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 리뷰 입니다.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 <바움가트너>는 노년의 상실, 기억, 사랑 그리고 삶의 덧없음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폴 오스터가 폐암 투병 중 집필한 것으로 2023년 11월에 출간되었으며, 2024년 4월 30일 그의 사망 이후 유작으로 남았다.
현대 문학의 거장 폴 오스터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문체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다.
시인이자 번역가,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한 그는 언어와 이미지의 힘을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우연과 운명, 정세성과 기억, 상실과 언어의 한계라는 주제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줄거리
바움가트너는 70대의 철학 교수이자 작가로 뉴저지의 저택에서 홀로 살아간다. 그는 10년 전 아내 안나를 해변 사고로 잃은 후 깊은 상실감에 잠겨있다.
그는 노화로 인해 일상 속에서 물을 끓이다 손을 데거나 계단에서 넘어지는 등 소소한 사고들이 발생하고 이런 일들이 삶의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그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안나의 쓰던 원고와 시를 발견하게 되고 그 글을 통해 아내와의 첫 만남, 결혼생활 그리고 안나의 과거 연인의 이야기까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던 중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학생이 안나의 작품을 관심을 갖고 바움가트너를 찾아온다. 그는 그녀로 인해 아내이 기억과 마주하게 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바움가트너는 사랑하는 안나를 잃은 뒤 그녀가 남긴 물건들 속에서 아직도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남긴 손글씨, 책장 사이에서 발견되는 사진, 그리고 그녀가 쓰다 만 원고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그를 안나와의 시간 속으로 이끈다. 그의 기억은 단지 회상이 아니라 상실을 견디기 위한 노력이며 동시에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슬픔이 단지 고통이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가능한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p.132
지구에는 불이 붙었고, 세상은 타오르고 있는데, 그래도 지금 당장은 이와 같은 날이 있으니 즐길 수 있을 때 이런 날을 즐기는 게 낫다. 이게 그가 보게 될 마지막 좋은 날일지 누가 알겠는가.
주인공은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불편함과 정신적 혼란 속에서 자신이 점점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은 노화를 나쁘게만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화는 나를 찾는 시간, 무언가는 잃지만 또 다른 무언가는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노화는 끝이 아님을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과정임을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거 같다.
<바움가트너>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나의 미래를 조용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도 삶은 계속되지만 그 사람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 바움가트너가 그렇게 살아냈듯이, 우리도 결국은 기억 속 사랑과 함께 걷는다. 나이 들어간다는 건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이 소설은 말해준다.
아픈 만큼, 사랑한 만큼,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마음을 오래도록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