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
|
|
| |
노파들 서넛만이 드문드문 호적이 숨 쉬는 테제베의 창가에서 나는 생각했다. 완벽한 여행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지난 10여 년간 가방을 꾸리며, 나는 다른 삶을 꿈꾸었었다. 기나긴 탐색 끝에 나는 깨달았다. 여행은 삶의 복사판이다. 하룻밤에 50유로가 넘는 호텔방에서 편히 쉬지 못하는 자신을 응시하며, 나는 알았다. 별 3개와 싸구려 숙소를 쉬지 않고 왕복하는 여행방식을 내가 바꾸지 못한다면, 나는 내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고집하는 나를 고치지 못하듯이. 별 하나에 깨끗한 호텔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접지 못하는, 나는 현실 감각이 모자라는 낭만주의자. 그래서 그토록 방황했었다. (P.75) |
|
| |
|
 |
제목만 봐서는 언뜩 여행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여행에세이라고 단정짓고 싶지 않다. 그림과, 시와 그녀의 솔직담백한 글과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가미된 여행지의 사색들이 함께 담겨져 있는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를 어떤 장르라고 정확히 콕 집어서 말하기는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 에스틱하고 고풍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바로 최영미 시인이다. 약간은 깐깐한 듯 하면서도 슬며시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에서 진솔한 유머감각이 돋보일거 같다고 생각했었고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독신으로써의 삶도 밝혔으며 자신이 결코 수월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예민하고 깐간한 사람이라는 것도 소신있게 알려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때의 그 황홀함도 맛깔스럽게 표현해주고 용기를 내어 여행길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간다. 일반사람들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미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지막하게 재미있게 들려주고 오바마 대통령의 열렬한 팬인 자신이 왜 팬이되었나 하며 10대 소녀가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듯 수줍으면서도 들뜨게 고백하고는 시카고에 가서 오바마의 흔적 하나하나를 밟아 느껴가는 그 설레이는 그녀의 순수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소설이 아님에도 ‘감동’을 받았던 것은 삶의 단순한 진리를 잊어버리려고 할때마다 나지막하게 기억시켜주는 그 특별함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뭔가 달라지려고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 또한 삶의 복사판이라고 말하는 가슴찌릿한 문장과 예술은 우리가 일상에서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을 이해하게 하는 그 ‘힘’에 대하여 예술하는 자로써의 사색은 내가 책을 읽어왔고 또 앞으로 읽어야 하는 그 이유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내 나름대로 책을 꾸준히 읽고있다고 자부하면서 항상 의문을 갖는 부분이 있다. ‘과연 좋은 책은 어떤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이 항상 변하고 진화하겠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또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는 책. 이 책을 통해 저책으로 저책을 통해 이책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독자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책.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리고 호기심을 갖게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나에게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과 반고흐의 그림이 이토록 좋았는지 그리고 반고흐는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점에서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는 좋은 책이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 길을 잃는다는 것은 ‘부재와 ‘상실’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더 풍요롭고 아릅답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그 의미를 가슴 속에 심어주었다.
길을 잃는 속에 진정한 ‘나’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