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과 정원 - 나만의 신화를 세우는 추상의 힘
최진석 지음 / 퍼블리온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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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그 방향이 희미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던 중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텃밭과 정원>을 만나게 되었다. 자기계발서가 '더 빠르게, 더 잘 살아내는 법'을 말해준다면, 철학자의 이야기는 '나는 지금 어떤 삶을 가꾸고자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자리를 돌아보게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텃밭'과 '정원'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책을 읽어나갈수록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문장마다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텃밭이 당장 필요한 수확물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일구는 공간이라면, 정원은 내가 원하는 삶의 결과 질서를 스스로 고민하며 만들어가는 공간이라 말한다. 타인이 정해준 속도나 당장의 결과에 매달리는 '텃밭'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만의 '정원'을 정성껏 가꾸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는 힘, 추상


p.60 추상은 단순히 사유의 유희가 아니라, 무엇이 본질인지를 가려내고 확정 짓는 '결정의 권력'이다.


저자는 사람마다 삶의 높이가 다른 이유를 ‘시선의 높이’에서 찾는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눈앞의 현상만 바라보는 사람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구조까지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은 다르다.

그리고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능력이 바로 ‘추상’이다. 추상이란 낱낱의 현상에서 불필요한 껍데기를 걷어내고 공통된 속성과 본질을 찾아내는 활동이다. 나무 한 그루에 머무르지 않고 숲 전체를 관통하는 생태적 질서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저자는 추상을 통해 우리는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하고, 그 본질을 자신의 언어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추상은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힘이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책을 많이 읽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무엇을 발견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본질을 찾아 내 생각으로 정리하는 것. 어쩌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더 높은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기 위한 과정인지 모르겠다.



** 삶의 주인은 정원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책에서는 경험과 추상의 관계를 ‘경험의 밧줄과 기하학의 공식’에 비유한다. 삶에서 수많은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경험은 그 자체로 수많은 소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에서 반복되는 의미를 찾아내고, 무엇이 나에게 본질적인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저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이익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인간의 마땅한 도리란 어떤 논리적 구조를 갖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경험에서 추상으로, 적응하는 사람에서 설계하는 사람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특히 “삶의 의미란 찾는 것이 아니라, 추상의 힘을 빌려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정답이 이미 존재하고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내가 중요하다고 결정한 것들이 삶의 방향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 앞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동안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은 고민에 빠졌다.


** 나만의 신화를 설계하는 사유의 도약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삶의 도약은 근본적으로 ‘사유의 도약’이라고 말한다. 눈앞의 사물을 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존재하게 만든 근원까지 파고드는 것이 추상이며, 이러한 추상 능력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인문학과 예술도 단순히 여유가 생겼을 때 즐기는 활동이 아니다. 저자는 인문학과 예술을 통해 타인에게 저당 잡힌 세계의 주도권을 되찾고, 익숙한 통념을 넘어 자신의 논리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p.180 삶은 자신만의 신화를 써가는 일이다. 자신만의 신화를 쓰는 삶이라야 비로소 자유롭게 주체적일 수 있다.




지적인 삶이란 많이 아는 삶만을 뜻하지 않는다. 눈앞의 사실을 넘어 보이지 않는 구조를 생각하고, 기존의 통념에 질문을 던지며,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삶이다. 저자가 말하는 ‘나만의 신화’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기록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통해 나의 생각을 만들고 앞으로의 삶을 상상하는 것까지가 독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스스로 그리고 한 걸음씩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만의 정원을 설계하는 일이 아닐까.





** 자기계발서 대신 읽고 싶은 인문학


<텃밭과 정원>은 무엇을 더 빨리 이루고, 더 많이 얻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지금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 돌아보게 했다. 특히 ‘추상’이라는 개념을 통해 눈앞의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삶 전체를 바라보라는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


나 역시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당장 해야 할 일과 눈앞의 결과에 집중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나만의 정원을 설계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 거창한 성공이나 특별한 삶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선택하고 가꾸면서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 결국 잘 산다는 것은 남보다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알고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책을 덮고 나니 앞으로의 삶을 조금은 더 천천히, 그러나 내 생각으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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