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 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 - 현직 의사가 쓴 생활 속 질병과 의학의 역사
박지욱 지음 / 시공사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의학사에서 고고학이 무슨 상관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가 본인을 ‘진료실의 고고학자’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는 소개 글에서 왠지 제목과 부합되어 의학사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굉장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의학을 인문학과 결합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의 일환으로 의학을 통한 인간의 역사를 쓰게 된 이 책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의학사이지만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하였고 더불어 인간과 영원히 함께 하고 있는 질병의 역사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도, 의문을 가져보지도 않았던 이야기들이 이 책안에 담겨져 있었다. 20가지의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흥미진진함 그 자체였다. 왠지 고고학자가 들려주는 과거로의 여행처럼 모험심 가득한 기분이 든다. 그럼 이제 그 이야기 속을 들여다보자.
지도에 병원을 표시할 때 빨간 십자기호를 쓴다. 왜 그럴까? 일단 150여 년 전에 발생한 솔페리노 전투의 참상을 알린 앙리 뒤낭에 의해 창시된 국제적십자운동에 사용된 적십자 로고를 주시한다. 적십자운동이 시작된 유럽이 대부분 기독교 국가들이라 십자가 상징하는 의미는 충분하다. 결국 십자는 기독교라는 종교적인 색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 적십자 기관들은 빨간 십자기호를 쓰고 있을까? 기독교 종교의 색깔이 있다 보니 이슬람국가는 적십자로고 대신 빨간 초승달 로고를 사용하고,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은 이 로고를 거부하여 국제 적십자 연맹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과의 역사는 이발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황당하다. 중세유럽 수도사-의사들은 피를 보는 일이 끔찍해 목욕탕주인이나 교수형집행인, 이발사 등이 수술을 도맡았다고 한다. 천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서전 surgeon' 이라 불렀는데 서전의 사회적 지위는 빵집주인, 공증인과 이발사와 비슷했다. 특히 이발사는 서전들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되어 직업적인 라이벌이 되었다. 나중에야 두 집단이 서로 분리되어 서로의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지만 이발소엔 서전이 사용했던 메스를 닮은 면도칼, 흰 가운, 삼색이발소 등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발소에서 수술을 했었다니 황당하지만 역사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이맘때쯤이면 ‘크리스마스 씰’을 샀던 적이 있었다. 결핵퇴치 기금마련을 위함인데 요즘 시대에는 결핵이 줄었는지 더 이상 ‘크리스마스 씰’을 사라고 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매년 900만 명이 결핵에 걸리고 매년 150만 명이 목숨을 잃는 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유는 굶주림과 전쟁이 원인인데 이는 주요 후진국들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결핵환자의 발생이 지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건강을 상하게 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다. 생각과 다르게 오랜 세월을 인간과 함께 해온 결핵이 여전히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임을 알고 나니 연말에 딸에 편에 오는 ‘크리스마스 씰’을 꼭 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부학의 역사는 무척 흥미로웠다. 기원전 300년 경,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투스가 처형된 죄수들의 몸을 칼로 잘라보는 것으로 해부학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후로 갈레노스의 해부학의 이론이 정립되지만 베살리우스에 의해 사람이 아니라 동물을 분해하여 사람 몸에 맞췄던 갈레노스의 인체해부학 지식이 허점투성인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거부당한 것처럼 의학계는 베살리우스의 새로운 해부학 지식을 반역으로 치부했다. 이후, 모르가그니는 해부학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병리학의 체계를 다지게 된다. 그리고 해부학은 병리학으로 진화하게 되고 해부학과 병리학이 의학 공부의 기본이 되면서 의사들은 직접 해부를 해보자 하는데 이 당시에는 시체가 많지 않아 시체 도둑이 판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있었다. 심하게는 여관 주인이 투숙객을 살해해서 시신을 의사에게 팔아넘길 정도니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이 외에도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강력한 액체 폭약이 비아그라가 탄생한 이야기는 과정에서는 전쟁역사가 담겨져 있지만 코미디 같은 결과물을 얻어 내었고,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독가스 중 겨자가스가 항암제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 한 결과였다.
딱딱한 의학적인 지식만을 전달했다면 이 책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의학을 보는 관점을 과학만의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과학을 포함한 사회와 인간의 관점까지 아우르며 이해하고자 했던 점이 있었기에 책의 존재가치가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질병이 십자군 전쟁, 세계대전, 6,25 전쟁과 같은 전쟁 역사와 함께 했다는 재밌는 의학사 이야기는 분명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로움을 이끌어 낼 것이다. 게다가 저자의 재밌는 글 솜씨로 흥미와 재미는 배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어려울 수 있는 의학사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모두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