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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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나는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지금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분노다. (나는 당신의 유서를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장 아메리는 서문부터 이 책의 내용은 자살-또는 자유죽음-에 대한 변호가 아니며 다만 스스로 그 주제를 고찰한 결과일 뿐이라 말하지만 그는 <자유죽음>의 출판 후 2년이 지난 1978년 자살했다. <자유죽음>의 다섯 단락을 자신의 죽음의 논리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 아메리는 자살이라는 현상의 사회경제적 배경 또는 심리적 연구 또는 과학적 분석을 배제하고 철학적이며 개인적인 측면에서 자유로운 죽음을 고찰했기에 이 책을 평가하기란 곧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나 그 삶은 너무 괴로운 것이었고, 그는 너무 지적이고 재치있는 사람이라 뭐라 말하기가 두려워진다. 그는 자살했으니까.

<자유죽음>에서 가장 괴로운 부분은 4장 '나 자신에게 속하자'였다. '직업적 성취를 위해 자살희망자의 자살욕구를 부정하고 삶을 살리는 자신에게 도취하는' 상담자의 희화화가 나오는 도입부터 나는 전혀 우습지 않았다. 사회 이전에 개인이 존재한다는 철학적 전제가 실제 자살행위로 개인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조각하지 못한다.

이 책의 핵심이라 할 법한 4장은 작가가 가장 강하고 설득적인 논리를 피력하는 곳이다. 그렇다. 결국 선택하는 주체는 개인이다. 삶이 자유롭다면, 죽음까지도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자살은 상처가 된다. 이 잘 쓰인 유쾌하고 깊이있는 자살에 관한 수필이 2년 후 작가의 선택에 대한 예고서란 사실이 나에게 상처가 된다. 그 괴로움은 우선적으로 내 책임이지만, 그 드높은 지성과 고단한 삶으로 엮어낸 지혜로 자살에 '자유죽음'이라는 관을 씌우고는 곧이어 자살해버린 장 아메리는 그 원인이다.

자살자의 관점에서 당연히 자살은 희망이요 선택이요 마지막 구원이며 자신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갈림길이다. 이 책을 긴 유서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면 장 아메리는 그렇게 죽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타인에게 자신의 글을 읽힌 지식인으로서 그가 지키지 못한 책임이다.

우울증이 언제나 병증은 아닌 것은 맞다. 그러나 우울이 희망없는 상황에 대한 타당하고 합리적인 사고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그게 치료와 교정의 대상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상황이 바뀌면 달라지고, 시간이 흐르면 바뀐다. 그 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을 반드시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 불러야 하는가? (기다릴 수 없는가?)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 위에 개인의 삶에 대한 권리를 두는 장 아메리는 그 논리를 위해, 한줄기 비웃음과 함께, 사회와 개인을 엮는 끈을 끊는다. 1978년에 그는 죽었고, 그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 똑똑하고 논리적인 책을 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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