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1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미완의 회고록이다. 목차와 대략의 방향만을 잡아놓은 뼈대라서 초고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대략의 얼개만 정리하다 보니 중요한 키워드들이 튀어나와 굉장히 솔직하다. 그리고 채 완성되지 못한 앙상함이 너무 와닿아 가슴이 아리다. 비서관들이 차마 손대지 못한 것이 이해가 된다.

가령 이런 대목을 보자. 미완의 회고록에서 '미완'이 어느 정도의 미완인지 와닿을 것이다.


노무현의 오류

정치력
- 당정 분리, 독선과 아집, 무리한 의제들, 그런 점이 있을 것이다.
감히 언론에 맞서다니
- 유착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었다.
- 취재 선진화, 언론의 흔들기와 관료의 무력화
- 이 유착을 끊고 관료를 언론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것
게다가 지지자를 화나게 했다. 지지 세력에 대한 배반
- 이라크 파병, 대연정, FTA 등을 이야기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열린우리당의 지지층은 누구인가?
인기 없는 대통령이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 말씨와 품위, 언론과의 싸움, 감성적 접근,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 대통령
- 인심을 잃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진 것도 있을 것이다. 해결이 되고나니 관심을 꺼버렸다. 민주주의 의제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관심이 달랐던 것도 있다. 자주국방, 균형외교, 역사의 정리 등에 관한 것들이다. (p.27)



1부 2장은 홈페이지에 비공개로 씌어졌던 글들이다.

2부는 육성기록을 옮긴 것인데 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들일 것이다. 1장은 어린 시절부터 정치 입문기까지의 기록, 2장은 참여정부의 회고, 마지막으로 3장은 한국 정치에 대한 제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쁜 사람은 서점에 잠시 들러 1부 1장만 읽어도 될 것 같다. 이미 가버린 사람의 책인걸 베스트셀러가 되면 무얼해. 그런데 이미 베스트셀러네. 마음이 아프다.
 

 

 [책 속에서... ] 


대통령 임기 내내 나는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총체적 파탄, 잃어버린 10년, 이런 평가를 하는 사람들과 싸웠다.
말년이 되면서 나는 정치적 좌절을 이야기했다.
-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분명히 좌절이었다.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p.16)

세상이 많이 바뀐 것입니다. 다만 바뀌긴 바뀌었는데 이상하게 바뀌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남이 가진 것을 강탈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는데, 지금의 정부는 장물(정수장학회)을 되돌려 줄 권한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면서 힘이 빠져버리니까 기득권 가진 사람들, 특히 부당하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p.124)

연좌제에 걸리면 시험에 붙어도 취직을 못하게 되는데 당시의 저에게 상당한 저항감을 갖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취직을 못한다는 이야기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특히 그것 때문에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못한다는 것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저항감을 가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고시만 보고 판사는 안 하면 될 것 아닌가?' 하고 딱 잘라 결정을 했습니다.
지금은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이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해석하는데, 사실 그 이상의 것이 있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저는 부조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고시만 하고 판사는 하지 않겠다는 배짱이 나왔던 것입니다. (p.134)

1987년 6월 항쟁 당시 끓어올랐던 시민적 정신, 그 사람들이 역사와 가치, 민주주의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꿈이 계속 좌절되고 짓밟히다가 2002년 위기 상황에 몰린 것입니다. 그 위기 상황에서 그들이 바보 노무현을 만나 폭발한 것입니다. 정치는 그렇게 상호작용 속에서 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때로는 이해관계에 민감한 국민들이 아니라 가치에 민감한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정치노선을 갖고 꿋꿋하게 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가치에 민감한 역사, 또 그런 역사에 민감한 사람들과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력을 떨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p.158)

지금까지 언론이 참여정부에 대해 진실을 왜곡하고 차단하면서 무자비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끊임없이 원칙 없는 비판을 쏟아 부었습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그 비판의 절반만이라도 신뢰성이 있었다면 저는 당장 이 자리에서 쫓겨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절반도 믿지 않기 때문에 제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나마 우리 국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국민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흔들어대는데도 쫓아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주시는 것이 감사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p.174)

저는 교양이 없습니다. 저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데, 체질적으로 제가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고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하고, 말은 위엄 있게, 행동은 기품 있게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대통령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못했습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에 있어서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던 점은 있습니다. 우리 아내가 어디 행사장에 들어갈 때 고개 숙이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p.180)

협상을 할 때 포커페이스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우리의 위치가 계속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도 전략적으로 그에 따른 많은 카드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서로 의견의 합치점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위치와 좌표에 대해서는 포커페이스를 쓰지 말고 주기 원칙을 정확하게 내놓고 일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원칙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없이 좌우에서 일방적 관점, 단편적인 사실이나 가정 등 자기들의 주장을 마구 퍼부으면 그게 전부 정부의 무능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협상을 하고 관리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p.225)

감당해갈 수 있다는 믿음, 우리 국민들의 역량에 대한 믿음, 그것이 FTA를 결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무리 앞서가고 싶은 지도자가 있어도 국민들이 이 새로운 상황이나 혼란스러운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결단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국민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면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국민들에 대해 그만한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p.230)

큰 진전은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참여정부가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권력, 시장권력이 아닌 시민권력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면에서도 '더불어 사는 경제'를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상당수의 언론들이 그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저와 생각을 같이 하는 언론들도 저를 비판해야 자신의 민주성이 더 빛날 것으로 여겼는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참여정부가 진보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더디게 가서 진보가 아니라며 비판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원칙으로 맞서지 않았다면 그 정도를 유지하는 일도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p.240)

신뢰가 있는 사회에서는 질서가 유지됩니다. 원칙이 있고 준법이 있고 신뢰가 있는 사회가 왜 중요합니까? 사람들이 믿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상대방을 믿지 못하니까 조사해야 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을 해놓고도 약속을 위반하지는 않는지 뒷조사해야 되니, 경제 활동이든 정치 활동이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바꾸는 사람들은 지도자의 영역에서 퇴출시켜야 합니다. (p.262)

정치란 결코 기술이 아닙니다. 경제 하나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치란 역사적 과제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가지고 그 과제를 맞닥뜨렸을 때 문제를 풀기 위해서 도전해가는 과정입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이 임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세력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시민세력을 만들어나가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p.270)

돈을 많이 벌었어도 그것만 가지고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우리 국민들의 도덕적 자각과 성숙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권력 내부의 원칙 없는 투쟁, 시장과 정치권력 사이의 타협 없는 투쟁, 이런 모순만 계속 반복될 뿐입니다. 그 위에 존재하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가치, 주권자로서의 지위, 이런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회주의와 불신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본질적 과제입니다.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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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의 즐거움 - 살며시 다가가 적을 낚아채고 옭아매는 12가지 기술!
마수취안 지음, 이영란 옮김 / 김영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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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제목의 사악함으로 인해 안사볼 재간이 없었다고나 할까, 제목이 가진 사악함이 내 안에 있는 악에게 말을 걸었다고 할까, 아무튼 그런 단순한 이유로 보게 된 책이다.

이야기인즉슨 5천년 중국사에서 난세를 치세로 이끈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전략바이블이랜다. 책 제목 아래에는 버젓이 이렇게 쓰여 있다.

"살며시 다가가 적을 낚아채고 옭아매는 12가지 기술!"

이게 뭔가! 이러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써놓으면 어쩐지 보고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왠지 무림 비급갖기도 하여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참으로 저열한 선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내용 역시 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이 책의 내용과 유사한 책으로 저 유명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들 수 있겠다. 군주론은 군주에게 바치는 갖가지 책략이 들어있는데 이 책은 그보다 스케일이 조금 더 커서 조정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 조직이란 무엇인가? 조직이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하드웨어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조직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두명만 넘어도 인간관계라는 것이 형성된다. 좋은 관계가 생기면 그 반대편에 나쁜 관계가 생긴다. 쉽게 말해 나와 이효리가 뜨거운 관계가 된다는 것은 나를 제외한 효리빠들이 이효리와 뜨거운 관계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조직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음지보다 양지를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히 경쟁이 붙고 경쟁에는 여러 전략전술이 동원된다. 그 이면에는 많은 추측, 의심, 의혹, 배신, 모함 등의 이전투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싸움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각고의 노력 따위를 권하지 않는다. 모략 하나면 충분하다는 식이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을 보자.


군자는 명예를 중시하고, 소인은 자신을 사랑한다. 명예를 좋아하면 행위에 속박받지만, 이익을 중시하면 손해를 입지 않는다.

겉으로는 상대를 찬미하여 그로 하여금 차마 받아들일 수 없게 함으로써 진정한 뜻을 모르게 하고, 암암리에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기 위해 그가 가장 꺼리는 곳을 공격해서 자신을 보호한다.

지극히 친한 사람이라도 눈을 질끈 감고 제거하고, 아주 악한 일이라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붙어야만 뜻을 이룰 수 있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 의지해야만 공명을 이룰 수 있다.

난세에는 유능한 사람을 등용해야 하지만, 천하를 평정하고 나면 이들을 제거하여 후환을 없앤다.

 

대략 이런 식이다. 아주 악독한 내용이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내일의 생명에 대해 보장할 수 없는 난세 중의 난세에 씌어진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우리가 학교를 통해 배운 너무 나이브한 도덕 관념에 취해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도 이 정도의 찌질한 술수 정도는 파악해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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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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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괴기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던 책이다.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 챕터가 모두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 진술들은 딱 들어맞지 않고 엇갈린다. 어쩔 수 없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생각난다.

책 속에는 또다른 책이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대화나 서술은 없다. 말 그대로 일방적인 진술이다. 작품의 재미를 더해주는 기교다.

밤에 혼자 읽으면 무서운 책이다. 귀신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끔찍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도 않은데 왠지 공포감에 시달린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공포를 상상하게 만든다. 가지 말아야 할곳까지 갔다온 인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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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이야기로 읽는 인디언 역사
찰스 만 지음, 전지나 옮김 / 오래된미래 / 2005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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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탄생- 미국 역사 교과서가 왜곡한 건국의 진실들
레이 라파엘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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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3월 1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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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청교도 사회- 정착 초기의 역사
정만득 지음 / 비봉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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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데라야마 슈지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마고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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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따위 책이 다 있어" 하고 집어들었던 책을 몇장 읽어보고 바로 사가지고 나왔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 산문들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쓴 글이다. 전체적으로 감정이 자유분방하게 분출되는데 머리로 짜낸 억지가 없다.

 

몇십 년 전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쇼크를 줄 수 있는 거침없는 자유분방함이 매력적이다.

 

 

책 속에서...

 

 

쾌락이란 그것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의 재산이다. 사람은 누구와도 함께 잘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때 장애물이 되는 것은 이미 행방불명된 하느님이나 '정상(正常)적인 것'에 대한 타성적 습관이 아니라 단지 질투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점에 우리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질투만 없어진다면 성에 관한 온갖 터부는 일시에 무너져버릴 것이다. (p.19)

 

대개 성의 터부가 문명에서 온다고 보는데 그는 좀더 근원적인 감정에 그 혐의를 두고 있다.

 

월급을 양복이나 아파트, 식사 등에 일정하게 배분한다면 우리도 금방 '거북이' 무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지 말고 자기 존재 중 쏟아부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한 점(一點)을 골라 그곳에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아버지는 양복파나 미식가, 스포츠광과 같은 젊은이들을 한심한 놈으로 여기겠지만, 사실 이렇게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은 지극히 사상적인 행위이다. (p.23)

 

노동으로 평생 얼마나 벌 수 있는지를 알기는 커녕 얼마나 일할 수 있을지조차 파악하기 힘든, 게다가 그 알량한 돈을 몽땅 모아봐야 아파트 한 채도 간당간당한 현실을 온전히 견디자면 일상 속의 모험이 필요하다는 얘기.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의 '남부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백인이 흑인의 성적 능력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라는 글은 유명해진 지 이미 오래다. (p.27)

 

그런 것이었나.

 

작은 사내가 거구의 사내를 내동댕이치는 드라마는 영원히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 그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기기 위해서는 큰 선수보다 더 '불행'해야 한다는 철칙이 있기 때문이다.

승부의 세계에서 최대의 무기는 바로 '불행'이다. 이것은 '어떻게든지 이겨야 한다'는 정신력을 창출하는 힘이다. (p.144)

 

이른바 '헝그리정신'이라 하는 것. 즉 라면만 먹고 뛰는 힘!

 

나는 뭐든지 잘 버린다. 소년시절에는 부모를 버렸고, 홀로 기차에 올라탐으로써 고향을 버렸고, 동거하는 여자를 버렸다.

여행이란 '풍경을 버리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p.181)

 

"버려!"  "안 버려!" 하는 개그 코너도 있지만, 아무튼 버리는 행위는 결코 미덕이라 할 수 없겠으나 그걸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에게서는 뭔가 다른 냄새가 난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같은...

 

... 나는 소위 가족중심주의의 샐러리맨 같은 인간들을 싫어하며 지금까지도 이렇다할 '가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앙드레 말로가 "선택하는 사내의 행선지는 떠도는 구름이 흘러가는 곳"이라고 말한 것처럼 나도 그럭저럭 내 생활에 만족한다. 도박이 때로 삶의 보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좀더 짧은 시간 안에 알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p.202)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서도 내가 도박을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도박이 아닌 게임을 통해 깨달은 추억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런 운이 따르지 않고 상실감을 못 견딘다.

 

가난한 세일즈맨인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는 것은 가정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보폭에서 느껴지는 일상생활의 굴욕을 따돌리려는 것이다. (p.206)

 

그래서 사람들의 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행동은 거칠어지는가.

 

무엇이든 중립에 서는 행복론에서 다른 것은 모두 버리고 한 가지만 택하는 행복론으로 이동하기를 원할 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도박꾼의 마음가짐이다. 그것은 자신을 초월하는 '속도의 사상'이기도 하다. (p.208)

 

이렇게 사회 통념적인 정답과 다른 의견을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그건 나름의 신념은 고사하고라도 이렇다할 입장마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하지 않으려면 생각해야 한다. 선택해야 한다.

 

영화배우인 타이론 파워(Tyrone Power)나 에롤 플린(Errol Flynn)은 낮잠을 잘 때마다 걸프렌드를 한 명씩 잃어야 했지만, 우리는 낮잠을 아무리 오래 자도 걸프렌드를 잃을 염려가 없다. 마이너스보다는 제로가 득이다. 지극히 단순한 계산이 아닌가. (p.214)

 

맞다. 너무 단순해서 틀린 것으로 간주되곤 하지.

 

... 자네에게 프로스페르의 격언 하나를 들려주겠다.

"고양이와 여자는 부르면 도망가고, 모른 척하면 다가온다." (p.218)

 

명제다, 명제.

 

부모와 자식 간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원래 부모란 자식을 소유하려는 에고이즘을 행복으로 여기며 이를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꽉 막힌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들의 사상은 이른바 '자장가 사상'으로, 깨어나려는 아이를 가정의 화목이라는 명분으로 다시 잠재우려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p.228)

 

맞는 말이지만 나는 김규항 선생의 방식에서 이미 대안을 발견했다.

 

뢰벤탈(Leo Lowenthal)의 『편견의 연구』에 따르면, 편견을 갖고 있는 동안은 개인의 내부에 잠재적 경향이 존재하며 이것이 때로는 외적 자극으로 작용해 사회적 폐쇄성으로부터 구제해준다고 한다. (p.232)

 

몇 가지 편견은 가질만한 일인건가. 편견을 아예 갖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신주쿠 아사히초의 일용직 노무자가 일주일간 매 끼니를 우유 한 병으로 때우고 기차역 벤치에서 잠자며 모은 돈으로 대형극장에서 베를린 오페라를 감상한다. 알반 베르크(Alban Berg,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의 「보체크(Wozzeck)」를 보면서 콩만 먹는 사내의 비극에 감동하고 그와 동시에 극장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일용직 노무자가 어떤 한 가지를 계기로 자기변혁을 꾀할 수만 있다면 그 모험은 성공한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변신(즉, 인간성의 회복)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투성행위와도 같은 '일점XX주의'가 효과적인 듯싶다. (p.237)

 

이 사람이 살아있다면 이런 질문을 했을텐데. "만일 그 노무자에게 빌어먹을 가족이 있어 우유 한 병으로 때우고 가족을 위한 빵을 근근이 사야할 형편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본질이 존재를 앞선다'는 말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말하기 좋아하는 해설자들이 제멋대로 이유를 갖다붙이게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이 미리 좀더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유서의 진실 여부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p.249)

 

고 정몽헌 회장과 고 이은주의 자살을 보며 했던 생각. 자살의 원인이 한 가지라는, 또는 어떤 결정적 이유가 있으리라는 무조건적인 단정. 말하자면 산 사람의 논리.

 

어쨌든 죽는 동기나 이유는 대부분 꾸며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적이며 허구적이다. (p.251)

 

죽으려 마음먹은 사람의 감정의 폭주에서 한 번, 그리고 미디어에 의해서 또 한 번.

 

노이로제에 걸려 목을 맨 것은 병사이며, 생활고와 가난을 비관해 가스를 틀어놓고 죽은 것은 '정치적 타살'이다. 도미나가 이치로의 「고물 신부」라는 만화를 보면, 신부가 가스 자살을 결심하지만 가스 요금을 내지 않아 가스가 끊긴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방귀 가스로 자살하기 위해 눈물을 삼키며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는다. 이조차 그 원인이 실연이라면 타살이나 병사라 할 수 있다.

무언가 부족해서 죽는 것은 자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 '부족한 무언가'가 채워지면 죽음의 필연성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p.256)

 

좀 억지스럽지만 아무튼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다른 가치의 대체로도 피할 수 없는 부조리한 죽음을 자살로 하자, 이런 얘기다.

 

[자살로 취급할 수 없는 부류]

1. 조루, 성기 단소(短小)로 고민하는 사내

2. 대학 입시에 실패한 사내

3. 롤링 스톤즈의 음악을 듣고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내

4. 치질로 고민하는 사내

5. 별다른 이유 없이 사는 것이 싫어진 사내

6. 파친코에 미쳐 주위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사내

7. "의미란 무엇이며 무의미란 무엇인가? 체계화된 사상은 의식의 사유화에 불과하며 1920년 이후 이데올로기는 늘 역사적인 체제의 보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목적에 맞게 무의미를 추구하고 자신의 부르주아 사상에 한계를 느끼며......" 라는 식의 질문에 사로잡힌 사내

8. 숫총각, 숫처녀

9. 저소득 노동자

10. 상어지느러미 수프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내

11.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내

12. 다카쿠라 겐의 영화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내

13. 공금횡령, 도산, 생활고 등에 시달리는 사내

14. 무좀에 시달리는 사내 (p.260)

 

물론 이 목록에 이의를 제기할만큼 팍팍한 사람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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