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붉은 현기증! 이 강렬한 제목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시집을 펼치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이다. 목차에서 ‘빨간 잠’이 눈에 띄었다. 이 시가 제목과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 말엔 벼랑이 있다. 그 말이 갖는 유혹에 한없이 빠져든다면 그것은 나르시시즘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면 그 아름다움은 이내 벼랑을 만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는 상대에게 직접 쓸 때 갖는 현혹성은 또 한번 이성의 벼랑을 만나게 한다. 이 언어의 위태로움을 바지랑대 끝에 졸고 있는 잠자리에 비유한 시인의 상상력은 탁월하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이내 그것을 한 여인의 짧은 졸음에 비유함으로서 다양한 해석의 즐거움을 준다. “아름다움은 이렇게 알면서도 위태롭게 졸고 싶은” 유혹이 있다. 빨간 잠 그녀의 아름다움은 졸음에 있다 빳빳 헛헛한 날개로 허공을 가린 저 졸음은 겹눈으로 보는 시각의 오랜 습관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벼랑 위 붉은 가시 끝이 제 핏줄과 닮아서 잠자리는 잠자코 수혈 받고 있다 링거 바늘에 고정된 저 고요한 날개 잠자리의 불편한 잠은 하마, 꺾이기 쉬운 목을 가졌다 아름다움은 저렇게 알면서도 위태롭게 졸고 싶은 것 등이 붉은, 아주 붉은 현기증이다 오래 흔들린 가지 끝 저기 저 꿈속인양 졸고 있는 등이 붉은 그녀 그녀의 아름다움은 위태로움에 있다 시인의 언어에 대한 천착은 ‘문막’이라는 시에서도 계속된다. 문막은 서울에서 강릉 쪽으로 갈 때 들르는 휴게소이름이다. 이 문막이라는 지명에서 시인의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꼬막’‘문학’‘피막’과 같은 낱말이 출현하는 것도 이 지명과 관련이 있다. ‘숙여 들어가거나 들고 나와야 할 것 같이’ 치렁한 막을 느끼게 하는 이 지명은 휴게소 라는 누구나 들를 수 있는 공간과 연결시킴으로서 자연스럽게 이것이 외도(外道)와 공통점이 있음을 눈치채게 한다. 가을에 갖는 서정성은 누구나에게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얕은 바람기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시인의 언어감각은 단순한 말놀이이거나 언어유희에 그치지 않는 깊은 사유의 힘을 갖고 있다. 이 시집은 이러한 시인의 맛깔스런 언어감각과 시인의 서사를 엿볼 수 있는 멋진 시집이다. 外道 처음 알게 된 지명, 문막 꼬막이라는 꽉 다문 조개이름이거나 문학이라는 내 측근 학문 같이 서늘한 문막 휴게소 숙여 들어가거나 들고 나와야할 것 같이 어떤 치렁한 막이 있는 지명 설레거나 깜깜하거나 두 개의 극단심리를 가지게 하는 문과 막 휴게소란 그런 것 누구에게나 쉽게 열어젖히는 가을 서정의 피막 같은 거 지명을 간판으로 내건 휴게소에서 잠깐 서성이다 돌아갈 뿐 아무도 그 마을로 들어가지 않는다 깊숙이 살 숨겨놓고 껍데기만 들었다 놓는 꼬막의 늦고 더딘 외도가 문막에 와서야 덜컥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