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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 번째 걷기 여행 -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다독이는
김연미 지음 / 나무수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1년 중 300여일을 전국 곳곳의 길 위에서 서성인다는 여행작가 김 연미씨의
오리지날 여행서적입니다.
오리지날이란 이 책 전에 읽은 '잘 지내나요, 내 인생'과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잘 지내나요..'는 여행 자체를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여행이 곁들여진 삶에 관한 에세이라는 느낌이 강했지요. 반면 이 책은 에세이가
조금 첨가된 순수한 여행서적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여행이 아니라
걷기 좋은 코스 위주로 구성된 걷기 전용 여행책이라고 할까요.
그야말로 저자가 걸었던 장소를 순서에 따라 자세하고도 꼼꼼하고 섬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특이하면서 기발한 것은 단순히 경치 좋고 걷기 알맞은 장소를
그냥 주욱 나열한 게 아니라 계절별로, 그리고 기분 상태별로 분류를 해놓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아등바등 사는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는 서울 남산을,
주말 약속이 취소되어 우울할 때는 용인의 한태 식물원 꽃길을,
(꽃길 산책하다보면 웬만한 우울은 하늘 저 멀리 날아가버릴 것 같죠?)
무뎌진 열정을 되찾고 싶을 때는 충주 하늘재,
고통에 영혼이 병들고 있을 때는 완주 화암사 가는 길,
상실감으로 마음이 허할 때는 부산 이기대 해안 산책로,
애인 없는 크리스마스가 두려울 때는 제주 올레길..
'애인 없는 크리스마스..'는 마지막 챕터의 제목인데 보는 순간
쿡! 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올레길에 혼자 온 여행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이 책을 읽고 그대로 실행하는 기특한 독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우연히 한 장소에 모이게 된 그들이 동성이 아니라면 같은 책의 독자로
서로의 감상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갈 때는
혼자였지만 돌아올 때는 둘이 되는 기적(?)을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이 책은 '잘 지내나요..'를 읽을 때보다 조금 더 바쁘게 읽었습니다.
각 챕터마다 소개해주는 음악 일일이 찾아 들어보고 (유튜브에 안 나와 못 들은 곡과
1분 듣기로밖에 들을 수 없던 곡이 몇 있음) 책도 '다 읽어주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해가면서 읽느라 말이지요.^^
저자가 소개한 책 중 읽어 본 것은 '파이 이야기' 하나밖에 없더군요.
(넓은 바다 위, 조그만 배 안에 함께 있게 된 소년과 호랑이 이야기인데
읽기 전에는 그 협소한 배경과 단촐한 탑승자에게서 무슨 얘기를 한 권 분량
뽑아낼 게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몸은 배 안에 있어도 생각은 우주를 떠돌아
다닐 수 있는 게 인간이라 그런지 이야깃거리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더라구요.
온갖 종교에 관한 이야기까지 포함되어 있고 말이지요. 드믈게 흥미진진하고 재미나게
읽은 책입니다.)
저자가 소개해준 책들은 거의 다 호기심을 동하게 합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눈에 뜨일 때마다 언젠가
읽어야지를 다짐하던 책이었는데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줄 작정입니다.^^
러시아의 락뮤지션 알렉산더 이바노프를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보람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대 발 아래 하늘을 깔겠어요'는 담대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조용하고 우울해보여 그리 내 취향은 아니지만 다른 좋은 곡들이 많아 보입니다.
특히 어려운 곡을 부를 때 이바노프의 가창력, 끝내 주는군요.
전에는 러시아 뮤지션하면 오로지 빅토르 최였는데 이제 알렉산더 이바노프가
그 애정을 나눠가지게 생겼어요.ㅎ
두 사람의 나이도, 여정도 다소 비슷합니다. 빅토르 최가 권력자에게 협력하지 않아
자동차사고로 운명을 달리 했다면 이바노프는 구소련 체제에 저항해 민중 운동을
전개하는 바람에 여러 차례 정치 감호소에 투옥된 바 있다 합니다.
심한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건강은 이상없는지 염려됩니다.
우르나 차하르 톡치의 '요람'이란 곡 차암 좋군요. 그녀의 음성을 저자는
'바삭바삭 마른 잎들을 건드리고 가는 바람처럼 들리는 맑은 목소리'라고 묘사했는데
저는 그렇게 문학적인 표현을 할 능력은 못되고 그냥 '맑고 청아하고 들으면 마음이
순수해지는 듯한 목소리' 정도로 하겠습니다. 노래 너무 좋아요. 계속 반복해 듣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남자였다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가사가 궁금해 네이버에 물어보니 네이버뮤직에 이렇게 나와 있군요.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인식하고 싶은 것만 인식할 수 있죠
나는 내가 보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봄빛에 숨을 쉬며 깨어나는
가녀린 연두빛 새싹들이 보입니다
인식된 현상 속에서
그것이 진실임을 알려하지만
결국은 그도 변화 속에 있는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무엇이 진실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보고 듣고 느끼고 인식하는 그 순간
모두 사라지는 것을
사라진 그것들을 붙잡고
나는 그것이 전부였다 아직도 가슴 졸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허공에 빈 손..
아직 당신을 부르고 있음을..
아직 당신을 부르고 있음을..
가사 내용이 참 철학적이네요. 허무하고 애달픈 느낌..
여행책이니 만큼 책만 읽을 게 아니라 갈 수 있는 곳은 가봐주는 게
책에 대한 예의 아닐까 싶어 어제 오전 11시 경 집에서 가장 가까운 남산을 향해
집을 나섰습니다. 전철 타고 한 시간 쯤 가서 광화문역에서 하차했어요.
402번인가를 타고 남산 아래 위치한 용산 도서관에 들러 '을지로 순환선'과
'도착'을 읽은 후 남산을 오르려 했는데 (저자가 추천한 그 두 권이 동시에
비치되어 있는 곳이 용산도서관이었음) 잠시 후 뜻하지 않은 일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전날 밤 잠을 두 시간 정도밖에 못잤더니 피곤하고 졸려 남산 등반은 커녕 서 있기도
힘들더라구요. 전철 타고 갈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이쁜 화장실로 선정됐다는 광화문역 8번 출구쪽 화장실
사진만 좀 찍고는 '광화문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화장실 보러 왔단다, 왔단다..
'하면서 컴백홈 하고 말았습니다.-_-;;
6월이 가기 전에 남산 재등정에 도전할 것을 책에게 약속합니다.^^
책에 나오는 여행지는 한번씩 다 가 보고 싶지만 특별히 마음을 끄는 곳을
꼽아 보자면..
귀여운 하얀 강쥐 캡틴이 있는 인천 강화 동검도,
칸칸마다 밖을 향하고 있어 우리나라 해우소 중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는
해우소가 있는 충북 제천 정방사,
쭉쭉 시원스레 뻗은 대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태화강 십리 대밭길,
토끼,양,당나귀,사슴 같은 귀요미들에게 먹이주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태안 볏가리 마을 동물농장,
저자가 '내면의 졸고 있는 감정들이 소름 돋듯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는 대관령 등길,
산책로 바위 위로 놓인 계단을 오르면 사람들이 딱 두가지 반응을 보인다는
(와, 바다색이 환상이에요, 오아, 길이 왜 이 모양이야) 경북 영덕 블루로드..
등이 되겠습니다. (나는 어느 쪽일지 심히 궁금해요)
그리고 양페이지에 걸쳐 있는 대나무밭 사진과 307페이지의 하얀눈꽃 만발한
겨울나무들의 모습은 크게 확대해서 벽에 걸어두거나 아예 벽지로 쓰고 싶을
만큼 근사합니다. 나무수 대표님,
그림이나 벽지 사업 한번 고려해보심이 어떠실런지요? ^^
끝으로 저자의 궁금증 하나를 해결해주려 애쓰며 본의 아니게
(본의는 가급적이면 짧게 쓰고 싶어함) 길어져버린 후기를 마칠까 합니다.
부산에 있는 이기대라는 곳은 임진왜란 때 두 기생이 술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투신했던 곳이라 합니다. 그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가 되었다는데 저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합니다.
두 기생의 행적이 진주 논개와 비슷한데 왜 주목을 받지 못했는가..
저 나름대로 몇 가지 답을 궁리해봤으니 그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시기 바랍니다.
1. 이기대의 두 기생이 논개보다 못 생겨서.
2. 이기대 지역을 다스리던 관리의 정치력이 논개네 마을 관리보다 떨어져서.
3. 논개네 마을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더 많아서.
가능하면 많이 좀 늘어놓고 싶었는데 이 이상은 상상력이 작동을 하지 않는군요.
휴~~
맨날 300자 간신히 넘는 날라리 후기 쓰다가 정성 듬뿍 들어간 서평 쓰려니
진이 다 빠지네요. 이제 하나만 더 쓰면 숙제 완료!
마지막까지 분발하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