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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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자가 쓴 SF 장편소설이라 기대가 된다. 인간의 기억은 애틋하고 아름답고 슬프지만 동시에 왜곡과 모순 투성이며 때로는 파괴적이다. 과연 소설가로서의 김상균 교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놀라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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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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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펭귄 하이웨이』 은 제31회 일본 SF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표지부터 너무나 귀여운 이 소설은 내용 역시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교외에 있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아오야마이다. 아오야마는 스스로를 머리가 매우 좋은 데다가 공부도 열심히 해서 크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도 많이 읽고 메모도 열심히 한다.

그러던 어느 쾌청한 5월의 어느 날, 아오야마의 동네에 있는 '오리너구리' 공원에서 느닷없이 펭귄 무리가 목격된다. 왜 나타난 것일까? 똑똑한 아오야마는 아버지가 사준 빨갛고 단단한 표지를 가진 노트에 펭귄을 관찰하여 꼼꼼히 메모를 한다. 우선 펭귄들이 아델리펭귄이라는 것은 금방 파악했다. 이 펭귄들은 남극과 그 주변 섬에 서식한다고 책에 쓰여있는데 교외의 주택에 왜 나타난 것인가? 공부할 것도 많고 관찰해야 할 것도 많은 아오야마의 최우선 연구과제는 이제 펭귄 연구가 된다. 아오야마는 펭귄 출현에 대한 탐구의 제목을 '펭귄 하이웨이'로 한다. 펭귄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때 으레 지나가는 루트를 '펭귄 하이웨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어떤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아오야마는 펭귄이 나타난 이유를 나름대로 추리하여 가설도 세운다. 한편 아오야마는 동네 치과의 누나를 좋아한다. 비범하기로 치면 아오야마는 치과 누나에 범접할 수 없다. 치과 누나에겐 엄청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치과 누나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풀어 놓으면서 이 책이 SF 판타지 장르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내게 이 책의 재미 요소는 아오야마의 문제해결 능력이었다. 아오야마는 그 어떤 사건 앞에서도 진지한 꼬마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는다. 관찰하고 분석하고 연구한다. 이 똑똑한 아오야마는 때때로 본인의 명석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데 이것조차 귀엽다. 아오야마의 반응들은 내겐 웃음 코드였다. 소설은 아오야마가 펭귄의 출현과 치과 누나와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리고 아오야마가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는 늘 그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었으며 지혜를 건네주었던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등 어른들이 있었다.

검색해 보니 일본에서는 2018년 8월 17일에 애니메이션 영화로 개봉을 했고, 국내 첫 상영은 그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치과 누나 목소리는 아오이 유우다. 티빙에서 이용권을 구입하면 볼 수 있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보아야겠다.




* 출판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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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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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러시아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손 꼽히는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은 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된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삶과 운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되는 걸작이라 평가받는다. 이 대작은 독일군이 스딸린그라드를 포위한 1942년 9월 말부터 1943년 4월까지 약 육 개월 남짓한 시간을 담고 있다. 국내의 많은 작가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의 한국어 번역본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데, 올해 6월 창비 출판사의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로 3권 세트로 출간되었다. 『삶과 운명』은 두 전체주의 세력인 독일의 파시즘과 스탈린 체제의 공산주의 정권, 그리고 전쟁에 희생된 인간의 삶과 찢겨 나간 시대를 다룬다.

『삶과 운명』은 총 3부로 이루어졌고 각 장은 독립된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 방대한 작품을 요약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세 가지 축을 들자면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 스딸린그라드 전투, 물리학자 시뜨롬과 그 가족들이다. 이 대작에는 수백 명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며 실존했던 인명도 언급된다. 이 작품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의 한계란 없다는 것을 증명한 잔혹하고 야만적인 시대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전체주의 체제는 인간성 자체를 벗겨냈다. 그간 프리모 레비의 책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에디트 에바 에바 에거의 <나는 마음감옥에서 탈출하였습니다> 등 수용소 문학을 통해 나치가 벌인 제노사이드는 글로는 접했다. 인간은 '우리'와 '그들'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종이다. 인간성이 미치는 영역은 '우리'에 한정한다. 거칠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간 나치를 통해 우리가 '그들'을 대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을 목격했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 스딸린 정권이 보여준 우리가 '우리'를 대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을 알게 되었다. 가령 스딸린의 집단화 정책은 그의 체제에 속한 농민들을 굶겨 죽였다. 배를 곯다가 미쳐 버려 엄마가 자기 아이들을 잡아먹었다. 가족 내 식인 행위가 상상 이상으로 빈번했던 시기였다. 스딸린 체제에서 나름의 지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굶지는 않았겠지만 스딸린의 신임, 당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우정, 사랑, 관계 같은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은 허락되지 않았다. 즉 진정한 당성 의식은 역설적으로 희생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전체주의는 인간이 당성 의식과 충돌될만한 것 자체를 보존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 자식이라도 당의 노선에 위배되는 언행의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것이 아주 사소할지라도 언제든지 신고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현대 러시아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손 꼽히는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은 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된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삶과 운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되는 걸작이라 평가받는다. 이 대작은 독일군이 스딸린그라드를 포위한 1942년 9월 말부터 1943년 4월까지 약 육 개월 남짓한 시간을 담고 있다. 국내의 많은 작가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의 한국어 번역본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데, 올해 6월 창비 출판사의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로 3권 세트로 출간되었다. 『삶과 운명』은 두 전체주의 세력인 독일의 파시즘과 스탈린 체제의 공산주의 정권, 그리고 전쟁에 희생된 인간의 삶과 찢겨 나간 시대를 다룬다.

『삶과 운명』은 총 3부로 이루어졌고 각 장은 독립된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 방대한 작품을 요약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세 가지 축을 들자면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 스딸린그라드 전투, 물리학자 시뜨롬과 그 가족들이다. 이 대작에는 수백 명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며 실존했던 인명도 언급된다. 이 작품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의 한계란 없다는 것을 증명한 잔혹하고 야만적인 시대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전체주의 체제는 인간성 자체를 벗겨냈다. 그간 프리모 레비의 책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에디트 에바 에바 에거의 <나는 마음감옥에서 탈출하였습니다> 등 수용소 문학을 통해 나치가 벌인 제노사이드는 글로는 접했다. 인간은 '우리'와 '그들'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종이다. 인간성이 미치는 영역은 '우리'에 한정한다. 거칠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간 나치를 통해 우리가 '그들'을 대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을 목격했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 스딸린 정권이 보여준 우리가 '우리'를 대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을 알게 되었다. 가령 스딸린의 집단화 정책은 그의 체제에 속한 농민들을 굶겨 죽였다. 배를 곯다가 미쳐 버려 엄마가 자기 아이들을 잡아먹었다. 가족 내 식인 행위가 상상 이상으로 빈번했던 시기였다. 스딸린 체제에서 나름의 지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굶지는 않았겠지만 스딸린의 신임, 당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우정, 사랑, 관계 같은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은 허락되지 않았다. 즉 진정한 당성 의식은 역설적으로 희생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전체주의는 인간이 당성 의식과 충돌될만한 것 자체를 보존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 자식이라도 당의 노선에 위배되는 언행의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것이 아주 사소할지라도 언제든지 신고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은 군인과 시민이 모두 동원된 총력전이었고, 전무후무한 무차별 살육이 자행된 전쟁이었다. 저자 바실리 그로스만은 우끄라이나 유대인 지식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평생 스딸린 체재의 검열과 압제에 시달렸다. 저자가 처음부터 반체제 작가는 아니었다. 처음엔 친체제 작가였고, 독소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자원하여 종군기자가 되었다. 그는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몸으로 체험했다. 나치가 저지는 만행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이 베를린을 함락한 뒤 독일인들에게 저지른 만행도 목격했다. 저자는 나치즘과 스딸린주의를 거울처럼 비추고, 히틀러와 스딸린을 형제로 간주한다. 전체주의는 개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고 영혼까지 노예화시켜 체제 유지의 도구로 활용한다. 전체주의가 인간성을 벗겨냈을 때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까지 대할 수 있는지 『삶과 운명』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이 작품이 인간의 악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은 강을 불태우고 인간의 육신을 찢어 발기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과 낭만을 잃지 않는 소련군과 부하들을 뻔히 보이는 사지에 내몰지 않기 위해 당의 지시를 거역하는 간부도 있다. 수용소에서도 서로에게 빵을 양보하는 이들은 존재했다. 사람들이 낙관적이면 낙관적일수록 더 작은 것에 연연하고 이기적으로 구는 모습을 보인다는 문장을, 속에 지닌 슬픔이 크면 클수록 생존의 희망이 작으면 작을수록 더 많음이 넓고 더 선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더라는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삶과 운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문장을 다시 읽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단편적인 문장들이 형태를 갖추어가며 조금씩 뭉쳐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채 책장에 꽂아만 두었던 역사 관련 책들도 다시 펼쳤다. 스딸린그라드의 강이 불타는 장면을 읽다 보니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투가 상세히 알고 싶어졌다. 『삶과 운명』은 역사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깊게 읽고 싶은 마음을 안겨주었다. 양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시대가 저버렸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냈던 인간들의 삶과 이 평범한 인간들이 행한 선악을 읽고 나니 이전의 나에서 몇 발짝 옆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책은 읽기 전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도록 한다. 『삶과 운명』은 내게 그런 책이다.



*출판사 이벤트에 응모하여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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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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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계의 명작,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30년 만에 개정되어 나오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인 엘리스 피터슨이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쓴 역사 추리소설이다. 저자는 18년이라는 집필 기간 동안 총 21권을 썼고, 영국의 ITV 방송국은 <캐드펠>이라는 제목의 TV 드라마 시리즈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방영했다. 영국 배우 데릭 재코비(Derek Jacobi)가 캐드펠 수사 역을 맡았다. 국내에서는 북하우스 출판사에서 2003년도에 출간하였고, 원작 시리즈의 완간을 기념해 같은 출판사에서 30년 만에 전면 개정판이 나왔다. 현재 5권까지 출간되었고, 앞으로 21권까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작가와 작품의 명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 엘리스 피터슨은 전설적인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도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현재 한국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 정세랑 작가도 이 시리즈를 자신 있게 추천하고 있다.  



매력 넘치는 주인공, 캐드펠 수사


시리즈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이 필수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21권짜리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이끌어갈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는 어떤 사람인가. 

캐드펠 수사는 전통 있는 웨일스 가문 출신으로 지금은 영국 슈루즈베리의 성 바오로 수도원 정원에서 온갖 허브들을 키우면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젊었을 때는 십자군이었고, 바다에서 10년 동안 이슬람 해적선을 격파하는 선장이기도 했다. 전투와 모험이 가득한 삶 속에서 여러 여자들과 교제를 만끽하기도 했다. 세상의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그는 넓은 시야와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의회 시간에서는 똑바로 앉은 자세로 잠자는 법도 터득했고, 졸다가 받은 질문에도 꼭 들어맞는 답변을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1권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시리즈 첫 번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의 구판 제목은  『성녀의 유골』이다. 평화로운 5월의 어느 봄날, 평화로왔던 성 바오로 수도원의 대회의실은 성인의 유골을 모셔 수도원의 명성을 높이자는 욕망으로 들끓는다. 적당한 성인을 물색하다가 위니프리드 성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이윽고 성 바오로 수도원은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수도원에 안치하여 수호성인으로 모시자고 의견이 모아진다. 그리고 이 임무는 바로 주인공 캐드펠 수사에게 부여된다. 웨일스와 잉글랜드 혼혈로 180 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잘생긴 얼굴, 귀족적이고 우아한 몸가짐을 가진 50세의 로버트 부수도원장(초미남...)과 캐드펠 수사를 포함하여 총 네 명의 수사들은 성녀의 유골을 가져오기 위해 귀더린으로 떠난다. 이 여정에서 수사들은 귀더린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반대하는 이들을 대표했던 리샤르트 영주가 화살을 맞아 살해된 채로 풀밭에서 발견된다. 자 영주는 누가 죽였고 왜 죽었을까.

내가 느낀 1권의 주요 재미는 사건 자체를 풀어가는 것보다는 당시 유럽의 기독교와 수도원 이야기, 여러 인물들에 대한 묘사, 당대 사람들이 중시했던 가치 등에서 나왔다. 민족별 특징, 신분별로 각자 다른 욕망, 성직자라는 직업에 대한 묘사들은 주로 건조하고 압축적인 서술로만 접해왔던 중세 시대에 대한 빈약한 앎이 조금은 두터워지고 생생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캐드펠 시리즈는 현대 추리 소설에 비해 사건 추리 과정이 전형적이고 허를 찌르는 반전이 부족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느꼈기에 만족하면서 읽었다. 교양과 재미를 동시에 원하는 나같은 독자라면 이 책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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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의 시간 - mRNA로 세상을 바꾼 커털린 커리코의 삶과 과학
커털린 커리코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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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비범한 한 소녀가 있다. 떡잎부터 다르다. 푸주한인 아버지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돼지를 잡는다. 돼지의 배를 가르고 배 속에 손을 넣어 내장을 퍼내고 척추를 따라 몸을 절반으로 가른다. 이 소녀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열두 살에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도축 기술을 활용해 어느 창조물의 복잡한 내부 지형이 펼쳐지는 광경을 넋을 잃고 지켜본다. 소녀는 어려서부터 주변 어디에서나 과학을 배웠고 처음부터 학교와 배움을 좋아했다. 소녀는 전쟁 직후 어려운 시기에 헝가리 어느 작은 소도시에 태어났다.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누군가 부탁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어려서부터 일을 한다. 소녀는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면서 공부도 한다. 공산주의 사회 체계와 시대가 주는 시련으로 인해 재능과 꿈을 펼칠 기회를 제약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녀는 자라서 세상을 역병에서 구해낼 기적을 기어코 만들어낸다. 기적의 정체는 mRNA이고 소녀의 이름은 바로 커털린 커리코이다. 커리코는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여성과학자'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 무수히 많은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한편 순조롭게 노벨상을 받았다면 이런 감동적인 책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녀의 얼굴이 조국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벽화로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불굴의 투지'를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하고 배우게 된다. 저자가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을 당시 많은 보도 기사에 '고독했던 40년', '추방 위협에 강등까지', '대학에서 쫓겨났지만... 집념의 연구로' 이런 수식어들이 붙었었다. 저자는 정말로 순수한 열정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한다. '인류 지식 가장 바깥쪽 경계까지 걸어간 다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 문턱을 넘고 경계를 돌파해 새로운 발견'(p245) 하는 순간에도 샴페인을 따기는커녕 평소대로 일을 하고 또 일을 한다. 물론 과학자로서 강렬한 기쁨을 맛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고 연구는 연구다. 성과를 뽐내고 타이틀 가지는 세속적인 영예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저자는 오로지 성실하고 묵묵하게 연구에 매진할 뿐이다. 그래서인가... 저자는 학계의 아웃사이더가 되기에 이른다. 인간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들은 과학계도 관찰된다. 세속적인 주류의 가치는 언제나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동료 과학자들은 연구를 지원할 보조금과 안락한 삶 등 원하는 것을 가진다.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을 잃은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저자는 학계가 오로지 DNA만 열중하고 RNA는 골칫덩어리 취급할 때도 불안정성이 곧 RNA의 핵심임을 알고 불굴의 의지로 연구를 지속한다. 정부 보조금과 연구비가 끊기고 동료들이 무시하고 승진에서 누락되고 심지어 소속된 기관에서 내쫓기다시피 해도 오로지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연구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감내하는 저자가 걸어왔던 길은 성인의 삶과 비슷하다고까지 느껴졌다. 고되고 더딘 실험과 연구를 반복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 책의 초반에 나왔던 저자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아무리 고되고 지루하더라도 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그냥 하는 것. 그것이 가족을 위한 사랑에서 비롯된 가사일이든 진리 탐구의 열정에서 비롯된 실험이든 말이다.


이 책을 옮긴 조은영 번역가는 역자 후기에서 이 책이 조금만 더 늦게 좋았을 뻔했다고 말한다. 왜냐면 이 책은 저자가 응당 누렸어야 할 명예와 칭송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기 때문이다.(한편 그것을 받았다고 해도 저자는 자랑할 사람이 아니긴 하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타임 100 서밋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에필로그에서는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용기의 말을 전하며 끝을 맺는다. 저자는 이 책이 나온 뒤인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정말로 아쉽다. 이 책은 첫 문장부터 빠져들어 읽었다. 이 책은 불굴의 의지로 온갖 역경을 돌파한 어느 한 여성과학자의 회고록이다. 유년 시절에 대한 부분은 전쟁 이후 공산주의 체제 아래 헝가리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역사소설처럼 읽었다.(회고록이 이렇게 재밌다니.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문장의 호흡이 짧고 불필요한 묘사가 전혀 없다. 딱 필요한 지점에는 깊고 단단한 통찰이 기다린다. 그리고 중간중간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지점도 등장한다.) 유년 시절을 지나 청년기에 돌입하면 본격적으로 과학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서부터는 대중 교양 과학서로써 독자들에게 지식을 전달한다. 그리고 여성이자 엄마이자 연구자이자 직장인이자 수많은 정체성과 역할을 수행하는 한 인간의 삶이 그려진다. 그리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는 발견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런 기적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지... 깊은 깨달음과 경이로움, 숭고함, 경외심을 안겨 준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읽기 경험을 선사했다.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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