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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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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좀 말해다오. 내가 정성껏 쓴 리뷰가 왜 한순간에 날아갔는지.


대학교 삼학년 때, 이상심리학을 수강한 적이 있다. 심리학 수업을 고작 세 번 들어봤지만, 그 중에서 유독 손꼽히게 재미가 없었던 수업으로 기억한다. 내용이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고, 수업 시간이 재미가 없었다. 워낙 방대한 내용을 1학기 만에 끝내버려야 했던 탓에 수업 내용=책 내용이었고, 그러다보니 책을 읽고 온 날에는 도무지 수업에서 배울 것이 없었다. 게다가 온갖 정신장애를 보는 대 여섯가지 학파의 관점에 이에 따른 치료법을 하나하나 외워야하는 수업이라니. 더군다나 정신장애의 진단 자체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고, 곧 DSM-5가 개정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배우는 내용은 내년이면 바뀔 수도 있단다. 공부할 맛이 났겠는가.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 꽤 재미있게 공부했다. 수업을 듣진 않았지만 매번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특정 장애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은 재미있었고, 각 사례는 그보다도 재미있었다. 이상심리학은 불안장애부터 정신분열증까지, 현존하는 대부분의 병을 다루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첫장은 이러한 병의 진단과 평가가 사실 불완전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당시 나를 가르쳐주신 저명한 임상심리학자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수업을 가르치다보면 너도 나도 자기가 정신병자 같다며 메일을 보내오곤 한다. 사실 책이 말하는 정신병의 증상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정도의 문제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상심리학이라는 그 두꺼운 책에 나오는 정신장애 중 나와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을 찾기가 힘들기까지 했다. 특히 불안장애라는 파트에서 그랬는데, 강박증, 공포증, 공황장애 등등 불안의 증상과 내용이 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 아무런 정신적 문제가 없다.(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신장애의 큰 진단요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내게 불안 증세가 있다고 해서 내가 불안장애인 것은 아니다.) 그 점을 알게 됐으니 내 내면을 검열하기 위해 수강했던 수업치고 꽤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책을 덮고 나니 저자 스콧 스토셀이 그 수업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그는 아마 '하지만 나는 정도가 심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불안장애를 가진 환자이며, '진단'이 병을 만든다는 일각의 주장에 경험을 들어 반박할 정도로 본인의 불안에 대한 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가 쓴 책을 읽노라면, 이 책을 그냥 대학교재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불안'에 있어서는 전문가다. 특히, 각각 약이 발명되게 된 계기와 그 효과에 대해 그가 서술해놓은 부분에 대해서는 박수를 친다. 사실 생리학적 관점에서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쓴다는 약에 대해 학생들은 거의 외우다시피하고, 시험이 끝나면 까먹어버린다. 그러다보니 각 약의 효과와 그 약과 더불어 심리학의 판도가 어떻게 뒤바뀌었는지는 수업에서 잘 배울 수가 없다. 만약 이런 부분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꽤 도움이 되리라 자신있게 권할 수 있다.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이라는 표지 앞 문구에 어울리게, 책에는 지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공포증과 불안증, 이에 따라 왔던 상황을 묘사하는 글을 썼으면서도 스콧은 이를 '불안'에 대한 지식과 잘 결부시킨다. 희랍시대때부터 있어왔던 정신병에 대한 역사를 자연스럽게 거슬러올라갔다가 프로이트, 윌리엄 제임스, 존 왓슨 등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능력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프로는 달라'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동시에, 그런 프로조차 '불안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평생을 시달리고 있단 생각이 들면 인간이란 참 얼마나 신비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콧이 하버드 박사에 대해 느꼈던 불편감을 나는 백번 이해한다. 원숭이와 내가 복용하는 약이 똑같다니...증상이 나아져도 문제다.)

 

불안 탓에 불안한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사람이라는 사실이 준 고통과 이를 헤쳐나가는 방식,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불안이 가져다주었을지도 모르는 축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어느 정도의 심리학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기에는 조금 뻔할 수 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그러나 그럼에도 진솔하고 좋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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