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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3월
평점 :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는 버지니아 울프가 쓴 에세이 여덟 편과 2025년에 최초로 공개된 두 편의 시를 묶은 책이다. 책에 실린 미술 에세이 두 편은 국내 독자에게 처음 소개되는 글이라 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울프의 '비평적 목소리'를 들려주는 귀한 선물이다.
울프의 명성은 여전히 드높고, 그녀의 글은 지금도 널리 읽힌다. 울프는 모더니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페미니즘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울프는 평론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울프는 1904년부터 <가디언>에 무기명 서평과 에세이를 기고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 책의 옮긴이 이루카는 비평가로서 울프가 쓴 글들은 '단순한 논평이나 해설이 아니라 언어의 실험이자 사유의 공연이고 저항의 행위'였다고 말한다.
울프의 비평은 영문학의 정전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대상으로 탐구하여 글을 썼고, 울프의 에세이는 이 장르의 모범으로 평가되며 소설과 맞먹는 명성을 얻었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대목에서 '윌리엄 해즐릿'이 떠올랐다. 지금 이 책을 펴낸 아티초크 출판사는 영어권 최고의 에세이스트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집 세 권을 출간했는데, 바로 그중 첫 번째 책 『혐오의 즐거움』의 서문을 울프가 썼다. 이 탁월한 서문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에 실린 여덟 번째 글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에 최고의 비평가로 해즐릿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_+
나와 같은 평범한 독자들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 역시 울프의 글을 사랑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가 토니 모리슨은 울프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고, 수전 손택은 울프를 글쓰기의 모델로 삼았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어슐라 르 귄, 리베카 솔닛 등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울프에게 바치는 글이 적혀 있다. 이 리뷰에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작가 리베카 솔닛이 울프에게 바치는 헌사를 가져왔다.
“ 울프는 혁명가였다.
하지만 그녀가 바꾼 것은 세상보다 우리 내면의 풍경이었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면서도 시대 넘어를 꿈꾼 작가.
박제된 예술을 거부하라.
당신을 다시 모험하게 할 울프의 역비평. ”
__리베카 솔닛
책에는 앞서 말했듯 총 여섯 편의 에세이와 두 편의 시가 담겼다. 이 책에 실린 제일 첫 번째 에세이 《제인 오스틴,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 세계를 비평적으로 탐구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 같은 존재"라는 표현은 꼿꼿하고 엄격하며 말수가 적은 제인 오스틴의 면모를 놓고 붙인 표현이었다. 울프는 오스틴에 무자비할 정도로 날카로웠고, 문학사 전체를 통틀어 풍자의 시선을 가장 꾸준히 유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제인 오스틴이라는 천재는 울프만큼이나 우리 독자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2025년은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이었는데, 국내에서도 제인 오스틴과 관련된 여러 책들이 출간되었다. 나 또한 운 좋게 김선형 번역가님이 새로 옮기신 『이성과 감성』을 읽었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여섯 편을 다시 읽으며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를 읽었다.
제인 오스틴은 문학적 천재성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오스틴은 겨우 열다섯 살의 나이에 『사랑과 우정』이라는 작품을 썼다. 울프는 이 글에서 열다섯 살의 제인 오스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제인은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작가'였다. 그녀의 문장에는 리듬이 있고 형태가 있으며, 절제된 힘이 있다. (...)
열다섯 살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었고 자신에 대한 환상은 더욱 없었다. (...)
그녀의 시선은 늘 본질은 향하고, 우리는 인간 본성의 지도 위에서 그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
제인 오스틴과 버지니아 울프를 모두 흠모하고 존경하는 독자인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고개를 끄덕였던가.
"그래 이거야. 바로 그래 그랬어."
나는 울프의 글을 통해 오스틴의 작품에 보다 깊게 다가갈 수 있었다. 오스틴의 문장 속에서 머물렀던 시기 동안 나의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였었던 단상들과 감상들은 언어로 표현되지 못했다. 울프의 표현을 빌리면 '침묵의 영역'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울프의 비평적 언어 덕분에 나의 감상들은 비로소 의식의 영역으로 끄집어내졌다. 문장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이러한 예술가들/작가들/비평가들은 정말이지 나에게 경이로운 존재들이다.
이번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좋았다.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좋았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부터 시작하여 각 글에 달린 각주, 책의 부록에 실린 울프의 연보까지 좋았다.
무척 어려운 질문이겠지만 이번 책에서 특히 좋았던 글을 꼽아보라고 하면 세 번째 글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와 네 번째 글 《내가 교양속물을 싫어하는 이유》를 선택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의 좁은 읽기의 세계에 추가된 주제로는 인류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존재한 인간사회의 불평등, 계급과 지위, 유한계급의 허영/위선과 없는 자들의 모방/따라하기, 문학의 역사, 문학의 탐구 대상의 변천(신에서 인간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등), 문학의 사회학적 기능,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예술이란 무엇인지, 감정의 상품화, 양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온갖 영역에서의 변화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모더니즘 문학에 관한 관심도 추가되었다. 두서없이 언급한 주제들이 바로 이 책의 두 번째 글과 세 번째 글에서 모조리 탐구된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 반드시 옮긴이 해제/문학비평가의 해설을 읽고자 한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해제/해설이 실려있지만 없는 책들도 있다. 나는 생계형 인간이라 나의 감상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순수지식인이 풀어놓은 언어를 내 것과 상호 비교해 본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놓친 것을 비평가의 정제된 언어로 읽는 것은 큰 기쁨이다. 울프는 탁월한 지성을 이용하여 소설가가 구축한 세계를 면밀하게 들여다본 뒤 나와 같은 생계형 인간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생계형 인간인 나는 순수지식인 버지니아 울프 덕분에 원래도 읽고 싶었던 셰익스피어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의 모든 것이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역자가 달아놓은 모든 주석까지.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린 버지니아 울프 연표는 역사 및 문화적 배경을 정리해 놓았다. 이 귀한 자료는 문장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으며 최근 테리 이글턴 덕분에 모더니즘 문학에 다시금 기웃거려 보기로 마음먹은 내게 귀중한 도움을 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