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6-3 앞에 서서 올려다본 모니터에는 다음 열차가 5분쯤 후에 도착한다고 쓰여 있었다. 읽다 만 97쪽이나 더 읽기로 하는 순간 곁으로 두 명의 취객이 다가온다. 그들은 다소 높은 목소리로 대화를 한다.  

"형은 사장 좋아요?"

둘은 직장 동료구나. 97쪽보다 왠지 이 대화가 더 끌린다. 여전히 시선은 97쪽에 고정시켜 뒀지만 나는 이미 남의 회사 사장 캐릭터를 더 궁금해하고 있었다. 형이 대답한다.

"사장 나이가 마누라랑 같아."

더 어린 사장 밑에서 일한다는 뜻인가. 그래서 더 더러워, 더 치사해, 뭐 그런 건가. 97쪽이나 더 읽기로 하려는 순간 형이라는 사내, 말을 더 이어간다.

"마누라랑 동갑이고 마누라랑 성까지 같아. 너 같으면 좋겠냐?"


고수들 천지다. 일터와 가정에서 겪는 고충을 한꺼번에 새로운 방식으로 토로하던 사내의 얼굴은 끝내 보지 못했다. 하수는 마음대로 짐작하는 일 정도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97쪽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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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도 군말 없이 맡아주고 물 마실 때 나뭇잎 뜯어먹을 때도 그저 조용조용한 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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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검색창에 인내심을 넣어봤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이라고 뜬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몸뚱이 어딘가로만 느껴지는 괴로움은 나도 꽤 잘 참는 편이다. 예컨대 그토록 두려워하는 치과 진료도 막상 시작되면 꽤 잘 참는다. 힘껏 벌린 입 속으로 차가운 것들이 침투해 오랫동안 굉음을 내는 순간에도 퍽 의연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도 '금방 끝난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라는 식으로 달래주는 말을 들은 적은 별로 없다. 오히려 아프면 말해라,라는 주문을 들은 기억은 꽤 있다. 치과에서뿐만이 아니다. 뼈에 이상이 생겨서 거동이 불편했을 때를 빼고는 몸살이나 생리통 등의 이유로 결석 혹은 결근을 한 기억이 없다. 손발에 굳은살이 점점 심해지는데도 운동을 계속 가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진짜 하나도 안 아프냐는 가벼운 걱정을 듣기도 했고. 미련한 성향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자세가 노예근성보다는 건강 내지는 깡을 더 증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작은 자부심을 느껴본 적마저, 우습지만 분명 있었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눈에 띄게 인내하지 못하는 것은 따로 있다. 안타깝게도 억압이나 불의 같은 건 아니다. 내 세계관을 흔드는 것도 아니며 시민으로서의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없는데, 바로 누군가가 '스튜디어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에 직면하면 표정의 변화를 어떻게 참아야 할지 아직도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어떻게 참아야 하냐며 누군가에게 실제로 물어본 적도 있었지만, 스튜디어스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안 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듣고는 곧 실망했었다. 

잘 안다. 스튜디어스라는 말보다 그런 말에 특정한 반응을 하는 내 성정 자체가 훨씬 더 고약하게 생겨먹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제라도 작정하고 스튜디어스에서 좀 자유로워져보려고 한다. 인내심을 발휘하기 힘들다면 급한 대로 꼼수라도 동원할까 한다. 꽤 그럴듯한 방책도 하나 떠올려봤다. 스튜어디스라는 말을 써야 할 것 같은 대화에서는 나부터 나서서 '승무원'이란 단어만 사용하는 거다. 괜찮은 대비책이라며 사실 스스로 조금 대견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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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돌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저들도 아는데 그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양 애꿎은 팔자주름만 더 깊이 패게 웃어보인 횟수에서 본성을 감추는 데 실패해 부지불식간에 표정관리 못한 횟수를 빼고 영어단어를 사정없이 버벅거린 횟수도 뺀 다음, 여기다가 저녁으로 때운 국수 한 그릇 값을 곱하면 얼추 오늘 내 일당이겠다.

약수동 국숫집에선 음악캠프를 틀어놓고 있었던 터라 면발을 끊으면서 몇 년 만에 그웬 스테파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느새 주먹밥 접시를 비워낼 즈음에는 존 레논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우먼은 월드의 니거다. 우먼 대신 워커라 했다면 울컥했을 것이다.

내 귀에 배철수 목소리는 밝은 저녁에 더 좋게 들리는데, 여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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