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감정 청색지시선 20
김혜영 지음 / 청색종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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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정물

김혜영

식탁에 놓은 레몬
검은 목탄을 가져오고
노란 튤립을 화병에 꽂아요

우리는 정물처럼 앉아
숨을 쉬는데
싱그런 여름이 지나가네요

노랑과 검정의 음영으로
고정된 관계인 우리는
조금씩 변해 갑니다

헤나 염색을 하러 갑니다
붉은 빛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면
재즈 음악이 흘러요

색깔이 단순해져 시원해요
끈적거리지 않는

복잡한 기호가 없는

담백한 만남

정물은 고정되지 않아요
가만히 흐르는 우주의 음악처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렇게...
고요한 정물을 통해 관계와 시간의 변화를 말할 수 있다니!

더구나 살아 있는 존재가 정물이 된 것이 아니라,
정물이라는 형식을 빌려 살아 있는 관계를 바라본다.

불필요한 감정들의 넘침을 지나, 담백한 만남에 이를 수 있다면 기꺼이 노란 레몬 같은 정물이 될텐데....

이 정물은 살아서 흐르는 시간과 존재의 변화를 잔잔히 읽어주고 있다.

허연 시인은 김혜영의 시를 "슬프고도 맑은 아침 첫 햇살에 바쳐진 기도"라고 했다.
이 '노란 정물'에도 레몬빛 햇살이 들이치고, 기도처럼 우주의 음악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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