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 / 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독자라면 누구나 마음 한 켠에 자기만의 책방을 꿈꾸고 있다고 믿는다.

자기만의 책방이란 무엇인가? 소박하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전시하고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라 정의한다면, 이 꿈은 이루기 참 쉽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아예 자신의 책을 보관하기 위해 건물을 세우는 정도는 아니라도, 구석방이나 거실 모서리에 자그마한 서재쯤이야 얼마든지 꾸밀 수 있으니까.

내게도 나름의 책방이 있다. 책꽂이 다섯 개가 ㄱ 모양을 이룬 가운데, 등받이로 주로 사용하는 편안한 의자가 있다. 책을 눕혀 꽂고 책 위에 책을 쌓고 책장 위의 책 상자에 책을 수납하니 내가 가진 책이 다 거기 모였다. 주로 만족스럽고, 가끔 슬프다. 십몇 년 전 내가 꿈꾸던 내 '진짜' 책방은 어디로 간 걸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서점 주인. 책 큐레이터. 동네 주민을 웃으며 맞이하는 북텐더.

서두가 길었다. 요점은 나는 우후죽순 등장했다가 사막의 꽃처럼 빠르게 사그라지는 '개인 책방'의 나열을 보며 못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란 거다. 개인이 책방을 열고 운영하고 성공하기란 참 힘든 일이라고, 결국 접었다고, 못 할 짓이라는 트위터 발 하소연과 에세이와 기고문을 읽으며 내심 흡족한 마음으로 끄덕거리곤 한다. 그래, 안 하길 잘했어. (중요한 차이다. 나는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그러니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이란 책은 솔직히 못마땅하다. 나는 대리만족으로 행복감을 느끼지는 못하는 되바라진 사람이다.

분명한 사실은, (기만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니은서점은 잘 된 서점이다.

개인이 연 서점에 관한 책이 나왔는데 결론이 (아직은) '망했다'가 아닌 시점에서 성공이고, 각종 종이신문에 인터뷰와 책 소개문이 실린 점에서 성공이고, 코로나로 오프라인 경기가 침체한 이 시점에도 굳이 이 작은 서점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성공이다. 부럽다. 책의 저자는 대학교수에 사회학자고 저자이며 번역가이고 (다 나도 하고 싶었던 일들이다. 못했지만!) 성공한 동네 서점 주인이다. 아, 정말로 부럽다.

북텐더라는 멋진 직함이, 근사한 녹색 간판이, '니은서점의 모든 책이 베스트'라는 자신만만한 외침이 눈이 부시게 부럽다. 그리고 질투심에 휩싸여 책을 읽어내리다 보면 이내 위축된다. 그래요, 힘들었고 극복했고 성공했군요. 여느 영웅담처럼. 매달 적자를 내면서도 훌륭히 버티고 계시는군요. 계속 나아가시네요. 대단해라.

잘 쓰인 책이다. 잘 읽힌다. 문장 사이의 틈에서 자신감과 기쁨이 반짝인다. 책에 대한 생각도 책의 판매에 대한 생각도 통찰력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오웰을 꺼내다니. 반칙이다!) 나는 서가에 잔뜩 책을 꽂아 둔, '책은 산 책 중에서 읽는 것이다'라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만이 자기만의 서점을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 저 말을 한 사람은 김영하 작가다.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말이 이렇게 널리 인용될 줄 알았을까?)

손은 많이 가는데 팔기는 참 팍팍한 출판 시장에서도 가장 험난한 전장은 동네 서점일지도 모른다. 할인도 재고관리도 고객 유치도 어려운, 시작부터 끝까지 유리한 고지라고는 없는 적자생존의 장. 시장경제적으로 따지자면 작가의 말마따나 독립 서점의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없다면, 그 가치를 공유하는 독자가 없어진다면, 독립 서점도 완전히 없어지겠지.

'지속 가능한 적자'만큼 무서운 표현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독립 서점을 연다는 건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마음속으로만 나의 책방을 구상하겠지만, 내 마음 속 서점은 이미 <니은서점>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니 감사의 의사를 표해야 마땅하겠다.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결국은 잘 읽었다. 완독하니 부러움보다 존경이 앞선다. 무수한 독립 서점 실패담 가운데 <니은서점>은 자기긍정으로 빛난다. 신 포도라 마냥 되뇌던 겁쟁이 여우가 읽기 좋은 책이기도 하다. 솔직히 인정하자, 할 수만 있다면 나도 하고 싶었다. 서점.


앞으로도 쭉 잘 되고, 오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P.S. <니은서점>의 '망할 놈의 굿즈'를 받고 싶었으나 근처에는 방문할 만한 독립 서점이 없었다. 이런 망할.


사실 책이 비싼 상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책을 바라보는 개인의 태도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니은서점의 단골손님 박미영 씨는 한번 오시면 20여 권 사 가시는데요. 계산할 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세요. "아우, 이렇게 책을 많이 사도 옷 한 벌보다 싸요." - P1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