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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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가 동하는 제목이었다, 익숙한 이름의 출판사와 역자였다. 정작 작가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오프라인에서 짧은 시간 대강 살펴본 책은 충분히 매력있었다. 다만, 너무나도 싫어하는 헐렁한 편집의 책이 몹시 괘씸했다. 좀 더 실하게 뽑아내면 얼마든지 뚱뚱하고 푸짐한 한 권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원서도 한 권이더만...하는 마음이 끌리는 마음을 누르게 만들었다. 천천히 보자, 금방 절판될 일도 없을텐데 하면서. 그러다 느즈막하게 책을 집어들었다. 이미 좋은 책이라는 명성이 자자하고, 베스트셀러라는 위치를 공고히 다진 지 오래였다. 

 죽음의 신이 화자인 소설, 일단 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의 독일 소도시가 배경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고의 여지도 없었다. 주인공까지 죽여버리는 거 아닌가,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살려주려나... 쓰잘데기 없는 생각으로 머리를 어지럽히며 책장을 한장한장 넘겼다. 서술이 독특해서인지, 문체가 투박하리만큼 건조하게 느껴져서인지, 초반 몰입이 힘들었다. 베스트셀러는 어지간하면 피하는 게 좋다는, 검증된 진리 아닌 진리가 떠오르려 할 쯤. 본분에 걸맞지 않게 따뜻한 죽음의 신에 혹 하면서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었다. 

 사실, 지극히 뻔한 얘기이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는 건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공통적이라는. 나치 치하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유대인이 죽었다.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목적 아래 온갖 떠올리기도 괴로운 방법으로.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반 체제 인사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총통을 지지한 이들까지, 수많은 독일인들 또한 죽었다. 한 사람이 내건 잔인한 목적을 위해 자행된 인류의 죄악에 고귀한 인명이 무수하게 희생됐다. (히틀러 지지율이 엄청났으니, 독일인들도 동조한 거라는 논리는 접어두자. 히틀러가 유독 심했을 뿐이지, 사실상 그 시기 유럽의 어떤 나라도 유대인들을 반기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게다가 그건 논해봤자 결론을 낼 수도 없지 않은가) 이 때 스러진 아까운 목숨이 비단 유대인이나 독일인뿐이던가? 전 유럽의 집시들은 비율로 따지면 정말 청소되다시피 사라졌다. 집시들 외에 정리된(?) 소수민족들, 목숨을 내건 활동을 벌인 레지스탕스들, 연합국의 이름없는 병사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죽음의 신이 과로사(?)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어마무지하다. 그나마 지역을 이쪽으로 한정시키기에 망정이지, 2차 대전이 휩쓴 전 지역을 합치면... 전쟁이라는 죄악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비극은 모두에게 마찬가지. 이 진부하리만큼 뻔하고, 알려질대로 알려진 사실과 논지를 바탕으로 작가는 자신의 재주를 한껏 발휘해 독자들을 홀린다. 

 사정상 엄마와 떨어져 양부모 후버만 부부와 힘멜거리에 살게 되는 리젤, 공산주의자였던 아빠는 인식하지 못했을 때부터 옆에 없었고, 양부모에게로 가는 도중의 기차에서 어린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 시점에서 이미 비극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이지만, 다행히 리젤을 맡은 양부모가 친부모 못지 않은 애정을 베푸는 다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에서 비극의 정도는 희석된다. 가장 완벽한 아빠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페인트칠 전문가이자 아코디언 연주자, 자우멘슈와 자우케를을 입에 달고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거칠게 대하는 커다란 옷장같은 로자, 축구와 달리기는 물론 도둑질까지 함께 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옆집의 루디, 자신을 굽어보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선물하는 유태인 권투선수 막스, 그리고 리젤에게 기꺼이 책을 도둑맞아주는(?) 시장부인. 리젤의 삶을 데워주는 사람들로 인해서 암울하고 무서운 시대였지만,  리젤은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리젤의 생활을 보면서, 아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다. 장식적인 서술따위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건조한 문장임에도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의 정겨움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적어진다는 얘기와 동떨어진 탓에 줄줄 눈물을 쏟게 만드는 부분들도 못지 않게 있었지만...  

 때묻지 않은 소녀의 눈으로 그려지는 세계이기 때문에, 하는 일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할 수 밖에 없는 다정한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도둑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기록이다. 아직 이 책을 접하지 않은 이들에게, 시대가 시대니만큼 책도둑도 도둑이니 절대 훔치지 말고(!) 책도둑 리젤과 죽음의 신을 만나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굽어보는 사람', '말을 흔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서 빨리 만나보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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