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나의 생일이었다. 청년은 "공칠이사……."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비밀‘인지 ‘번호‘인지 모를 것을 기계에 눌러박았다. 청년이 나의 생일을 만지는 것을 나는 잠시 바라보았다.
큐마트의 계산대는 자동문 바로 안쪽에 있다. 계산대 뒤로는 각종 양주와 담배가 진열돼 있고, 우측으로는 휴대폰 급속충전기가 있다. 계산대 앞쪽에는 신문과 복권이 있다. 신문은 낮게 진열돼 있는 까닭에, 손님들은 박찬호의 수염 위로, 김대중 대통령의 미소 위로, 마약을 복용한 가수의 고개 숙인 정수리 위로 생수를, 휴지를, 면도기를 내민다.
그리하여 한 개인의 편의점에 대한 이러저러한 소심하고 보잘 것없는 경험, 나름의 근거로 인해 나의 마지막 단골 편의점은 큐마트가 되었다. 큐마트의 특징은 우성 쎈서식 자동문에 있다. 큐마트의 자동문은 코가 예민한 짐승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기웃거리는 손님이 있으면 컹, 하고 짖듯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자동문은 항상 구원처럼 열렸다.
"전공이 뭐예요?"아마 내가 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그는 자신의 문학관에 대해 열변할 것이고, 미술을 전공한다고 하면 개중 유명한 미술작가를 들먹일 것이며, 이벤트학이나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하면, 또 ‘그게 뭐 하는 과냐‘ ‘언제 생겼냐‘ ‘그거 졸업하면 뭐 하게 되냐‘ 등의 질문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는 ‘나를 안다‘라고 말하겠지..
아주 긴 고요가, 어머니의 숨소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자고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작게 움츠러든 몸을 더욱 안으로 말며,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무엇도 없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잘 썩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