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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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더 자극적인, 더 참신한 글도 있었지만 제 5회 한국과학문학상 작품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울린 작품은 성수나 작가의 <신께서는 아이들을>이었다. 반복해 읽으며 골몰하고, 내 슬픔과 미련에 대해 생각했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한 구조의 세상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올라온다. 죽은 아이들이다. 피안의 섬에는 무덤과도 같은 작은 언덕이 있고 잠시 머무를 오두막이 있다. 바다 아래는 차안이다. 이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신이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아이들은 다시 태어날지 또는 그저 사라질지 결정할 수 있다. 섬을 지키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은 결정의 순간까지 아이들을 돌본다. 

반려동물은 말을 할 수 있다. 아이들과 반려인은 말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섬이 조용한 장소인 건 아니다. 종을 울리고 섬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있고, 일대일로 얼굴을 마주보며 입모양으로 소통을 한다. 너무 많은 말소리로 너무 적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배인 걸까. 섬은 생각하는 장소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신의 그물, 신의 사랑이다. 반려동물과 아이들은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 충만하다. 반려인은 열매와 풀을 먹어야 한다. 반려인은 이질적인 존재다. 바다를 통해 환생하거나 바다에 녹아들어야 하는데 바다는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신은 왜 그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가 신을 믿지 않기에?

서글픈 듯 잔잔하게 이어지는 사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 신, 바다, 섬, 반려인, 반려동물은 무슨 상징일까 고민하다 이것저것 덕지덕지 모티프를 부여하다 이내 지루해졌고, 그제야 순순히 글을 활자 그대로 읽었다. 그러니 간단해졌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다.

반려인은 섬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그물은 촘촘하고 완벽하지만, 신은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아이들은 실수를 하고 어쩌면 신의 손을 놓칠지도 모르니까. 그 때 손 놓지 않을 누군가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불신자는 섬에 머무르며, 무조건적이지 않은 사랑과 전능하지 않은 능력으로 아이들을 지킨다. 

동물이 하듯, 또는 어린아이와 신이 하듯 의심하지 않는 사랑이란 아름답고 편안하다. 불신하는 사랑은 그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사랑에 상대비교는 의미가 없다. 그러니 이야기의 끝에서 불신자는 신자가 되고, 그 믿음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자 자신이 지킨 아이들이리라. 나는 그 믿음 자체가 신의 얼굴이라 믿는다. 

글을 곰씹고 한껏 술렁이는 마음으로 작가노트를 읽었다. 

 '...내가 이들이 갖고 있는 믿음이라는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를 따돌리는 이 수많은, 무방비한 뒤통수들. 그런데 왜 밉지 않은 걸까. 나는 그들 사이에 멍하니 앉아 생각했다. 아주 먼 훗날에, 의심 많은 내가 무언가를 믿게 된다면, 그건 종교가 아니라 이 뒤통수들일 거라고. 그 믿음으로 이야기를 썼다.'
p.286

작가의 말로 비로소 내 안에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찬찬히 읽었다. <신께서는 아이들은>은 신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지, 신앙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무결한 믿음이 아닌, 보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믿음이다. 의심과 공존하는 믿음이다. 

나는 어떠한 신앙도 없지만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믿음이 누군가에게, 그리고 내게 구원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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