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술 -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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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생각의 기술’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이래 2300년 넘게 계승돼 온, ‘논리’를 의미한다.

지은이 코디정은 언어활동가이자 변리사이며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에서 지식재산법을 가르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했으며 아이들을 위한 논리력 향상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괘씸한 철학 번역」(2023), 「논증과 설득」(2017)을 포함하여 열 권의 저술하기도 했다. 현재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저자의 폭넓고 다양한 경력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저자는 대중을 위한 지식 커뮤니케이터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공통 무기인 ‘머리’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생각의 도구인 ‘논리력’을 키워야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 『생각의 기술』을 통해 논리의 기초부터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확장하는지, 또 어떤 오류에 빠지고 잘못된 지식을 고집하는지, 실제 생활 속에서 논리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려준다. 또 네 편의 부록에서는 논리학에 대한 Q&A,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법과 논리적인 글쓰기, 논리학이 주도하는 철학의 계보를 담고 있다.

먼저 논리란 무엇인가. 저자는 논리는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라고 이 책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여 설명한다. 논리는 세상의 원리도 아니고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당은 자연과학 학문과도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논리학이란 무엇인가. 논리가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이기에 논리학은 이것에 대한 ‘지식’이다.
인간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단어가 탄생하고 그 단어가 다른 단어들과 연결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이 어떻게 다른 문장과 연결되는지 탐구하는 것이 바로 논리학이다. 논리는 세상의 원리나 사물의 이치가 아니다. 논리학이란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발견한 지식이다.

논리는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이기에, 우리 대부분은 늘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왜 따로 논리를 배워야 할까? 바로 우리 인간은 세상을 인간의 논리로 이해하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로 세상과 인간과 사물과 교감하고 살아간다. 삶 속에 던져진 우리는 온갖 존재들과 온갖 이유로 갈등하고 불화하고 충돌한다. 삶을 괴롭히는 대부분의 문제는 매 순간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릴지의 연속이다. 이때 논리력이 좋다면 문제 해결을 훨씬 슬기롭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논리의 전체 구조, 개념(사전의 오류, 개념의 역할, 의미의 크기, 의미의 선명함, 개념은 소속을 갖는다), 판단(일반 논리학과 수리 논리학의 차이, 논리적인 사람과 표상적인 사람, 종합명제와 분석명제, 판단의 종류), 추론(과거의 판단들, 생각의 도약, 오성과 이성 등), 토대 구조 모형, 연역과 귀납, 경험, 유추, 확률, 변증, 설득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복원한 칸트의 철학 안에 자리한 논리 세계의 핵심을 설명한다. 포함된 내용의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은데 굉장히 이해가 잘 된다. 왜냐면 글이 논리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내 수준보다 훨씬 높은 책들과 번역서 위주로 읽어온 나의 읽기를 되돌아보았다. 이 책은 앞으로 계속해서 만나게 될 새로운 주장과 개념들을 조금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 출판사 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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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첸을 멀리하라 - 불가능한 사랑
수잔네 아벨 지음, 김동언 옮김 / 뒤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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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감독으로 활동한 수잔네 아벨의 첫 장편소설로 2021년 출간된 이래 독일 아마존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작품이라 한다. 독일 아마존에서는 가족소설로 분류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출간될 당시에도 여전히 독일 아마존 가족소설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 수잔네 아벨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모든 가정에는 비밀이 있고 이 소설 『그레첸을 멀리하라-불가능한 사랑』은 이러한 가족의 비밀이 밝혀질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썼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정통으로 겪은 그레타라는 여성과 그녀의 아들 톰이다. 소설은 독일의 잘나가는 뉴스 앵커인 톰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톰은 그의 84세 어머니 그레타가 치매 진단을 받게 되자 혼자 살고 있던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톰은 외아들이고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톰이 알지 못했던 그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톰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때때로 몇 개월간 깊은 슬픔과 우울에 빠져들어 자신을 방치했던 과거에 대해 정리되지 못한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 그레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어린아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어린 톰은 어머니의 우울과 슬픔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톰은 치매에 걸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어머니가 던지는 힌트들을 방송국 동료인 제인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추적해간다. 어머니 그레타의 과거를 점점 밝혀가면서 톰은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불가능했던 사랑을 말이다. 이 책의 부제인 ‘불가능한 사랑’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이 할퀴고 간 야만적인 세상에서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그레타의 사랑을 뜻한다.

​소설은 현재(톰의 시점_어머니 그레타의 과거를 밝혀내려는 사람)과 과거(그레타의 시점_제2차 세계대전을 겪어냈고 거기서 불가능한 사랑을 했던 사람)를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저자는 이 작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 하는데 절묘한 호흡으로 한 장의 이야기를 끝내고 새로운 장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한 이야기를 끝낼 때마다 나의 궁금증을 폭발시키고, 애간장을 녹이고, 마음을 간질이고, 가슴이 미어지고, 그 참혹함에 내장이 뒤틀리고, 내가 차마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의 상흔에서도 어떻게든 사람들의 강인함에 일종의 숭고함을 느낀다.

나는 그간 홀로코스트나 아우슈비츠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수용소 문학들을 비롯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에세이들을 조금씩 읽어왔다. 대표적으로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에디트 에바 에거의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유대이었고 절멸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의 관점으로 쓰였다.

반면 이번 작품 『그레첸을 멀리하라』의 주인공은 독일 여성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레타 쇤나이히는 1931년 7월 3일 생으로 동프로이센 아일라우에서 나고 자랐다. 여덟 살의 여아 아이로 되돌아간 그레타는 그 시대 보통 독일 사람이 그러했듯 그녀의 지도자 히틀러를 숭배했다. 어린 그레타는 어서 열 살이 소녀단원에 입단하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다. 그러다가 그들의 총통이 전쟁을 선언하고 전쟁이 터지자 그레타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레타와 그녀의 가족들-외할아버니,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언니-은 가혹한 역사에 내던져진다. 전쟁을 겪지 않은 나는 일체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을 현대인이자 특수한 맥락에서 나고 나란 나의 시점으로 감히 재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동료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을 듣고 또 듣고 울고 웃고 참담해할 뿐이다.

저자는 이 작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 하는데 절묘한 호흡으로 한 장의 이야기를 끝내고 새로운 장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한 이야기를 끝낼 때마다 나의 궁금증을 폭발시키고 애간장을 녹이고 마음을 미어지게 만든다. 젊은 그레타와 밥의 사랑의 시작은 내 마음을 간질인다. 그들의 불가능했던 사랑은 내 가슴이 미어지게 만든다. 전쟁의 참혹함과 독일 여성들이 겪었던 일들에 나의 내장이 뒤틀린다. 그럼에도 생존해 내고 이윽고 살아내는 그들의 강인함에 숭고함을 느낀다.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전쟁의 상흔을 읽으면서 온갖 상념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리고 이 작품이 보여주는 위대한 사랑에 먹먹함을 느낀다. 어떻게든 살아냈던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조용히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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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 -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
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안규남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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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가 편지로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책의 부제는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이다. 21세기 사회학 거인 바우만과 소설가 마체오는 ‘악명 높은 논쟁거리, 즉 문학(그리고 예술 전반)과 사회학(과학적 지위를 주장하는 인문학의 한 분야)의 관계’(p9)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다.

‘유동성’의 사상가 바우만은 문학과 사회학은 적대 관계는커녕 경쟁 관계에도 있지 않으며 이 둘은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우만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소설가와 사회학자는 우리 세계를 서로 다른 시각에서 탐구하고 상이한 유형의 ‘데이터’를 찾고 생산해 내지만, 그 생산물에는 같은 원천에서 나왔음을 보여 주는 명백한 흔적이 담겨 있다’(p17-18)고 말한다. 바우만은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협력할 경우에만 인간 조건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저서로 리카르도 마체오와 주고받은 총 24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우리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사상가 바우만은 이 책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우먼이 서문에서 설명한 문학과 사회학의 관계는 이 책의 첫 번째 대화 <1. 두 자매>로 이어진다. 마체오는 '오늘날 우리는 현란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지만 사실은 공허하고 생명 없는 말들을 배가 터질 정도로 강제로 폭식당하고 있다'(22페이지)라고 말한다.

이미 분신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으로 24시간 동안 온갖 말들에 침식당하고 있지만 어째선지 나는 나의 삶을 온당하기는커녕 적당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온갖 매체에서 온갖 분야의 유용한 말들을 해대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공허하다. 나는 이러한 말들에서는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찾을 수 없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처드 로티, 마사 누스바움, 휴 드레이퍼스 등 많은 이들은 우리의 대화를 내가 읽어보지 못한 문학을 지팡이 삼아 시작했다. 나는 뭉툭한 나의 사고로는 결코 파악하기 힘든 이 세상을 그들의 언어를 거쳐 조금이라도 빨리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왜 읽지 않는 문학 작품 때문에 책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나의 읽기에 먼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음을 느꼈다. 한참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소설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온갖 사상가들이 논했던 담론들이 소설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상가들이 말했던 사회적 조건과 시공간의 우연성이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주인공들을 통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상가들의 언어는 인식적 이해를 넘어선 체험이 되어갔다.

“ 문학과 사회학은 정말로 '자매'입니다. 더 나아가 문학과 사회학은 그냥 자매가 아니라 샴쌍둥이 자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양분의 공급 기관과 소화 기관을 공유하고 있어 외과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쌍둥이 말입니다.
자매로서 문학과 사회학은 서로 경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샴쌍둥이 자매로서 문학과 사회학은 운명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같은 일을 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__지그문트 바우만

두 사람의 대화에는 바우만의 주요 저서들과 사상을 비롯하여 세상의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찢어내고자 시도한 사상가들과 이 베일을 그려냈던 문학작품들이 계속하여 등장한다. 이 책은 300그램이 채 안 되는 B6 크기의 작은 크기지만 책의 밀도는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높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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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소설, 잇다 6
박화성.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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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약 백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의 또 다른 근원과 현재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책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이 기획의 여섯 번째 책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 활동해온 여성 작가 박화성은 1932년 《동아일보》에 『백화』를 연재하면서 한국 문학 사상 최초로 장편소설을 쓴 여성 작가이다. 박서련 작가는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에서는 박화성 작가의 소설 세 편과 박서련 작가의 소설 1편 에세이 1편을 한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박서련 작가의 소설로 박화성 작가의 「하수도 공사」를 변주한 작품이다.

박화성 작가의 소설 「하수도 공사」, 「홍수전후」, 「호박」에는 궁핍한 노동자와 농민, 억압적인 가부장제 하의 여성의 삶을 다룬다. 일제 식민지 하의 조선인들의 삶은 지배세력 일본의 착취로 인해 궁핍과 굴욕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여성들의 삶에는 가부장이라는 지배세력이 하나 더 추가됐다.

박서련 작가의 소설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총여학생회 재건’을 위한 비밀 결사체 비슷한 독서 동아리 ‘유독’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여대생 림과 진이다. 이 둘은 동아리의 선후배 사이인 동시에 연인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독서 동아리 유독에서는 박화성 작가의 소설 「하수도 공사」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박서련 작가는 박화성 작가가 제기한 의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 더불어 여성에 대한 혐오와 편견, 가부장적 가치, 퀴어 문제 등을 다룬다.

우리의 모든 것은 시대의 산물이다. 내가 껴안고 있는 자아도, 타자를 껴안고자 하는 나의 욕망과 사랑도 이 모든 것이 다 말이다. 이 소설들 속에서 등장하는 ‘정세’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늘 변화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정세의 흐름을 파악하고 내 욕망에 비추어 합당한지 아닌지 알고자 한다. 무력한 개인은 당대의 지배세력(계급, 성별, 젠더 등)이 흐름을 주도하는 정세에 따르거나 거스르거나 이 둘 사이 어디에선가 복잡하게 갈등한다. 정세에 합당한지 아닌지 판단하고 갈등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삶에 한계를 지우는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

* 출판자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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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번트가든의 여자들 - 18세기 은밀한 베스트셀러에 박제된 뒷골목 여자들의 삶
핼리 루벤홀드 지음, 정지영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북트리거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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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번트가든의 여자들』 18-19세기 영국 역사를 전문분야로 하는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핼리 루벤홀드의 데뷔작이다. 이 책은 1757년 출간된 책자 《해리스 리스트》라는 성 구매자용 카탈로그(북트리거 출판사는 책 소개에 ‘매춘부 리스트’라고 소개한다)를 통해 18세기 런던의 성 풍속을 다룬다.  


이 책은 《해리스 리스트》를 만드는데 관여한 세 명의 인물인 새무얼 데릭, 존 해리스(일명 잭 해리스), 샬럿 헤이즈의 삶을 추적하며 전개된다. 이들은 어떠한 경로로 매춘부 리스트를 만들게 되었을까. 무엇이 이 책자가 만들어지도록 했나. 매춘부 리스트를 누가 구매했는가. 매춘부 리스트에 들어있는 매춘부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나. 


이 책은 영국 런던 코번트가든의 햇살이 밝게 비추는 대로변 건너에 있었던 매음굴에서 살았던 약자들과 그들을 착취했던 사람들의 삶을 살펴본다. 당대 런던 사회의 어떤 면들이 그러한 매춘 산업을 번성케했는지 살피는 과정 속에 계급과 지위가 낮았던 런던 사람들의 고달팠던 삶을 엿볼 수 있다. 


《해리스 리스트》
이 리스트는 1757년 아일랜드 출신의 빈털터리 시인 새뮤얼 데릭, 셰익스피어즈 술집 수석 에이터 존 해리슨, 런던의 유명 매춘부 샬럿 헤이즈가 함께 만든 책자다. 이 책자는 런던 매춘부들의 프로필을 모은 것이다. 매춘부들의 이름, 외모, 출신, 매춘 행위 시 특징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책자는 가격이 2실링 6펜스였는데 이 책값은 장인 수준의 재단사가 받던 일급보다 많았고, 가구를 갖춘 방의 일주일 치 임대료나 돼지 한 마리 값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 책자는 어느 정도 돈도 있고 교육도 받아서 최소한의 안목이라도 갖춘 신사들을 주요 독자로 제작되었다. 책은 남자들의 조끼 주머니에 쏙 들어가도록 콤팩트한 사이즈로 제작되었다(늘 가지고 다니면서 향락과 쾌락을 즐기라는 배려인가). 또 매춘부 리스트들을 항상 최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갱신해서 출간했다. 종간까지 총 25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18세기 영국 런던 코번트가든에서 살았던 가난한 사람들

18세기 런던에서 가난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했을까. 18세기 영국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쉽게 바뀌었다고 한다. 정부 보조금이나 근로자 연금 같은 것이 없고, 실업수당 장애수당도 없었다. 일자리를 잃으면 밥을 먹지 못했고, 먹고살기 위해 죽을 때 가지 일해야 했다. 당시 사회 개혁가들도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의료 서비스라는 개념을 떠올리지 못했다. 당시 런던 사람들은 투기꾼과  채무자가 넘쳐났다.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소비에 열성적인 사람들은 부채에 허덕였다. 위태로운 중간계급 사람들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그것이 역부족일 때 딸들을 매춘가에 돈을 받고 팔았다. 삶의 안정은 금방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고 범죄와 가난은 무척 가까운 곳에 있었다. 특히 18세기 빈민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발언권도 투표권도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멸당했고 인간 이하의 취급이나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도 그들을 보호해 줄 사회 시스템도 동정과 연민을 보내는 사회적 공감대도 없었다. 그저 경멸과 굴욕만이 있는 삶이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보수가 대부분 낮았기에 소매치기, 강도, 빈집털이, 장물 매매, 매춘 알선, 사기도박이 오히려 나은 돈벌이 수단이었다. 일자리를 더 구하기 힘든 여성들에게 매춘은 경제적으로 궁핍을 면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극한의 궁핍과 잔학 행위, 학대와 불평등이 일상인 세계가 당시 영국 런던 코번트가든이었다. 거기에서 여성의 육체를 상품처럼 거래되어고 강간을 유혹과 동의어로 보는 인권유린이 그들의 상식이었다. 가난한 여자아이를 매춘가에 팔아버리는 부모는 널렸고, 하녀들들 중엔 일시적 실업 상태에 빠져 있을 때는 성매매를 해서 먹고살았다. 매춘은 하고 싶으나 성병에 걸리기 싫은 귀족들은 어린 소녀들과 아이들을 원했고, 포주들은 이러한 수요에 맞는 공급을 제공하기 위해 가난한 어린 소녀들을 속여서 강간을 통해 길들인 뒤 귀족들에게 바쳤다.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루에도 몇 번씩 제공해야 했던 매춘부들은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어 알코올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육체와 정신은 포주와 마담과 성구매자들 남성에 의한 각종 학대와 폭력, 성병과 거듭되는 낙태로 쉽게 망가졌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스며 살았다. 처녀성을 잃은 여자들은 창녀 취급받는 시절이었고 강간은 범죄 취급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강간 당한 여성들은 매춘 외엔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해리스 리스트>에 등장하는 절대다수의 여자들에게 매춘은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단 잔혹한 운명 같은 것이었다. 이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매춘부들은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돌봤다.



이 책에서 당시 가난한 여성들의 삶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이 책 전반에서 서술되어 있는 가난한 여성들과 매춘부의 삶은 참담하다. 그들이 겪은 학대를 이 독후감엔 일일이 타이핑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이 타이핑된 텍스트조차 은근한 구경거리일 테니. 당시의 삶을 현대인인 우리가 감히 재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그들의 고통을 쉽게 상상하기도 힘들고 대신 그들이 그러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버티고 살았다는 것이다. 18세기 당시 런던 코번트가든과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 사이의 간극을 생각해 본다. 사회 보장 체계, 사법 시스템, 아동과 여성에 대한 인권 개념, 성 풍속과 성인지 감수성 등 많은 것들이 다르다. 우리가 속한 사회의 체계와 시스템, 규범과 가치와 상식 등 모든 것은 시대의 산물이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을 감히 떠올리지 못했던 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들려준다. 특권계급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열악한 위치에서 처했던 사람들의 삶을 말이다. 저자가 말했든 우리는 시대의 산물이다. 18세기 영국 런던 코번트가든의 매춘 사업에 대한 글을 읽으며 우리의 삶은 얼마나 우연적인지 생각해 본다. 내 매일매일의 일상은 그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을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음을 떠올린다.


* 출판사 리뷰 이벤트에 응모하여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사실은, 우리가 우리 시대의 산물이듯이 이 사람들은 자기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지닌 견해와 편견은 지금보다 훨씬 덜 관용적인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도덕주의자들은 그들이 원래 나쁜 놈이라 나쁜 짓을 저지른다고 생각하는 실수는 하지 말자. 이는 좀도둑일지라도 죄다 올가미에 매달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는 단순 무식한 논리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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