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꽃
조현예 지음, 박태희 사진 / 안목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박태희의 사진은 불친절하다. 제목도, 장소도, 정황설명도 없다. 아주 안타까운 이들을 위해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장소만 살짝 귀띔한다. 이처럼 작가는 모든 선입견을 지우게 한다. 장소에 매이지 않고 소재에 갇히지 않고 또 언어에 묶이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그녀만의 너그러움이다.

  나의 거실 한 모퉁이에 박태희의 사진이 한 점 걸려있다. 나는 그 사진 속에서 매일 다른 풍경을 본다. 그녀의 너그러움이 나의 시선을 풀어놓는 것이다. 때로는 민머리아기를 업고 짐을 이고 가는 아프리카여인에게, 때로는 그 여인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그 땅에선 흔하지 않는 푸른 잎 나무에게, 또 때로는 삶의 척박함을 읽게 하는 울퉁불퉁한 황토빛 흙에 눈길을 주게 한다. 이것을 나는 박태희가 주는 너그러운 불친절이라 명명한다. 

  사막의 꽃, 

  박태희, 조현예의 이 책을 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가려진다’ 혹은 ‘가린다’라는 낱말이다. 비닐로 가려진 한 인부가 비닐 너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경계는 있지만 그 경계는 투명해서 너머의 세상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그 너머에 대해 잠시 ‘주춤’한다. 비닐이라는 견고하지 않은 이 막은 그 너머에 대해 어떤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침내 내가 그 비닐의 세계에 갇혀있음을 깨닫게 되고 갑자기 호흡이 가팔라진다. 소통과 소외와 소원함이라는 낱말들이 줄줄이 따라 나온다. 비닐의 비밀스러움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책을 천천히 넘기다 보면,

  이 비닐의 역할은 점점 다른 사물로 대체되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그것은 넘치도록 퍼붓는 햇살막이기도 했다가, 또 때로는 화면을 반쯤 가리는 뿌연 연기가 되었다가, 또는 화면 전체를 휘감은 짙은 농무였다가, 마침내는 성난 절지류같은 실금 흔적의 유리창이 된다. 그러다가 드디어는 저승의 빛을 가득 품은 버스 차창이 된다. 

  박태희 사진은 이렇듯 비밀을 조금씩 조금씩 누설하는 방식으로 눈길을 붙잡는다. 

  ‘처리’라는 말을 거부한다. 있는 그대로의 전신주와 엉킨 전선들, 이것이 박태희의 진정성이다. 

  윈도 브러시가 날카롭게 걸린 화면 저 멀리 트럭 한 대가 앞서간다. 마치 다른 열정이 불붙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아픔(조현예의 글 부분 인용) 같은 브러시의 외날개...... 그것은 한 순간의 지점에 정지해 있다. 브러시가 슬쩍 한번 닦고 지나가면 앞서 달리는 트럭까지 깨끗이 닦일 것 같다. 덩그러니 놓인 이정표도 한순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화면엔 어떤 것도 놓여지지 않은 無의 상태......열정은 다 꺼지고 말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오면 갠지스강이 연상되는 허름한 강변풍경을 만나게 된다. 뒷장에서 ‘강릉’이라는 정보를 잠깐 훔쳐내어도 여전히 내겐 갠지스다. 강 언저리에 한 노인이 엎드려 강물에 손을 씻고 있다. 아니 어쩌면 어떤 성스러운 주문을 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에는 그 물 속으로 더 따라 들어가지 못하는 강아지 한 마리가 주춤거리며 노인을 지켜보고 있다. 강아지에게서 다시 노인에게로 시선을 옮기면 그 노인은 이제 네 발로 걷고 있는 형상이 된다. 노인은 네 발로 성큼성큼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쯤에서 눈길은 다시, 강아지를 찾게 되는데, 그 강아지는 이미 ‘백수광부의 처’가 되어있다. “님이시여, 그 강물을 건너지 마소.” 강아지는 노인을 향해 거칠게 짖는다.  

  박태희의 사진 속에는 이렇듯 삶의 이야기가 있다. 그 어떤 하나의 사건에도 집중하지 않고 그 어떤 피사체에만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 모두가 소중한 삶의 임무를 지고 있다. 누가 어디에 눈길을 주든 그건 방대한 자유의 세계다. 

  다시 책장을 처음으로 되돌린다. 조현예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 그것은 그녀의 눈만 바라볼 수 있는 슬픈 장님이 되는 길이다. 이러한 사랑이라면 영원히 장님이어도 좋겠다. 그래서 그녀는 일찍, 아주 일찍, 그녀만의 세계로 건너간 게 아닐까. 

           “뜨거운 줄 알면서 다가가고,
            뜨거움에 놀라 도망하고,
            다시 또 불을 향해 달린다” 

  그녀가 도달한 세계는 아마 다 태우고 나서 ‘다시 처음’인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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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게나른 나른나른 2011-06-2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네요.. 추천이 안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