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지 않은 깊은 산 - 블랙홀에 대한 진짜 이야기
베키 스메서스트 지음, 하인해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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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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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지는 도배지이다. 하지만 도배지를 벽에 붙이면 그건 벽지가 된다. 벽지를 구태여 도배지라고 부르지 않으니까. 그러면 그 벽지를 뜯어내면 그때부터 그것을 도배지라고 불러야 할까 벽지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상황이 바뀔 때마다 내가 바뀐다고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돌이켜봤을 때 지금은 아주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쪽으로.




...어른들 따위는 어느 시점부터 자신이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너무도 쉽게 잊은 채로, 마치 그저 주어진 것인 양 생을 살아간다. 다 망가져가는 것과 다름없는 생을. 나는 그것이 세계가 나를 ‘외부인’으로 만드는 교묘한 방식이라는 걸 깨우쳤다.

...나는 사는 동안 내 이야기의 완벽한 ‘외부인’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흉내. 그것은 흉내뿐이었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완벽한 ‘내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내 서사에 완벽하게 가담한 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전한 슬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뜻이라는 게 있었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뜻, 의지, 그런 것들. 비록 미적지근할지언정, 중요한 건 분명히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첩을 꺼내지 않고 차장님에게 말했다. 차장님, 평생 차장님으로 남아주시면 안 돼요? 그러자 차장님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네모반듯한 돌들의 아귀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삶이 갈렸을 거라며 돌담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갈린 수많은 삶을 떠올려보았다.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삶을 갈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들이, 사실은 정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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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흐름은 반복된다 - 경제를 알면 투자 시계가 보인다
최진호 지음 / 메이트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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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 자산가격 역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자산가격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자신이 주력해서 투자하는 자산군 이외에도 다른 변수들을 함께 파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자산가격들의 큰 흐름이 발생하는 기저(基底)의 속성을 간과하고, 가격변수들에만 집중하다 보면 의사결정에서 오판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시중의 유동성이 줄어드는 가운데 총수요와 총공급이 함께 줄어듭니다. 이는 경기순환적 경기침체(cyclical stagnation)를 넘어서 장기적인 구조적 침체(secular stagnation)로 흘러갈 가능성도 높아지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가계와 기업이 어려운 경제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선택한 합리적인 결정이, 전체적으로 합쳐졌을 때에는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축의 역설(Saving’s glut)’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전 세계 국가들이 ‘독립적인 통화정책 운용’과 ‘환율 안정’, 그리고 ‘자유로운 자본 이동(금융시장의 개방성)’이라는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런 상황을 두고 트릴레마라고 부릅니다. 트릴레마는 1999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로버트 먼델이 주장한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 경제사회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때그때 경제상황에 따라 불가능한 삼위일체 중에서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정책 목표를 두고 경제를 운용해가는 것입니다.




...“수익률 곡선이 평평해지고 있다” 혹은 “가팔라지고 있다”는 헤드라인이 등장한다면, 채권시장이 우리에게 그만큼 경기에 대한 비관적 혹은 낙관적 전망이 강화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신흥국들이 자국통화가 아닌 외화 자본(특히 달러)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여건 때문에 여러 가지 리스크가 내재적으로 형성되고, 달러 가치 변동에 의해 위험이 언제든 발현될 수 있는 이런 현상을 두고 경제학자 배리 아이컨그린은 ‘신흥국들의 원죄론(The Original Sin)’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유로존의 회원국들은 서로 비슷한 경제와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들이긴 하지만 노동자들이 국가 간 장벽 없이 이동하기에는 여전히 힘든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유로존이 출범하기 이전부터 지적되어왔던 것이고, 단일 통화를 사용하기 위한 이론적 배경의 전제 조건부터 충족되지 못하는 것인데, 이렇게 불안정한 조건에서부터 출발한 유로존과 유로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 있습니다.





...2022년 한국과 같은 원자재 수입국들은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었지만, 반대로 원자재 수출국들은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면서 달러를 안정적으로 벌어온 결과입니다. 글로벌 경제가 평화롭고 경제적 활동이 일반적으로 잘 작동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에너지와 식량 등 자국의 생존을 위한 기초 품목의 자급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 표현으로는 투자의 증가분 대비 성장의 증가분인 성장 유발계수가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현상이 가시적으로 표출된 시점이 앞서 4장에서 설명한 2010년대부터 중국이 경제구조의 선진화를 외치면서 하이테크 산업과 서비스업 중심의 내수산업 중심구조로 변화를 꾀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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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슈테판 셰퍼 지음, 전은경 옮김 / 서삼독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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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처 없이 숲속을 터덜터덜 걸으면서 며칠 전 읽은 글을 떠올렸다. 그 글은 지친 사람의 뇌에서는 생각이 늘 같은 경로를 맴도는데, 그 악순환을 깨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가끔은 반드시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 숲과 우리 가족 별장 사이에 있는 조용한 호수가 떠올랐다.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뿐, 그곳에서 아침 일찍 수영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음 생에서는 실수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더는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고, 더 느긋하게 지낼 것이다.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정신 나간 상태로, 많은 일을 심각하지 않게 여길 것이다. 그다지 건강하게만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많은 해넘이를 바라보고, 산에 더 많이 오르고, 강을 더 자주 헤엄칠 것이다. 나는 매 순간을 낭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똑똑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물론 즐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순간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 삶이 오로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아직 모른다면 지금 이 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나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다닐 것이다. 생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이들과 더 많이 놀 것이다...”





“노래를 쓰고, 도자기를 빚고, 희귀 식물을 연구하고, 위대한 사랑을 만드는 이 모든 일에는 긴 시간이 필요해요. 깊이 생각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새로운 것에 도달하죠. 창의력은 공감과 지루함에서 생겨나고 아름다움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아요.”




“한 주 한 주는 소화를 시키거나 재빨리 먹어 치워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니까요. 그래서 나는 주말마다 항상 이 의식을 치러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먹다 남은 케이크를 냉장고에 보관해요. 견과류나 초콜릿케이크 또는 마블 케이크가 가장 좋은데, 일요일에 그걸 전부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서 커피를 조금 넣고, 체리와 딸기 또는 나무딸기를 넣은 다음 질 좋은 생크림을 듬뿍 섞는 거예요. 말하자면 맛있는 일기장이죠. 사는 게 다 그렇듯이 이것도 어떤 때는 양이 많고 어떤 때는 적어요. 그 한 주가 어땠는지에 따라 다르죠. 맛있게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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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
김지원 지음 / 유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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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말을 걸겠다는 마음으로 쓰인 글은 비록 어렵더라도, 왠지 모르게 어떻게 해서든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이런 글이야말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의 본질일 것이다. 즉 ‘중2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써라’라는 것은 결국 ‘중2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써라’와 다름없다.




...독서는 이질적인 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불러내는 소환의 기술이자 세계를 빨리 고향으로 바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평소에 독서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감금되어 있다. 그의 생활은 상투적인 틀에 박혀 버린다. 그 사람이 접촉하고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극소수의 친구나 지기뿐이며, 그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은 거의가 신변의 사소한 일일 따름이다. 그 감금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그런데 일단 책을 손에 들면 사람은 즉시 별別세계에 드나들 수가 있다. 만일 그것이 양서라면 독자는 홀연 세계 제일의 이야기꾼을 대면하는 것이 된다. 그는 독자를 유도하여 먼 별세계, 아득한 옛날로 데리고 가서 심중의 고민을 덜어 주고, 독자가 미처 몰랐던 인생의 여러 모를 이야기해 준다.




...삶에 어디 분과가 있던가! 길을 걷다 넘어지는 것은 물리학적 경험인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흘리는 눈물은 생물학적 현상인가? 물에서 산소와 수소를 분리하는 것은 화학적인 경험이고, 카뮈를 읽는 것은 문학적 체험이며, 미적분 문제 풀기는 오로지 수학에만 바쳐지는 시간인가? (……) 삶의, 그 대신할 수 없는 풍요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책은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나의 껍질을 깨고 그 사이로 맵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책을 다양하게, 함부로 읽을수록 나를 둘러싼 껍질은 더 자주 깨진다. 단, 책이 나의 껍질을 깨는 계기가 되려면 어느 정도 절박한 읽기 태도가 필요하다. 다소 절박하고 다급하게 굴지 않으면 책은 그저 내 껍질 위를 편하게 미끄러져 스쳐지나갈 뿐이다. 칼럼이든 어떤 장르의 글이든 그렇게 깨어진 부분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급함은 억지로 만들어 낸 다급함이 아니라, 책장 위에서도 진짜로 ‘나의’ ‘우리의’ 문제를 생각하는 질문들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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