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20 소설 보다
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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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특히 여러 작가가 집필한 단편집에 대한 리뷰는 잘 안 쓰게 되는데 그건 내 취향이 참으로 편협하고 고집스럽기 때문이다. 난 이거 빼고는 다 별로였어! 외치려니 뭔가 죄송하고, 부끄럽고, 설명해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제 안목이 부족해서 그렇지 아마 다 좋은 글일 거에요... (전 재미없었지만...)

같은 작가가 쓴 3개의 글이어도 선호가 갈리는 법인데 묶어주는 공통 주제도 없는 세 작가의 세 이야기에 대한 내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는 극단으로 치우친다. 그러면 자연스레 솟아나는 고민: 1/3만 간직하고 싶은 이 책을 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이 시점에서 '소설 보다' 시리즈의 강점을 되새긴다. 단돈 3500원! 기본 할인 적용하면 3150원! 참치김밥보다 싸다! 만족스러운 이야기 하나(와 그 이야기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위해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무엇이냐면 우다영 작가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이다. SF적 꺼풀을 쓴 나와 너의 경계에 대한 고찰이라니 제 취향을 저격하시는군요. '영혼이 존재하고, 전생을 기억한다면'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세상의 법칙을 재구성하는 뻔뻔함이야말로 내가 SF를 사랑하는 이유다.

어떤 신비한 풀떼기가 있다. 이 풀로 인해 '각성자'들은 지나 온 모든 전생을 깨닫는다. (대놓고 SF다. 이런 거 좋아. 재밌어!) 화자는 이 각성자들의 기이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인터뷰한다.

만난 사람을 계속 만나고 만나는 게 우리 모두의 삶이고, 죽음도 인연을 끊을 수는 없고 다만 변주를 줄 뿐이라면 그 종착역은 어디인가. 나와 너는 같아지는 걸까. 나는 사라지고 우리만 남게 되는 걸까. 아니면 다만, 나는 나로 남되 나의 모든 삶이 내가 만난 모든 영혼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나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뿐인가.

SF가 언제나 그렇듯, 황당무계하고 비현실적인 화장 아래 얼굴은 우리에게 낯익다. 나와 타자의 경계란 무엇인가. 공동의 선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숲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모든 삶이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면, 정말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서로를 돕고 지키지 않을까.

나는 정말로 SF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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