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6-3 앞에 서서 올려다본 모니터에는 다음 열차가 5분쯤 후에 도착한다고 쓰여 있었다. 읽다 만 97쪽이나 더 읽기로 하는 순간 곁으로 두 명의 취객이 다가온다. 그들은 다소 높은 목소리로 대화를 한다.
"형은 사장 좋아요?"
둘은 직장 동료구나. 97쪽보다 왠지 이 대화가 더 끌린다. 여전히 시선은 97쪽에 고정시켜 뒀지만 나는 이미 남의 회사 사장 캐릭터를 더 궁금해하고 있었다. 형이 대답한다.
"사장 나이가 마누라랑 같아."
더 어린 사장 밑에서 일한다는 뜻인가. 그래서 더 더러워, 더 치사해, 뭐 그런 건가. 97쪽이나 더 읽기로 하려는 순간 형이라는 사내, 말을 더 이어간다.
"마누라랑 동갑이고 마누라랑 성까지 같아. 너 같으면 좋겠냐?"
고수들 천지다. 일터와 가정에서 겪는 고충을 한꺼번에 새로운 방식으로 토로하던 사내의 얼굴은 끝내 보지 못했다. 하수는 마음대로 짐작하는 일 정도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97쪽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