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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1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미완의 회고록이다. 목차와 대략의 방향만을 잡아놓은 뼈대라서 초고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대략의 얼개만 정리하다 보니 중요한 키워드들이 튀어나와 굉장히 솔직하다. 그리고 채 완성되지 못한 앙상함이 너무 와닿아 가슴이 아리다. 비서관들이 차마 손대지 못한 것이 이해가 된다.
가령 이런 대목을 보자. 미완의 회고록에서 '미완'이 어느 정도의 미완인지 와닿을 것이다.
노무현의 오류
정치력
- 당정 분리, 독선과 아집, 무리한 의제들, 그런 점이 있을 것이다.
감히 언론에 맞서다니
- 유착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었다.
- 취재 선진화, 언론의 흔들기와 관료의 무력화
- 이 유착을 끊고 관료를 언론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것
게다가 지지자를 화나게 했다. 지지 세력에 대한 배반
- 이라크 파병, 대연정, FTA 등을 이야기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열린우리당의 지지층은 누구인가?
인기 없는 대통령이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 말씨와 품위, 언론과의 싸움, 감성적 접근,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 대통령
- 인심을 잃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진 것도 있을 것이다. 해결이 되고나니 관심을 꺼버렸다. 민주주의 의제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관심이 달랐던 것도 있다. 자주국방, 균형외교, 역사의 정리 등에 관한 것들이다. (p.27)
1부 2장은 홈페이지에 비공개로 씌어졌던 글들이다.
2부는 육성기록을 옮긴 것인데 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들일 것이다. 1장은 어린 시절부터 정치 입문기까지의 기록, 2장은 참여정부의 회고, 마지막으로 3장은 한국 정치에 대한 제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쁜 사람은 서점에 잠시 들러 1부 1장만 읽어도 될 것 같다. 이미 가버린 사람의 책인걸 베스트셀러가 되면 무얼해. 그런데 이미 베스트셀러네. 마음이 아프다.
[책 속에서... ]
대통령 임기 내내 나는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총체적 파탄, 잃어버린 10년, 이런 평가를 하는 사람들과 싸웠다.
말년이 되면서 나는 정치적 좌절을 이야기했다.
-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분명히 좌절이었다.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p.16)
세상이 많이 바뀐 것입니다. 다만 바뀌긴 바뀌었는데 이상하게 바뀌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남이 가진 것을 강탈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는데, 지금의 정부는 장물(정수장학회)을 되돌려 줄 권한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면서 힘이 빠져버리니까 기득권 가진 사람들, 특히 부당하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p.124)
연좌제에 걸리면 시험에 붙어도 취직을 못하게 되는데 당시의 저에게 상당한 저항감을 갖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취직을 못한다는 이야기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특히 그것 때문에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못한다는 것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저항감을 가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고시만 보고 판사는 안 하면 될 것 아닌가?' 하고 딱 잘라 결정을 했습니다.
지금은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이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해석하는데, 사실 그 이상의 것이 있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저는 부조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고시만 하고 판사는 하지 않겠다는 배짱이 나왔던 것입니다. (p.134)
1987년 6월 항쟁 당시 끓어올랐던 시민적 정신, 그 사람들이 역사와 가치, 민주주의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꿈이 계속 좌절되고 짓밟히다가 2002년 위기 상황에 몰린 것입니다. 그 위기 상황에서 그들이 바보 노무현을 만나 폭발한 것입니다. 정치는 그렇게 상호작용 속에서 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때로는 이해관계에 민감한 국민들이 아니라 가치에 민감한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정치노선을 갖고 꿋꿋하게 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가치에 민감한 역사, 또 그런 역사에 민감한 사람들과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력을 떨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p.158)
지금까지 언론이 참여정부에 대해 진실을 왜곡하고 차단하면서 무자비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끊임없이 원칙 없는 비판을 쏟아 부었습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그 비판의 절반만이라도 신뢰성이 있었다면 저는 당장 이 자리에서 쫓겨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절반도 믿지 않기 때문에 제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나마 우리 국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국민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흔들어대는데도 쫓아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주시는 것이 감사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p.174)
저는 교양이 없습니다. 저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데, 체질적으로 제가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고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하고, 말은 위엄 있게, 행동은 기품 있게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대통령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못했습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에 있어서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던 점은 있습니다. 우리 아내가 어디 행사장에 들어갈 때 고개 숙이지 말고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p.180)
협상을 할 때 포커페이스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우리의 위치가 계속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도 전략적으로 그에 따른 많은 카드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서로 의견의 합치점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위치와 좌표에 대해서는 포커페이스를 쓰지 말고 주기 원칙을 정확하게 내놓고 일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원칙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없이 좌우에서 일방적 관점, 단편적인 사실이나 가정 등 자기들의 주장을 마구 퍼부으면 그게 전부 정부의 무능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협상을 하고 관리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p.225)
감당해갈 수 있다는 믿음, 우리 국민들의 역량에 대한 믿음, 그것이 FTA를 결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무리 앞서가고 싶은 지도자가 있어도 국민들이 이 새로운 상황이나 혼란스러운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결단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국민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면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국민들에 대해 그만한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p.230)
큰 진전은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참여정부가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권력, 시장권력이 아닌 시민권력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면에서도 '더불어 사는 경제'를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상당수의 언론들이 그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저와 생각을 같이 하는 언론들도 저를 비판해야 자신의 민주성이 더 빛날 것으로 여겼는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참여정부가 진보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더디게 가서 진보가 아니라며 비판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원칙으로 맞서지 않았다면 그 정도를 유지하는 일도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p.240)
신뢰가 있는 사회에서는 질서가 유지됩니다. 원칙이 있고 준법이 있고 신뢰가 있는 사회가 왜 중요합니까? 사람들이 믿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상대방을 믿지 못하니까 조사해야 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을 해놓고도 약속을 위반하지는 않는지 뒷조사해야 되니, 경제 활동이든 정치 활동이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바꾸는 사람들은 지도자의 영역에서 퇴출시켜야 합니다. (p.262)
정치란 결코 기술이 아닙니다. 경제 하나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치란 역사적 과제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가지고 그 과제를 맞닥뜨렸을 때 문제를 풀기 위해서 도전해가는 과정입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이 임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세력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시민세력을 만들어나가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p.270)
돈을 많이 벌었어도 그것만 가지고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우리 국민들의 도덕적 자각과 성숙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권력 내부의 원칙 없는 투쟁, 시장과 정치권력 사이의 타협 없는 투쟁, 이런 모순만 계속 반복될 뿐입니다. 그 위에 존재하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가치, 주권자로서의 지위, 이런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회주의와 불신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본질적 과제입니다.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