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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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줄리언 반스가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써 내려간 작품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읽다 보면 한 사람의 긴 사유가 담긴 에세이에 더 가깝다.


이 책은 죽음과 기억, 정체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부모의 죽음과 자신의 노년을 바라보며 작가는 묻는다. 우리는 결국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으며, 무엇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는지를.


-       삶의 끝자락에서 연습하는 작별

<떠난 것을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설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고백에 가깝다. 줄리언 반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다. 부모의 죽음, 자신의 노년, 사라진 시간들을 담담하게 불러낸다.

p.105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어떤 것, 여행의 끝에 있는 종점, 다시 출발할 필요가 없는 도착지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죽음을 늘 있는 것, 나의 삶과 나란히 늘어선 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작별'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이 있는 동안 이미 시작된 과정처럼 느껴진다. 기억 속 사람들을 하나씩 떠나보내고,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일상들을 인정하는 일.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시간을 더 정확하게 살아내는 태도임을 우리에게 조용히 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기억이 정체성

p.221 우리 모두 기억이 정체성임을 알고 있다


'기억이 정체성'이다. 문장의 의미를 곱씹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을 의심하고 다시 되짚는다. 우리는 기억으로 자신으로 설명하고 과거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 규정한다. 그러나 그는 묻는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억은 과연 얼마나 정확한가, 만약 기억이 사라진다면 나는 여전히 나일 있을까. 부모의 죽음 이후 흐릿해진 장면들은,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불완전한지를 드러낸다. 같은 기간을 살았어도,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게 남기 때문에.



p.34 뇌의 짓궂은 책략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은재 隱在 기억으로, 이것은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를 그것을 과거의 기억으로 인식하는 아니라 새롭고 독창적인 생각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까. 기억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럼에도 기억은 우리에게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 아닐까.

-       죽음과 나란히 걷는 시간

p.259 화학 치료는 단순히 방어적인 것으로, 이 병이 광포해지는 걸 막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암과 나는 죽는 날까지 팔짱을 끼고 터덜터덜 갈 것이다.


줄리어 반스는 암을 이겨야 할 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치료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이고, 치료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지연이다. 그는 죽음과 맞서 싸우기보다 그 존재를 인정한 채 함께 걸어간다. '팔짱을 끼고 터덜터덜 간다'는 표현이 이미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담담한 그의 태도가 너무 인상적이다.


p.262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거나 어떻게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감상평

서평단으로 받은 가제본이었지만, 그의 작품을 조금 먼저 만날 수 있어 의미가 컸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은 늘 어렵게 느껴져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끝내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곤 했다. 이 작품 역시 쉽지는 않았지만, 죽음과 기억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따라가다 보니 읽는 내내 삶의 방향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은 죽음과 기억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대신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질문을 남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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