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에게는 여기서 형성된 생명의단위가 죽음만을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형성은 쇼펜하우어의 삶의 충동이라는 관념, 즉 적절한 삶의 의미는 죽음이라는 테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보인다. 의심할 여지 없이 생리적이고 또한 식물적인 삶의 열대 리듬에도(유럽인들에게 존재하듯이, 삶을 향한 미친 듯한 속도와 격렬한 열정과 조화를 이룬 이 모든 삶의 짧음과 실패 안에 혐오스러운 무언가가 있다. - P113
가장 전형적인 경우, 혐오스러운 대상은 부패물로분해되는 형태든 해체의 형태든, 분산의 형태든, 열등하고 더 무성하고 활력 넘치는 힘에 의해 장악되는 존재의 형태든, 자신의 붕괴를 향한 가시적인 단계들에 접근한다. (예를 들어, 독재와 그로 인해 난국에 빠짐을 통한 사회적삶에서, 부패의 기간 이후 늪에서 꽃이 피는 충만함 속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잠재적으로 혐오스러운 생명의 무성함의 유형이다. - P112
생명의 축적을 통해죽음의 일부가 되는 것은 단순히 죽음 또는 존재의 멈춤에 비해 독특하게왜곡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혐오스러운 대상들의, 죽음의 틀안에서 상기되는 일종의 생명력에 흔히 있는 경우지만, 우리가 매력을 얻는것과 같다. 약화되고 그리 친밀하지 않은 형태에서 혐오스러운 것은 자극적인 것과 어떤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처음에 말하자면 그 대상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거의 가치 중립적인 초대인 무언가가 실존적 유용성보다는 혐오스러운 대상의 본질에, 그 대상의 특질들(상존재)에 있기 때문이다. - P112
하등 생명체는 어떤 의미에서 더 적나라하다. 하등 생명체들은 그저 생명일 뿐이며, 오직 이런 의미에서만 혐오의 순간과 어떤관련이 있을 수 있다. 육체성, 물리적 충만, 억셈, 실제성은 전혀 이 영역에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낮은 존재 영역에 뿌리를 둔 것도 아니고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낮은 영역들 자체도 아니다. - P110
하지만 혐오의 요소는 기만적이라고 알려진 사람을 향해 표명되는 반감에서 더 명확하게 표현된다. 허위(mendacity)는 단순히 거짓말이 있음도 아니고, 자기기만이나 병적으로 거짓말하기의 성향은 더더구나 아니다. 오히려 허위는 진실과 비진실에 대한 내면의 무관심이며, 그러한 무관심에 기대어 자신도 속이고, 명확성을 얻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실질적인 동기가 있을 때 내면의 동요의 흔적도 없이 거짓을 주장할 수 있다. 거짓말에 혐오스러움의 악센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보다 벌레 같은, 부정직하게 숨겨진 공격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