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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0 ㅣ 소설 보다
이미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올해는 소설 보다 겨울호가 겨울과 함께 찾아왔다.
(괜히 이런 소릴 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 보다 겨울 2018년판은 2019년 2월에 출간되었다)
역시 계간 도서는 계절에 맞춰봐야 맛이 더 살아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세 작품이 실려있는데 불행스러우면서도 다행히도
세 작가 모두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다.
취향에 맞는 작품을 건질 수 있을까 하는 설렘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번째 작품인 <여자가 지하철 할 때>는 너무 취향에 맞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젠더 갈등의 주소재로 쓰이는 에피소드들을 이리저리 얼기설기 엮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같은 글에 공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주제 의식만을 위해 만들어진 소설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에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이해를 위해 다른 리뷰들을 찾아보았는데 대체로 여성 독자들에게 호평의 리뷰가 많은 편)
두번째 작품 임현 작가의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는 조금 난해한 면이 있었으나
그래도 크게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내 삶에서 거의 영향력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내 안에서의 볼륨을 높여가는 경험은
아마 대부분 겪어본 적이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메시지에 크게 감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 호의 보물찾기는 결국 마지막 코스에서 성공했다.
마지막 작품인 전하영 작가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가 그 주인공인 셈.
어찌 보면 내가 혹평을 한 첫번째 작품과 전하는 메시지는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이야기 속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메시지의 설득력이 강해지는 것 같다.
나보다 먼저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에 대한 동경도 재미난 공감 포인트였다.
각기 다른 주제 의식과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세 작품을
매번 저렴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감사를 표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염치 불구하고 아쉬움을 말하자면 세 작품이 너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겨울호라고 해서 꼭 눈사람 이야기를 하고, 첫 눈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 원하는게 아니다.
세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던가 아니면
하나의 사물, 혹은 공통적인 감정이라도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성이 전혀 다른 세 작품을 통해 내 취향에 맞는 작품 하나 혹은 둘을 건져가는 재미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나 이왕이면 소설 보다를 통해 하나의 컨셉이나 계절감을 떠올릴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자꾸 생긴다.
지금은 어떤 호에 무슨 작품이 실렸는지를 기억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니...
핸드북 사이즈로 계간 단행본의 출간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도전이지만
앞으로 소설 보다 시리즈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 몇 자를 전해보았다.
변화가 있든 없든 앞으로도 쭉 구매할 생각이지만.
그러니까 사람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고, 아주 다르게 사는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로부터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고. p.77
그 때는 뭐랄까, 단순히 그냥 그 '우리'라는 말 자체가 거슬렸다. 어쩐지 서운했고, 그 우리가 나는 아니라는 건가, 내가 속하지 못한 그 일인칭의 복수형이 아주 멀게만 들렸다. p.89
깨진 가로등을 올려다보았다. 열심히 쳐다보기만 하면 갑자기 빛이 번쩍하고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고개를 꺾고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깨진 것과 불이 나간 것은 상관이 있었던가. 유리가 깨져도 그 안에 전구가 살아있으면 불은 들어올 것이다.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