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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평점 :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하시며 나를 슬며시 깨우는 아빠의 목소리!
아침에 일어난 순간부터 밤에 잠드는 순간까지! 바가지를 벅벅!! 긁어되는 엄마!
마주치기만 하면 싸우는 여동생!
졸졸 따라다니며 궁금한거 물어보고, 바쁜 엄마를 대신해 숙제며 일기며 뭐든 챙겨줘야하는 남동생!
'이건 가족이 아니라 웬수다!' 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려고 하는 순간이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찾아온다. 그때마다 '나 혼자 있고싶다! 독립하고 싶다!' 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러다가도 아빠, 엄마, 여동생, 남동생이 조금만 집에 귀가하는 시간이 늦어지거나 조금만 표정이 안좋아보이면 슬며시 걱정이 되며 마음이 불편해진다. '혹시 무슨 일 생겼나'하고...
이렇게 얼굴만 보면 매일 티격티격 되며 나만의 '자유'를 갈망하다가도 눈 앞에 보이지 않거나 가족들의 안좋은 표정들을 보게되면 걱정되고 신경쓰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역설적인 마음은 무엇일까...?
오쿠다 히데오의 <오 해피데이>는 사람들의 이 역설적인 마음들을 특유의 재치와 웃음으로 유쾌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총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집단인 '가족' 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첫번째 <Sunny Day>는 평범한 주부인 주인공은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남편과 사춘기 시절로 혼자있고 싶어하는 두 자식들을 보면서 삶의 지루함을 느낀다. 우연히 알게된 경매 사이트인 '옥션'을 통해 경매에 재미를 본 주인공은 더욱더 옥션 경매에 빠지게 된다.
두번째 <우리 집에 놀러 오렴>은 아내와 별거를 하게된 남편은 텅텅 비어버린 집에 혼자남아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해 가다 집을 꾸미며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즐겨가며 솔로 생활을 즐겨간다.
<그레이프프루트 괴물>은 남편과의 열정이 식은 평범한 주부는 부업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영업사원에게 뭔가 다른 감정을 느끼며 가슴 설레한다.
<여기가 청산>은 갑작스런 실직으로 아내가 취직을 하고 자신은 집에서 살림을 하게된 남편은 점점 살림에 새로운 재미를 느끼며 주부가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남편과 커튼>은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하는 남편이 무작정 커텐 가게를 열겠다고 한다. 계획없이 열정하나로 막무가내 준비해가는 남편을 보며 부인은 걱정이 된다. 그러나 항상 남편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겠다고 하는 시기에 자신의 그림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며 더 잘 그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현미밥>은 베스트셀러 책 한권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게된 소설가의 아내는 웰빙주의를 외치며 로하스 운동에 앞장선다. 여기에 가까이 사는 이웃의 부부는 소설가에게도 적극적으로 로하스 운동을 권한다. 이웃 부부에게 못마땅함을 느끼던 소설가는 그 부부를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된다.
<오 해피데이>에 담겨있는 소설 한편 한편들을 읽으며 얼마나 공감하고 또 공감하며 읽었는지 모르겠다. 옥션 경매에 빠졌지만 마지막에 자식들의 작은 생일선물에 따뜻함을 느끼는 주인공을 볼때는 내 마음도 따뜻해졌고, 집을 꾸미며 혼자 취미생활을 즐기며 자유를 만끽하는 남편을 볼때면 대리만족을 느끼며 나도 하루빨리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내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남편과 커튼>에서 직장에 우직하게 다니지 못하는 남편을 볼때면 아줌마처럼 '꼭 저런 남편 한명씩 있다니까' 라며 걱정을 했고 <아내와 현미밥>에서 로하스 운동을 비꼬는 소설을 쓰고는 이 소설을 아내가 보게된 후 쌀쌀맞게 변한자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서는 그 순수한 남편의 마음에 귀여움을 느꼈다.
이렇게 가족 속에서 좌우충돌하는 주인공들이 내 모습같기도 하고 남의 집의 문을 빼꼼히 열고 구경하듯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매일 봐서 지겹고, 따분하고,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지루한 가족이 있기에 내 자유가 더 소중해지고 새로움이 더 소중해질 수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어쨌든 지루하지만 가장 편하기도 한 것이 바로 가족의 울타리 안이라는 것도 알게됐다.
아침이면 어제와 똑같은 가족과의 관계가 유지될 것이다. 아빠는 출근하시며 여전히 나를 슬며시 깨우고 엄마는 계속해서 잔소리하고 동생들은 나를 귀찮게하고!! 그러나 그런 가족이 이제 지겹지 않다. 지겨운게 아니라 익숙하고 편해서 마음이 포근해진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결국 가족을 생각하듯 나도 돌고 돌아도 결국 내가 돌아오는 원점은 '가족'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다.
언제까지 이 마음이 유지될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알고 사랑해주며 함께 부데끼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기에 행복하다. 오! 해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