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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발표도 하지 않을 글을 계속 쓴다 아침달 시집 28
성윤석 지음 / 아침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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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아는 것에 가둬질 것이니까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읽은 책 안에 갇힐 것이니까
하나를 배우면 열을 궁금해하고 그 열 개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러나 그 장면 안에 가둘 수 없는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시를 쓴다면
그 사람은 이 순간을 무섭도록 살아있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이 곧 지나갈 것이기에
순간을 부술 날개를 날마다 생성하려 할 것이다
성윤석 시인의 시는 늘 치열한 날갯짓의 기록이지만
새로운 날개의 생성을 도모하는 어슬렁거림이기도 하고
만들어진 완성을 부스러뜨리는 실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성윤석 시인이 이번에 – 그녀는 발표도 하지 않을 글을 계속 쓴다-란 시집을 냈다.
그 시집 안에는 우리가 아무 의심도 하지 않는 일상의 순간들을 가지고 와서
그 순간 안에 들어가 놀기도 하고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돌을 던져보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며 순간을 어지럽힌다. 어지럽히는 순간들이 무성해지면 그는 순간 밖으로 조용히 걸어 나간다. 순간에 갇힌 삶을 사는 당신 올 한 해 수고 많으셨고 내년에는 좀 더 재밌게 살기를 바라며 이 시집을 추천해본다.


인생에는 별의 것이 없지만
별것은 별에게나 있겠지만
나는 다 답할 수 없다
아직 팬티까지 벗고 달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사는가
나는 직업이 있는가
나는 혼자인가 가족이 있는가
나는 죽었는가 살아 있는가
나도 다마스쿠스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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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희미해진 사람 걷는사람 시인선 74
김미소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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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같은 마음은 무섭다

깨진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 파편을 이리저리 굴리며 아프게 살아가니까
하지만 유리 같은 마음만이 빛나는 순간이 있다.
김미소 님의 시는 기교가 아니라 유리 같은
마음으로 쓴 것처럼 느껴져 읽을 때마다
자꾸 찔리고 아프다
하지만 희미해져 있던 마음에 불이 들어오는 것 같다.
희미해진 마음들에게 김미소 시인의 시집을 추천하고 싶은 추운 날이다.
동봉하는 시는 시집에는 수록되지 않은 시
놀이터
​ 김미소
너와 나의 교감은 멀어졌다 가까워진다
줄의 탄성이 사라질 때까지
표정을 확인하려 할 때마다
허공은 분명해지고
뒷모습을 밀어주는 사람이 있어도
밀어주는 사람을 또 밀어주는 사람은 없다
구름에 가까워지면 구름의 태도가 보일까
몇 번이고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끝나지 않은 운동
발밑의 모래알이 날씨처럼 흩뿌려지면
추락하는 기분을 이해할까
놀이터의 진짜 용도를 알아가기엔
나는 지나치게 놀이를 모른다
또 다른 아이다움이 필요하다면 뛰어내릴 것
스스로 혼자가 되는 법을 알았지만
자주 엎어지고도 웃을 것
착지와 동시에 분산되는 모래의
균형을 안녕이라고 말하면
모두가 돌아간 저녁의 부피는 가라앉는다
빠져나간 한 줌의 석조(石造)를
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돌아간 식탁에는
간혹 개미가 돌아다닌다
개미에게 식탁은 놀이터였을까 작업장이었을까
다섯 살의 내가 작업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

문득 여섯 살이 되는 밤을 지난다

나는 괜찮습니다
흐린 날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꾹 눌러쓴 이름이
흩어지던 것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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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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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프니까 청춘이고 하나님은 감당할 고통만 주시고 뭐 이런 쌉소리들을 하기도 하지만 고통 없이 쉽게 쓸 수 없는 글들이 있다. 그러니까 온전하게 불행과 고통을 매일 실시간으로 느끼는 사람이 자신의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죽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살아내기 그러니까 자신에게 보내진 불행과 고통을 수취 거부하지 않고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건 그 담대함만으로 엄청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나랑 동갑인 걸로 알고 있어서 예전부터 친구처럼 느껴지던 그녀의 산문집 출간을 축하하며 언젠가 친구야 하며 아주 맛난 저녁을 사주고 싶다. 그날이 그날 같고 삶이 희미하게만 느껴진다면 오늘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소중하게 보내야 하는지 느끼게 될 테니까

나아진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어진 대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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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토마토와 불가능한 토요일
김도언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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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렐 수 있는 마음 대신 온갖 계산기만 넘쳐대는 가능한 실효성의 세계에서 그는 늘 하품하고 가능한 실효성을 반납한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운데서도 그는 온 힘을 다해 권태의 세계로 건너간다. 이 모순된 힘으로 그는 미끄러진다. 가능한 세계에서 불가능한 세계로.

권태주의자와 농담주의자를 자처하는 시인의 친구는 소설가인 자신이며 또한 가장 견디기 힘들어 달아나려고 하는 세계 역시 자신이다.

그의 얼룩은 때로 바닥으로 침잠하고 때로 그릇 바깥으로 튀어 나가기도 하며 끊임없이 출렁임을 만들어낸다. 그가 만들어내는 파도의 기록.

이 여름 당신의 피서지로 추천해본다.

우리는 누군가를 설레게 하는, 설레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불가능이다. 불가능을 꿈꾸는 것은 가장 가능한 정신의 사치라는 걸 안다.

가능한 사치와 불가능한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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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th
하재욱 지음 / 밀더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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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포획해서 의미를 담는 작업을 강렬하게 보여주던 하재욱작가의 더 깊어지고 특별해진 깊이 시리즈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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