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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
김지원 지음 / 유유 / 2024년 3월
평점 :
..독자에게 말을 걸겠다는 마음으로 쓰인 글은 비록 어렵더라도, 왠지 모르게 어떻게 해서든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이런 글이야말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의 본질일 것이다. 즉 ‘중2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써라’라는 것은 결국 ‘중2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써라’와 다름없다.
...독서는 이질적인 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불러내는 소환의 기술이자 세계를 빨리 고향으로 바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평소에 독서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감금되어 있다. 그의 생활은 상투적인 틀에 박혀 버린다. 그 사람이 접촉하고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극소수의 친구나 지기뿐이며, 그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은 거의가 신변의 사소한 일일 따름이다. 그 감금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그런데 일단 책을 손에 들면 사람은 즉시 별別세계에 드나들 수가 있다. 만일 그것이 양서라면 독자는 홀연 세계 제일의 이야기꾼을 대면하는 것이 된다. 그는 독자를 유도하여 먼 별세계, 아득한 옛날로 데리고 가서 심중의 고민을 덜어 주고, 독자가 미처 몰랐던 인생의 여러 모를 이야기해 준다.
...삶에 어디 분과가 있던가! 길을 걷다 넘어지는 것은 물리학적 경험인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흘리는 눈물은 생물학적 현상인가? 물에서 산소와 수소를 분리하는 것은 화학적인 경험이고, 카뮈를 읽는 것은 문학적 체험이며, 미적분 문제 풀기는 오로지 수학에만 바쳐지는 시간인가? (……) 삶의, 그 대신할 수 없는 풍요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책은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나의 껍질을 깨고 그 사이로 맵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책을 다양하게, 함부로 읽을수록 나를 둘러싼 껍질은 더 자주 깨진다. 단, 책이 나의 껍질을 깨는 계기가 되려면 어느 정도 절박한 읽기 태도가 필요하다. 다소 절박하고 다급하게 굴지 않으면 책은 그저 내 껍질 위를 편하게 미끄러져 스쳐지나갈 뿐이다. 칼럼이든 어떤 장르의 글이든 그렇게 깨어진 부분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급함은 억지로 만들어 낸 다급함이 아니라, 책장 위에서도 진짜로 ‘나의’ ‘우리의’ 문제를 생각하는 질문들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