로 마무리되는, 이 부류 도서들의 전형적 결말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