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희미해진 사람 걷는사람 시인선 74
김미소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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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같은 마음은 무섭다

깨진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 파편을 이리저리 굴리며 아프게 살아가니까
하지만 유리 같은 마음만이 빛나는 순간이 있다.
김미소 님의 시는 기교가 아니라 유리 같은
마음으로 쓴 것처럼 느껴져 읽을 때마다
자꾸 찔리고 아프다
하지만 희미해져 있던 마음에 불이 들어오는 것 같다.
희미해진 마음들에게 김미소 시인의 시집을 추천하고 싶은 추운 날이다.
동봉하는 시는 시집에는 수록되지 않은 시
놀이터
​ 김미소
너와 나의 교감은 멀어졌다 가까워진다
줄의 탄성이 사라질 때까지
표정을 확인하려 할 때마다
허공은 분명해지고
뒷모습을 밀어주는 사람이 있어도
밀어주는 사람을 또 밀어주는 사람은 없다
구름에 가까워지면 구름의 태도가 보일까
몇 번이고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끝나지 않은 운동
발밑의 모래알이 날씨처럼 흩뿌려지면
추락하는 기분을 이해할까
놀이터의 진짜 용도를 알아가기엔
나는 지나치게 놀이를 모른다
또 다른 아이다움이 필요하다면 뛰어내릴 것
스스로 혼자가 되는 법을 알았지만
자주 엎어지고도 웃을 것
착지와 동시에 분산되는 모래의
균형을 안녕이라고 말하면
모두가 돌아간 저녁의 부피는 가라앉는다
빠져나간 한 줌의 석조(石造)를
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돌아간 식탁에는
간혹 개미가 돌아다닌다
개미에게 식탁은 놀이터였을까 작업장이었을까
다섯 살의 내가 작업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

문득 여섯 살이 되는 밤을 지난다

나는 괜찮습니다
흐린 날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꾹 눌러쓴 이름이
흩어지던 것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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