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서평단 알림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폴 인그램 지음, 홍성녕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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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평단 선정 도서입니다)

 달라이 라마와 불교로 대표되는 유구한 문화의 나라, 순박한 미소와 맑은 미소의 사람들, 슬픈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땅... 부끄럽지만 그정도가 이제껏 알고 있는 티베트의 전부였다. 그래서 이 심상치 않은 제목의 두꺼운 책에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 한줄씩 읽어내려가기가 버거웠고, 한장을 넘길 때마다 그냥 덮어버리고 싶었다. 유달리 사람들이 지루하고 재미없어 하는 책이라도 버겁지 않게 즐기면서 읽어낼 수 있지만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고 잔인한 현실 앞에서 비겁하게도 도망치고만 싶었다. 나치가, 일제가 저질렀던 만행이라도 이보다 끔찍할 수 있을까... 엄연히 자행되었던, 그것도 몇십년간 그리 멀지 않은 땅에서 자행되었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을 처절한 기록이 눈을, 마음을, 머리를 괴롭혔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1989년까지. 그 이후로 근 20여년이 흘렀다. 나아진 면도 조금은 있을지 모르나, 과연 얼마나... 2008년 현재도 티베트는 여전히 중국의 강점하에 폭압을 견뎌내고 있다. 20년 전에도 절멸되기 직전이었던 그들의 빛나는 문화가 현재, 얼마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까? 수십년에 걸친 비인간적인 처사와 박해로 수없이 죽어간, 그리고 죽어가고 있던 티베탄들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감히 상상하기도 두렵다.

 중국의 비열한 일면을 모르지 않았다. 문화혁명이나 천안문 사태같이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공산주의 정권 아래 자행된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모를 지라도 문외한은 아니었다.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도  마찬가지. 하지만 자신들의 나라에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은 평화롭고 자비로운 이들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일일이 거론할 수 조차 없는 비열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티베트인들과 그들의 문화와 정신, 그들의 터전을 짓밟고 유린한 중국인들의 처사는 세계사에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추악하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비롯한 거슬리는 부류 모두를) 지구상에서 말살시키려 했듯이,  중국도 티베트인들을 멸족시키려 한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중국은 나치보다 더욱 악질적이다. 겉으로는 티베트인들을 비롯한 소수민족을 포용하여 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원으로 끌어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한 그 위장을 뻔히 알면서도 묵인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옹호와 지지를 표명한 나라들까지 존재하는 실정이니. 자국의 이익이란 이름 앞에서는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기본적으로 보장된 인권조차 깡그리 무시하고 외면할 수 있는 인간들의 실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그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고대에 이르고, 합리적이기를 자부하는 서구에서는 17~8세기에 이미 확립된 천부인권 사상이 어째서 20세기 티베트인들(현재는 21세기가 시작된지도 10여년이 지났지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단 말인가.

 옮긴이가 후기에 거론하고 있듯이, (일부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국내에 티베트는 관광지로서 알려져 있는 게 보통이었을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8월에 베이징에서 열린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일어난 일련의 사태로 좀 다른 양상이지만. 그래서 1989년 개정판본으로나마, 그것도 10년 전에 국내에 들어온 이 책이 뒤늦게나마 출판될 수 있었으리라는 사정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제라도 이런 책이 나온 것이,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라도 티베트의 현실과 중국의 비열한 폭정을 알게된 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시점에서 20여년이, 국내에 들어온 시점에서도 10년이 훌쩍 흘렀다. 우리는 최소한 그만큼의 세월을 티베트에 빚지고 살고 있는 셈.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모두 가능하면 모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하고 잔혹한 기록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 민족이 감내해야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많은 이들의 무관심과 무지, 비협조 속에 한 선량한 민족이 절멸될 위기에서 겪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해외 열강의 가혹한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직접 겪기도 했고, 질리도록 듣고 배워왔다. 바로 끔찍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서이다. 중국이 긴 세월 그래온 것처럼 결코 인정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대 티베트 지배는 20세기의 (혹은 21세기) 가장 악명높은 식민지배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 적어도 그것부터 뼈저리게 인식해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제부터라도 그동안의 기나긴 무지에 대한 빚을 조금씩이나마 갚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이제야 국내에 출판될 수 있었던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1989년까지의 사실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은 2008년, 시간의 격차가 너무 크지 않은가... 물론 이 책을 통해서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어진 사람이라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갈증을 해갈할 테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20여년 전까지만 다룬 판본이라는 것을 알고 꽤나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내용을 파악하는데 무리가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에 쫓겨서 충분한 작업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는지 본문이 매끄럽지 않게 연결되는 부분이 종종 보인다. 그래서 별 3개...를 생각했다가 이제라도, 이렇게나마 지난날의 무지를 일깨워준 보고서의 꼼꼼함과 충실함에 1개를 추가해서 4개로 결정. 출간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책에 가혹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멀지 않은 시일내에 꼼꼼한 편집의, 최근 실정까지 업데이트 된 개정판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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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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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가 동하는 제목이었다, 익숙한 이름의 출판사와 역자였다. 정작 작가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오프라인에서 짧은 시간 대강 살펴본 책은 충분히 매력있었다. 다만, 너무나도 싫어하는 헐렁한 편집의 책이 몹시 괘씸했다. 좀 더 실하게 뽑아내면 얼마든지 뚱뚱하고 푸짐한 한 권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원서도 한 권이더만...하는 마음이 끌리는 마음을 누르게 만들었다. 천천히 보자, 금방 절판될 일도 없을텐데 하면서. 그러다 느즈막하게 책을 집어들었다. 이미 좋은 책이라는 명성이 자자하고, 베스트셀러라는 위치를 공고히 다진 지 오래였다. 

 죽음의 신이 화자인 소설, 일단 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의 독일 소도시가 배경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고의 여지도 없었다. 주인공까지 죽여버리는 거 아닌가,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살려주려나... 쓰잘데기 없는 생각으로 머리를 어지럽히며 책장을 한장한장 넘겼다. 서술이 독특해서인지, 문체가 투박하리만큼 건조하게 느껴져서인지, 초반 몰입이 힘들었다. 베스트셀러는 어지간하면 피하는 게 좋다는, 검증된 진리 아닌 진리가 떠오르려 할 쯤. 본분에 걸맞지 않게 따뜻한 죽음의 신에 혹 하면서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었다. 

 사실, 지극히 뻔한 얘기이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는 건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공통적이라는. 나치 치하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유대인이 죽었다.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목적 아래 온갖 떠올리기도 괴로운 방법으로.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반 체제 인사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총통을 지지한 이들까지, 수많은 독일인들 또한 죽었다. 한 사람이 내건 잔인한 목적을 위해 자행된 인류의 죄악에 고귀한 인명이 무수하게 희생됐다. (히틀러 지지율이 엄청났으니, 독일인들도 동조한 거라는 논리는 접어두자. 히틀러가 유독 심했을 뿐이지, 사실상 그 시기 유럽의 어떤 나라도 유대인들을 반기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게다가 그건 논해봤자 결론을 낼 수도 없지 않은가) 이 때 스러진 아까운 목숨이 비단 유대인이나 독일인뿐이던가? 전 유럽의 집시들은 비율로 따지면 정말 청소되다시피 사라졌다. 집시들 외에 정리된(?) 소수민족들, 목숨을 내건 활동을 벌인 레지스탕스들, 연합국의 이름없는 병사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죽음의 신이 과로사(?)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어마무지하다. 그나마 지역을 이쪽으로 한정시키기에 망정이지, 2차 대전이 휩쓴 전 지역을 합치면... 전쟁이라는 죄악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비극은 모두에게 마찬가지. 이 진부하리만큼 뻔하고, 알려질대로 알려진 사실과 논지를 바탕으로 작가는 자신의 재주를 한껏 발휘해 독자들을 홀린다. 

 사정상 엄마와 떨어져 양부모 후버만 부부와 힘멜거리에 살게 되는 리젤, 공산주의자였던 아빠는 인식하지 못했을 때부터 옆에 없었고, 양부모에게로 가는 도중의 기차에서 어린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 시점에서 이미 비극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이지만, 다행히 리젤을 맡은 양부모가 친부모 못지 않은 애정을 베푸는 다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에서 비극의 정도는 희석된다. 가장 완벽한 아빠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페인트칠 전문가이자 아코디언 연주자, 자우멘슈와 자우케를을 입에 달고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거칠게 대하는 커다란 옷장같은 로자, 축구와 달리기는 물론 도둑질까지 함께 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옆집의 루디, 자신을 굽어보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선물하는 유태인 권투선수 막스, 그리고 리젤에게 기꺼이 책을 도둑맞아주는(?) 시장부인. 리젤의 삶을 데워주는 사람들로 인해서 암울하고 무서운 시대였지만,  리젤은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리젤의 생활을 보면서, 아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다. 장식적인 서술따위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건조한 문장임에도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의 정겨움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적어진다는 얘기와 동떨어진 탓에 줄줄 눈물을 쏟게 만드는 부분들도 못지 않게 있었지만...  

 때묻지 않은 소녀의 눈으로 그려지는 세계이기 때문에, 하는 일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할 수 밖에 없는 다정한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도둑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기록이다. 아직 이 책을 접하지 않은 이들에게, 시대가 시대니만큼 책도둑도 도둑이니 절대 훔치지 말고(!) 책도둑 리젤과 죽음의 신을 만나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굽어보는 사람', '말을 흔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서 빨리 만나보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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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 세계의 식탁을 점령한 음식의 문화사
크리스토프 나이트하르트 지음, 박계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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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면식인생이었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면이라는 사족을 못쓰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않다. 

마치 정리되지 않은 내용을, 두서없이 한번에 죽 이어서 쓴 뒤에

퇴고조차 하지 않고 출판한 것인가 의구심이 들었다면 심하겠지만

문장도, 구성이나 연결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부분이 요소요소 보인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와 내용을 다룬 책이기 때문에

조금도 지겹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독자가 나와 달리 누들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고, 짜임새있게 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시간이 부족했을까?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린 이유가 무엇이 됐든, 독자는 읽음으로써 평가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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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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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집의 제목이기도 하고, 수록작 중 하나의 제목이기도 한 동물원.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때에는 ‘왜 이런 제목을?‘ 싶었는데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적절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이라는 장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원의 이미지와 이 작품집 속 10편의 글들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목이 독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책을 읽을 때 가장 처음으로 접하는 것인만큼 인상적인 제목은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데 확실히 간과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유원지이자 나들이 코스로서 진부할만큼 익숙한 장소인 동물원은 어쩐지 늘 얼마만큼의 서글픔과 섬찟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유원지라는 장소가 가지는 보통의 통상적인 이미지, 가볍고 즐거운 분주함, 활기찬 소란함이 기본적으로 존재하긴 하지만 뭐랄까... 가족간의 소풍처럼 소규모로 온 것이든, 학교 등의 단체에서 대규모로 온 것이든 동물원에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는 여지없이 얼마만큼의 권태와 짜증이 엿보인다. 어른이나 어린 아이나 예외없이 그곳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다들 일상의 무언가에 치여 지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동물원의 사실상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동물들도 다르지 않은데, 사람들의 유흥 거리로 전락해서 저마다의 우리 안에 갇혀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내부 어딘가에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나 분노가 잔뜩 숨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의식하지 않고 넘겨버릴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지없이 느껴지는 서글픔과 섬찟함.... 이것이 동물원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이 작품집에서 전반적으론 풍기는 인상이었다. 물론 후자에서 그런 인상을 받게된 건 작가의 의도이니 당연히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거겠지만.
 
 역자의 후기에도 나와 있듯이, 퓨어와 다크 계열로 나누어진다는 오츠이치의 작품들을 이 한권을 통해서 골고루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의도인지, 편집자의 계획인지 혹은 둘 다인지 일개 독자인 나로서야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으로 ’오츠이치’를 처음으로 접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작년 여름 사방에서 찬탄을 거듭하던 이 책의 진가를 뒤늦게 알게 된 것이 조금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차분하게 실감할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무수한 찬사 속에 접한 책은 그것의 부작용으로 실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법이니까.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림과 동시에 주목해야할 작가 한명 더 알게 되었다는 기쁨을 선사한 한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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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절판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시민의 불복종 中--13쪽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고 그 법을 어길 것인가?

-시민의 불복종 中--26쪽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화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시민의 불복종 中--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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