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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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반대한다』는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지식계의 슈퍼스타 슬라보예 지젝이 쓴 철학 에세이다. 이 책은 제목에 명시된 것처럼 진보 담론을 비판하고 있다.

지젝은 지식계에 등장함과 동시에 세계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슈에 대해 철학적/정신분석학적 분석을 제시했다. 헤겔과 라캉을 토대로 마르크스의 이론과 대중문화를 함께 가져와 사유를 펼친다.

이번 책에도 대중문화를 활용해 쓴 글들이 여러 편 있다. 「진보와 그 변이들」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 「내전」에서 알렉스 갈렌드 감독의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 「권위」에서는 미드 〈더 와이어〉, 「세계의 종말」에서는 한국의 웹소설을 다룬다. 그가 분석한 한국 웹소설의 탈정치화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 깊다. 나는 그의 분석에 동의한다.

❝ 남한의 ‘웹소설’에서 목격하는 것은 탈정치화된 커뮤니티다. 겉보기에 더 ‘개방적’이고 민첩하지만, 모종의 아주 근본적인 정ㅇ치적 측면이 형식에서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그 형식, 그 형식의 분명 한국적 구현물은 남한 젊은이들의 삶을 특정 짓는 선택지의 안정성 및 의미 없는 다양성과 동종의 부류로 보인다. ❞


순수지식인인 그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순수지식인들의 난해한 사유의 핵심을 나와 같은 생계형 대중들이 알아듣도록 아주 열정적으로 설명해왔다. 그가 분석한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하여 들으며 나는 우리 시대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또 그런 시대에 적당히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문제와 위선을 살펴본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사이토 고헤이 등을 시작으로 20세기 주요한 철학자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 안토니오 그람시의 저서 『옥중수고』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위기는 낡은 것이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이 간격에서 아주 다양한 병적인 증상들이 나타난다. 포퓰리스트 우파부터 철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싸우고 있는 싸움터는 대부분 자유주의적 중도 진영이 겪는 그러한 병적인 증상이다. ❞


내게 “다 잘 될 거야.” “너는 소중해.” “오늘도 힘들었지. 수고했어” 따위의 자기위로서적을 아무리 읽어도 1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을 깊이 깨닫고 이런 책들에 환멸을 느끼던 20대 중반 무렵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알라딘 서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읽기의 방향을 정비했다. 그때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서재에서 그가 너무나 좋아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나는 평소 내 계급과 지위를 의식하며 대체로 주제와 분수에 맞게 행동하지만, 책읽기에 있어서는 다르다. 내 지적인 수준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독서를 해왔고 로쟈 선생님이 읽는 책들을 따라 읽으려 노력해왰다. 그의 서재에 등장하는 동서고금 온갖 지식인/사상가/철학자 중 왜 지젝에게 그토록 애정을 표할까.

『진보에 반대한다』를 읽고 나서 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두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와 『책을 읽을 자유』에서 지젝에 대해 쓴 부분을 다시 읽었다.

우리는 왜 지젝을 읽어야 할까.

❝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을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
___ 『로쟈의 인문학 서재』 284쪽, <내가 지젝을 읽는 이유> 중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순수지식인의 이야기에 나와 같은 생계형 대중이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우리 시대 문제를 예리하게 해부해서 적당한 해결을 원하는 대중들에게 그런 것은 없다고 환상을 깨어주기 때문이다.

지젝이 비판하는 진보는 자유주의적 진보를 말한다. 우리의 진짜 먹고사니즘 문제가 왜 이렇게 고달픈지 교묘히 피해 가는 그 자유주의적 진보말이다. 우리 시대에 계급은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계급투쟁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쉽게 비관하지만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포로이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 비관을 사회 구조적 비판 담론으로 확장시키지 못한다.

❝ 단순하게 말하자면, 하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두 개의 적대적 진영으로 나뉘는 반면, 상층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분열되었다기보다 양쪽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교란된 하나의 잘 조직된 전체이다. 우익은 자동적으로 자신이 온건 중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
❝ 계급 권력은 우주공간처럼 빈틈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결함과 균열로 가득하다. ❞ __ 〈절대적 불변자〉 중


우리는 최저임금을 못 받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가 외국인 노동자의 착취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다. 내 아파트 매매가가 왜 오르지 않는가에만 관심 있다. 왜 우리 아파트 앞에는 지하철이 지나가지 않는가에 관심을 가진다.

❝ 대다수의 사람은 속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 쪽이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삶이 방해받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제로 결정해야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

지젝은 현대 진보, 자본주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그는 우리의 현실을 냉철히 분석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만적인 의식도 함께 해부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왜 절망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공감한다.

자연과 남반구 사람들의 착취하여 짜낸 온갖 물질적 편의를 누리고 있기에 지금의 물질적 삶에 딱히 불만은 없다. 그러나 신형 아이폰으로 바꾸어도 그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이미 자본주의에 신물이 났다. 건강 이야기, 경제적 자유 이야기, 행복 담론만 가득한 이 시대 사람들의 대화가 피곤스럽다.

대안을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임금의 노예로 오늘 하루 더 사는 것이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그냥 그만 살아도 되겠다. 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이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라는 급진적이고 생태적인 생각에 이르게 된 나는 앞으로도 지젝을 계속 읽을 것이다.

#우주서평단 #우중몽 #슬라보예지젝 #진보에반대한다

@woojoos_story 진행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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