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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은 덮었는데 스산해진 내 마음은 덮을 길이 없어 계속 책을 매만진다. 404쪽의 긴 여정 속에 덕혜옹주가 남긴 그 쓸쓸한 삶이 너무 가슴이 아려서 도저히 그녀를 그렇게 보낼 수가 없다.
가장 높게 태어나 가장 낮게 살아야만 했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덕혜옹주>는 촘촘하고 세밀한 구성과 심금을 울리는 아련한 글로 슬픈 그녀의 삶을 잘 표현해냈다.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난 덕혜옹주는 어릴적부터 영민함으로 고종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과 사랑은 고종이 죽고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며 끝이난다. 일본으로 가고부터 조선에 대한 그리움, 일본인들의 은근한 멸시에 시달리며 고통의 연속이였던 덕혜옹주는 대마도 백작과 강제결혼을 하면서 고통은 배가 된다.
황녀로서의 그 굴레를 벗어던지고 일본인의 아내의 자리를 선택하며 그래도, 그나마 편안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마지막 황녀라는 신분을 버리지 않고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완벽한 일본인도, 완벽한 조선인도 될 수 없었던 역사의 비극을 보여주는 자신의 딸 정혜를 낳고부터는 그 안간힘을 위해 미치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었다. 점점 커가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일본인들로부터 차별을 당하는 정혜가 조선의 피를 부정하자 그 절망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덮쳤다. 그리고 결국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일본으로부터 버림받고 힘없던 조선으로부터 잊혀진 그녀가 37만년에 꿈에 그리던 조선으로 귀국한다.
그녀의 인생을 바쳐가며 지켰던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잊혀졌지만 그녀는 끝끝내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그 순간에도 손수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간 “대한민국 우리나라”라는 그 글은 그녀가 얼마나 가슴으로 조국을 사랑했는지 뼈에 사무치게 조국을 그리워했는지 가슴 깊이 전해져 심금을 울린다.
역사의 비극 속에서 자신의 인생까지 비극으로 내몰려졌던 덕혜옹주를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그녀가 무엇을 한게 있냐고 반문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그녀가 그 영욕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 조선으로 돌아왔지 않냐고 말하고 싶다. 끝까지 살아 역사의 산 증인이 되었지 않냐고, 그래서 그 일본의 만행을 소리없이 그녀의 인생으로써 몸소 보여주지 않았냐고...
여자라는 이유로, 조선의 황녀라는 이유로 자유도 없이 속박의 굴레에서 평생을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살아야했지만 ‘황녀’라는 그 고귀한 신분을 가슴에서 지운적 없는 덕혜옹주.
‘황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보란듯이 그녀는 살아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드시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사랑한 조국에 37년만에 돌아온 그녀는 평생이 불행했을지라도 마지막은 황녀의 자존심을 지키며 고국에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녀의 그 질기디 질긴 의지와 그리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조국을 사랑한 그녀의 조국애는 애국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대인에게 따끔한 일침과 함께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덕혜옹주는 참으로 비참하고 약한 삶을 살았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삶과 함께 그녀의 정신과 마음을 알아가며 덕혜옹주의 삶이 비참했을지언정 그녀의 정신과 마음은 누구보다 바르고 깨끗하고 용기있게 살아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토록 바르고 깨끗했기에, 너무 곧아 굽힐 수 는 없었던 그녀의 삶이 내 가슴 속에 콕하고 박혀서 그녀를 보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를 천천히 보내기로 했다. 평생을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쳤던 그녀를 내 가슴 속에서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조금씩만 보내기로 했다.
‘덕혜는 역사의 책갈피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말라가는 작은 꽃잎이었다. ’ (p,300)
살아서는 말라가는 작은 꽃잎이었으나 사람들에게 조금씩 기억되고 있는 그녀가 이제는 큰 꽃잎이 되어 자유로이 숨쉴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