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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리커버)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데 경제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제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좋은 경제제도는 1619년 서서히 부상한 정치제도에서 비롯되었다. 정치 및 경제 제도의 상호작용이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우리가 제시하는 세계 불평등 이론의 골자다.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거나 심지어 발목을 잡는 착취적 정치제도를 기반으로 착취적 경제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의 선택, 즉 제도의 정치가 국가의 성패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라는 것이다. 일부 사회의 정치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포용적 제도로 이어진 반면 역사를 통틀어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대다수 사회의 정치가 경제성장의 숨통을 죄는 착취적 제도로 이어진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례처럼 착취적 정치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제도가 포용적 성향을 띤 덕분에 성장이 가능하다 해도, 경제제도가 더 착취적으로 바뀌거나 성장이 멈춰버릴 위험이 상존한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결국 그 권력을 이용해 경쟁을 제한하고 자신들의 파이를 키우거나, 심지어 다른 이들로부터 훔치고 약탈하는 것이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는 방법이라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치제도가 착취적 성향에서 포용적 성향으로 바뀌지 않는 한 권력을 분배하고 행사할 능력은 언제든 경제적 번영의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두 격리된 생명체의 개체군이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과정을 통해 임의적인 유전적 변동으로 서서히 멀어지듯이, 다른 모든 면이 유사한 사회라 하더라도 제도적인 면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유전적 부동과 마찬가지로 제도적 부동 역시 정해진 경로가 없으며 반드시 축적되는 것도 아니지만, 수 세기를 거치며 두드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중요한 차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제도적 부동으로 초래된 차이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사회가 결정적 분기점에 직면했을 때 정치·경제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잉글랜드는 절대왕정을 뿌리 뽑았는데 에스파냐에서는 오히려 그 입지가 강화되어 꾸준히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결정적 분기점에서 작지만 중요한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라 할 수 있다. 작은 차이는 대의기구의 힘과 성격이었고, 결정적 분기점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었다. 이런 작은 차이와 분기점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에스파냐는 제도적으로 잉글랜드와 사뭇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잉글랜드에서는 비교적 포용적인 경제제도가 만들어져 전례 없는 경제성장을 구가하며 산업혁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에스파냐에서는 산업화 가능성이 희박했다.
...남아프리카의 이중 경제는 개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태동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더라도 낙후된 부문의 가난한 사람이 근대 부문으로 자연스레 이동할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근대 부문의 성공은 낙후된 부문의 존재를 전제로 했다. 미숙련 흑인 노동자에게 푼돈을 쥐여주면서 백인 고용주만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구조였다.
...프랑스군이 유럽 대륙에 큰 고통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이들이 유럽의 형세를 획기적으로 뒤바뀌어놓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봉건질서가 자취를 감추었고 길드가 무너졌으며 군주와 제후의 절대권력 역시 송두리째 흔들렸고 경제, 사회, 정치 등 모든 면에서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교회마저 맥을 못 추게 되었다. 태생적 지위에 따라 인민을 불평등하게 대우했던 앙시앵레짐의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변화 덕분에 해당 지역에서 훗날 산업화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해준 포용적 경제제도가 수립되었다.
...트러스트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정치인이 발 벗고 나서게 된 데는 머크레이커의 역할이 컸다. 강도귀족은 머크레이커에 이를 갈았지만, 미국의 정치제도 때문에 이들을 짓밟거나 입을 틀어막지 못했다. 포용적 정치제도하에서는 자유언론이 번성하고, 자유언론은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에 대한 위협을 널리 알려 저항의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착취적 제도, 절대주의 체제, 독재정하에서는 그런 자유가 불가능하다. 착취적 정권은 애초에 그런 제도와 체제를 이용해 반대 세력이 심각한 위협이 되기 전에 짓밟아버리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 미국에서 자유언론이 제공한 정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